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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7-09-27 14:14
에너지 전환, 에너지원만 바꾸는 게 아니다 (한재각)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9,965  
역대 정부 중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 전환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최초의 정부이다. 그러나 이를 담당하는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전환에 대한 이론과 철학은 빈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적, 사회적, 조직적, 문화적 요소들의 동시적인 변화와 재구성을 함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는 그대로 놔두고 에너지원만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올해 수립될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내년에 수립 예정인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에너지 전환 개념이 어떻게 반영될지 두고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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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 에너지원만 바꾸는 게 아니다
[초록發光] 3차 에너지기본계획, 종전과는 완전히 달라야

문재인 정부가 '에너지 전환'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산업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탈원전'을 추진하기 위한 전담팀을 구성하면서 그 이름을 '에너지 전환 국민소통 TF'라고 붙였다. "탈원전 용어 자체가 가진 소모적 논쟁을 피하기 위해 에너지 전환이라는 용어를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매일경제신문>, 2017년 8월 23일자)하기로 한 것이다. '탈원전' 용어가 전력정책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혁신하겠다는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을 모두 담아내기는 부족하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공감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에너지 전환'은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기회가 되어서 산업부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어떤 문장을 기대했으나, 답변으로 "탈원전,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신산업"이라는 단어만 나열하였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미국의 에머리 로빈스이 제시한 '연성 에너지 경로' 논의로부터 시작되는 에너지 전환 개념의 역사나 1990년대 이후 북유럽 국가들로부터 시작되어 확산되고 있는 '사회기술 시스템의 지속가능한 전환' 논의에 대한 언급까지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에너지정책을 대표하는 용어에 대한 설명이 너무 빈약했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등으로 너무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때문일까, 에너지 전환에 관한 이론과 철학이 빈곤해보였다.

산업부가 열거한 "탈원전,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신산업" 단어를 보면, 역시 에너지 공급 중심적인 편향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는 판단이다. '에너지신산업'이라는 키워드를 제외하고는, 핵발전소과 석탄발전 줄이고 대신 재생에너지 이용 확대하자는 에너지원의 교체 혹은 변화라는 공급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에너지신산업도 수요반응 시장 등의 수요관리 측면을 일부 포괄하고 있기는 하지만, '에너지자립 섬' 등의 논란 많은 사업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거듭되고 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앞서 말하자면, 탈원전,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정책 방향이 에너지 전환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를 적극 지지하며, 오히려 보다 과감하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러나 강조하려는 바가 다르다. 에너지 전환은 단지 에너지원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적, 사회적, 조직적, 문화적 요소들의 동시적인 변화와 재구성을 함의하는 것이다. 사회는 그대로 놔두고 에너지원만 바꿀 수는 없다는 말이다.

우선 생각해볼 것이 에너지 '수요 정점'이다. 개발시대와는 다르게, 이제는 에너지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도록 두어서는 안된다. 이미 한국 경제는 저성장 기조에 들어서면서 에너지 수요 증가세가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에너지 수요가 정점을 찍고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더 에너지 효율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에너지 수요가 계속 증가하도록 놔둔 채 에너지원의 변화만을 주장할 수는 없다. 독일이 보여주듯이(아래 그림 참조),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서 수요를 줄여나가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서는 에너지 효율 증가와 소비 감소 목표에 대한 논의가 없다.

그림 . 독일(환경부) 에너지 전환의 장기 목표 
(*출처: 독일 하인리히 뵐 재단(2017). 2050년 총에너지 소비량 목표는 2008년 대비 -50%)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배치가 분리되어 있는 점을 바로잡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전력 부문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서울과 경기도는 전국 전력 소비량의 31%를 소비하지만 권역 내에서 생산하는 발전량은 8.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인천과 충남 등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가지고 온다. 서울과 경기도 시민들이 누리는 전력 소비의 혜택은 다른 지역 주민들이 겪는 화력발전소와 초고압 송전탑으로 인한 고통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충남은 전국 석탄발전소의 절반을 그리고 경북은 핵발전소의 절반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들의 소비하는 전력보다 각각 2.5배와 1.5배를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 부정의'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에너지 전환의 방향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밀양/청도 갈등을 거치면서 더 이상 원격지에서의 대규모 중앙집중적인 전력 생산과 장거리 초고압 송전선로를 통한 공급이 어려워졌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따라서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 열병합발전소 등의 '분산 전원'을 확대한다는 정부 방침이 만들어졌지만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지난 정부가 대규모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신규 건설을 승인하면서 분산전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모순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신규 핵발전소와 석탄발전소를 건설하지 않으며 천연가스 열병합발전과 재생에너지 이용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 다행이다. 이제야 제대로 된 '분산전원' 정책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여기서 부족한 점이 하나 있다. '분산전원' 정책은 중앙정부로부터 지자체로 이양되는 에너지 분권/자치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분산전원' 확대 정책조차도 중앙정부에 의해서 주도된다면 그 의미가 크게 반감할 것이다. 중앙정부는 2030년까지 발전량 2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한전과 에너지공단을 몰아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공단은 지역본부에 재생에너지 업무를 강화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한전은 전기사업법을 개정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뛰어들 구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 변질시켜 지역주민들의 갈등과 저항을 낳고 지자체의 방관과 비협조를 야기할 수 있다.

중앙정부는 지자체가 어떻게 에너지 전환에 동참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보다는, 사업자들이 재생에너지 확대의 장애물이라 지적하는 '이격거리'를 폐지 혹은 축소하도록 지자체를 강요?압박하는 일부터 나서고 있다. 권한과 재정을 적극적으로 이양하면서 재생에너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설득하지 않는다면, 재생에너지 확대, 나아가 에너지 전환은 진전되기 힘들다. 서울시의 원전하나 줄이기 사업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반대로 법적으로 수립하도록 한 광역 시도의 지역에너지계획이 왜 그렇게 쓸모없이 방치되고 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생산, 공급으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을 배분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껏 에너지 생산, 공급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 경제적 이익은 일부 대기업들과 그 주식을 가진 국내외 주주들이 모두 가져갔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 그리고 핵에너지의 시대에서는 그랬다고 하더라도, 누구의 것도 아닌 재생에너지의 시대에는 그 경제적 이익을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시민들이 재생에너지 생산에 참여하여 이익을 얻어갈 수 있도록 하는 '재생에너지 경제 민주화'가 필요한 것이다. 독일의 태양광 발전소의 50% 정도가 시민들에 의해서 소유되어 있으며, 덴마크 풍력터빈의 80% 정도가 협동조합에 의해서 소유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생에너지로부터 얻은 경제적 이익이 폭넓게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익 공유제'는 재생에너지 갈등을 해결하는 실용적인 목적에서도 중요하다. 외지인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대규모의 재생에너지 개발 사업에 주민들이 저항하고 갈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개발사업자의 시선으로 주민들의 '민원'을 단지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으로만 이해한다면, 재생에너지 확대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역 곳곳에서 핵발전소/석탄발전소 그리고 초고압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과 유사한 일들이 재생에너지 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질 수 있다. 주민들을 어떻게 재생에너지 사업에 동참시킬 것인지, 그 방안을 찾아야 한다. 투명성과 의사결정 과정의 참여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개발 사업에 경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농촌태양광' 사업이 그 방안일 수 있다. 다만 지금처럼 부농을 중심으로 대규모로 추진해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해나가는데 적절한 에너지 산업구조를 찾아내야 한다. 개발주의 시대의 공공성에 매달려 전국 독점을 유지하고 있는 한전 공기업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 일인지 검토가 필요하다. 시장에 모두 맡기자는 '에너지 민영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산업이 에너지 전환 정책에 보다 잘 반응할 수 있도록 지역화하고 공공성을 강화, 유지할 필요성에 대해서 토론해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에너지 프로슈머' 정책을 위해서 한전의 판매사업을 개방하기 위해서 국회에 발의된 전기사업법 개정안에 대해서 본격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정부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내년 중에 수립할 예정이다. 3차 에너지기본계획은 그 전에 수립되었던 제 1, 2차 에너지기본계획과 크게 달라야 한다. 수립하는 과정과 절차도 크게 개선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1차 에너지 전환 기본계획의 성격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이제부터라도 에너지 전환이 무엇인지 심도 깊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 다시 강조하건데,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원을 바꾸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운영부소장

* 초록발광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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