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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7-07-04 10:22
원전 전문가들이 '탈핵' 원하는 시민보다 더 똑똑한가? (이정필)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8,201  

공론화라는 표현이 자주 쓰임에도 불구하고, 공론화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속 시원한 이야기를 듣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첨예한 에너지 이슈에 대한 공론화 계획을 무작정 반길 수 없는 이유도 있다. 탈핵 탈석탄 에너지 전환에서 선거와 공론화는 어떤 역할을 맡아야 마땅할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두고 함께 생각할 것들이 많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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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전문가들이 '탈핵' 원하는 시민보다 더 똑똑한가?
[초록發光] 실질적인 에너지민주주의를 위하여

지난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건설 여부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27일에는 국무회의를 통해 3개월 간 5, 6호기 공사 잠정 중단과 이 기간에 공론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공론화 방안에 대해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찬핵 진영'은 대체로 공론화 시도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앞으로 탈핵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5, 6호기 건설 중단을 공약한 정부의 '불순한' 의도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합의회의니 시민배심원이니 하는, 다른 민주주의를 상상하기 어려워한다. 

반면 '탈핵 진영'은 공론화 방안에 찬성과 반대로 나뉜 상태라 말해도 무방할 듯하다. 대선 공약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이들에게는 이미 선거 결과로 결정된 '탈핵 국가'가 샛길로 빠지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생각이 강할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제도적 공론화'를 수용하면서 '사회적 공론화'에 주력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 같다. 몇 가지 문제가 있지만(그리고 예상되지만), 현재 상황에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데 있다. 신고리 5, 6호기 결정의 시급성을 인정하더라도, '탈핵 에너지 전환 로드맵'이 먼저 마련되는 게 정석이다. 그 로드맵에 따라 5, 6호기의 운명이 결정되는 게 맞다. 실제로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는 5, 6호기만이 아니라 탈핵과 에너지 전환 전반의 핵심적인 내용이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론화 기법을 아무리 잘 설계하더라도, 시민배심원들이 검토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한국 탈핵'과 그 경로가 핵심 변수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확실히 정부는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공론조사와 시민배심원제를 관리할 공론화위원회는 공정성, 중립성, 객관성이라는 원칙에 따라 운영될 예정이라서 건설 지속이냐, 중단이냐 등의 특정 결론에 대해서는 사전에 정해진 게 없다는 것이다. 맞다. 공약은 공약일 뿐, 신고리 5, 6호기의 미래를 선택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시민사회가 갖게 되었다. 즉, 공론조사를 통해 선정된 시민배심원의 판단이 결정적이라는 이야기다. 이제 남은 과제는 숙의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공론화의 원칙을 정하고 그에 적합한 참여 모델을 기획하고 집행하면 되는 것이다. 

공론화 자체를 거부할 게 아니라면 '에너지민주주의'를 심화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둘러싼 갈등과 쟁점이 상당하다. 기존 대의기구나 관리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에는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밀양송전탑 전문가협의체'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그런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둘을 포함해서 공론화의 성공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따라서 과거의 실패와 오랜 관행에서 교훈을 찾는 작업이 이번 공론화의 첫 출발이 되어야 한다. 

이보다 더 주의할 부분이 있다면, '공론화 무용론'을 퍼뜨리는 세력의 거짓 선전과 분열의 음모일 것이다. 일반인은 에너지를 모르는 비전문가인지라 주요 결정은 전문가와 정치인들이 해야 한다는 주장을 쉽게 접하는 요즘이다. 에너지와 핵발전과 관련되는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 예컨대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 등은 여기서 제외된다. '원전 공론화'에 대해 원자력공학자들을 전문가라 할 수 있을까. 이제야 합의회의, 시민배심원제, 공론조사 따위의 기초 자료를 읊어대는 꼴을 보라. 이마저도 시민이 직접 참여하여 숙의하여 결정하는 민주주의 형태는 수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반복한다. 전문가와 국회가 참고할 목적의 의견수렴용이라면 모를까. 

그리고 최종 결정은 (대통령은 빠진) 국회라는 대의민주주의를 통과하면 된다는 식이다. 사건사고 많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무조정실,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국민대통합위원회는 갈등 관리와 통합 참여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시민참여를 위한 가이드라인과 매뉴얼과 보고서를 찍어댔다. 그럼에도 전문가와 관료들은 삼척과 영덕의 주민투표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더 큰 그림일까. 국민투표, 법률제정, 아니면 (정체 모를) 사회적 합의 등. 

누구나 소통과 공론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 조건을 함께 따지지 않고서는 공허한 수사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다양한 내용과 형식을 갖춘 민주주의들 사이의 경합을 통해 발전해왔다. 에너지민주주의 역시 에너지 공론장과 에너지의 물적 자원에 대한 권리와 권력을 둘러싸고 다양한 버전들이 경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너지민주주의는 에너지 이슈에 관한 민주적 의사결정이라는 좁은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기술 시스템 그리고 정치경제 시스템으로서의 에너지 권력을 재구성하는 원칙과 과정이라는 넓은 의미에까지 걸쳐 있는 개념이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를 좋게 보는 쪽도 있고, 나쁘게 보는 쪽도 있고, 이상하게 보는 쪽도 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에너지민주주의 본색을 보인다. 말뿐인 공론화와 합의가 아닌 실질적인 공론화와 합의를 해보자. 그리고 에너지민주주의를 공론화로 좁히지 말자.

/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 초록발광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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