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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8-03-26 09:35
만인 앞에서만 평등한 법의 한계 / 김현우 운영부소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20,511  
4대강 사업으로 수사가 확대된다 하더라도 MB는 여전히 잡범일 것이 거의 확실하다. 관련된 뇌물 액수나 횡령 건수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이 땅과 하천, 동식물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상흔을 남긴 사업 자체는 그대로 합법적인 것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 개헌이 있다. 조금만 비약을 해서, 만인 앞에서만 평등한 게 아니라 만물 앞에서도 평등한 헌법과 법률이라면 어떠할까 생각을 해본다. 4대강 사업을 헌법과 법률로 막을 수 없었던 일은 역사에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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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겨우 잡범이라니!
[초록發光] 만인 앞에서만 평등한 법의 한계

결국 MB가 구속되었다. 사법 정의는 실현된다는 것. 법은 만인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증명한 일이니 다행이고 축하할 일이다. 만인 앞에서 평등한 법 적용만 해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내가 보기에 MB는 여전히 잡범이다. 뇌물수수, 조세포탈, 국고손실, 횡령, 직권남용,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십수 가지 죄목이 달렸고 뇌물액도 100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라고는 하지만, 죄의 내용은 여전히 잡스럽다. 한국의 정치인들한테 그리 드물지 않은 경우라 놀랍지 않기도 하거니와, MB의 대역죄 중 10분의 1도 포함되지 않은 죄목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저 너무 크게 자기 이익을 챙긴 사기꾼으로 구속된 것이다.

MB는 많은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중 최고는 당연히 4대강 파괴 사업이다. 앞으로 4대강 사업으로 수사 대상이 확대될 수도 있고 MB에게 더 많은 혐의가 부과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에 4대강 사업과 관련하여 고발이 안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수사가 안 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건설사 담합, 뇌물, 부실공사 아니면 졸속적인 환경영향평가 같은 절차적 문제들에 대한 것들이었고, MB가 감옥에 갈 정도의 사법적 문제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 이상하고도 황당한 일이 아닌가. 100억 원 정도가 아니라 22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국고를 날렸고, 수많은 동식물이 복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희생되었으며, 또 수많은 농민과 어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벙벙하게 차오른 녹조 호수를 보고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수많은 국민들이 있는데 말이다. 

오로지 개인의 고집으로 4대강을 황폐화 한 MB가 여전히 잡범에 머무르고 있는 법률적 이유로 일단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정책적 판단과 결정 자체에 죄를 묻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핵발전소 건설, 새만금 간척, 국립공원 케이블카 등 이른바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실시되는 사업에 아무런 이의 제기가 어려운 한국의 환경 관련 법제도와 관련이 있다. 형식적인 공청회와 설명회를 거치고 나면, 엄청난 시위나 극한적인 투쟁으로도 되돌리기 어렵고 사후에도 책임을 묻기 어려운 불합리는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또 하나, 재산상의 피해와 결부되는 구체적인 피해자가 없으면 법률적 침해나 위반으로 인정되지 않는 현재까지의 관련 법과 법철학 또는 법상식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4대강 사업으로 직접 재산권을 침해받은 지주나 농어민에게는 일정한 보상이 주어지기는 해도 사업을 위한 수용 개념이 적용되며, 천성산의 도롱뇽이 법률적 원고가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쫓겨난 단양 쑥부쟁이나 모래무지는 피해자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4대강 사업으로 수사가 확대된다 하더라도 MB는 여전히 잡범일 것이 거의 확실하다. 관련된 뇌물 액수나 횡령 건수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이 땅과 하천, 동식물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상흔을 남긴 사업 자체는 그대로 합법적인 것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 개헌이 있다. 조금만 비약을 해서, 만인 앞에서만 평등한 게 아니라 만물 앞에서도 평등한 헌법과 법률이라면 어떠할까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미 그런 논의와 사례들이 있다. 2009년에 작고한 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는 모든 권리는 실은 인류에게 부여된 것이고 다른 형태의 비인간적 존재들은 인간에게 도움이 될 때만 고려된다는 문제를 숙고하며 '지구법(Earth jurisprudence)'을 주창했다. 지구법의 문제의식은 21세기에 와서 여러 지역에서 실제로 입법에 반영되고 있다.  

미국 뉴햄프셔 주의 반스테드 마을은 "자연 공동체와 생태계는 반스테드 마을 안에서 존재하고 번영할 수 있는, 빼앗을 수 없는 근본적인 권리를 갖는다. 생태계는 습지, 개천, 강, 대수층, 기타 물 시스템을 포함하지만, 이에 제한되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구절을 담는 조례를 제정했고, 다른 지역들에서도 유사한 결의들이 채택되었다. 이런 조례들은 자연 자체에 권리를 부여하고, 인간의 재산과 관련되지 않더라도 생태계에 미치는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2008년의 에쿠아도르 헌법은 지구법의 아이디어를 더 큰 범위에서 보다 일반적인 형태로 담아낸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 헌법의 7장은 자연의 권리에 할애되어 있는데, 자연 또는 파챠마마(어머니 지구)는 그 존재에 대해 포괄적으로 존중받을 권리를 가지며 모든 사람, 공동체, 인민과 국가는 자연의 권리를 위해 공권력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또한 자연은 복원될 권리를 가지며 이러한 복원은 영향 받은 자연 생태계에 의존하는 개인과 공동체에 대하여 국가와 자연인 또는 법인이 보상할 의무와 별개의 것이라는 점, 그리고 국가는 종의 절멸, 생태계의 파괴 및 자연적 순환의 불가역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활동들에 대하여 예방하고 제한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도 포함되었다.  

이런 내용이 우리 헌법에 있었다면 4대강 사업의 계획 단계에서 위헌임을 지적할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까지 복원(재자연화)을 미루고 있는 것 역시 위헌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국책사업으로 이루어지는 토건 사업의 입안 자체가 더욱 신중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며칠 전 청와대에서 발표한 개헌안에 과거보다 진일보한 생명권과 환경권이 명시되었다고 보도되고 있다. 단지 공해 문제에 대처하는 환경 개념에서 국민의 기본권 개념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개헌안이 '녹색 개헌'이라 평가될 정도로 전향적인 것인지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대통령 개헌안은 "자연과의 공존 속에서 우리들과 미래 세대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37조와 38조에 모든 국민은 안전하게 살 권리를 가지며,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 그리고 국가와 국민은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보호해야 하고 국가는 동물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동물 보호가 헌법에 명시된 것은 분명 긍정적이지만, 역시나 중심에는 사람이 있는 논리와 맥락이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가 지난 연말에 국회에 제출한 자문안에 인간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함께 누릴 권리를 제기한 것에 비하면 기조를 다소 완화하고 대신에 동물 보호를 덧붙인 것으로 읽힌다. 

어쨌든 개헌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이제 시작이고, 헌법에서의 변화 또는 개헌 과정에서의 논의들 모두가 이후 환경관련 법률과 제도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 만큼 지금이라도 더욱 과감한 구상과 제안이 의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개헌과 법률 개정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MB에게 다시 응분의 죄를 묻는 것은 불소급의 원칙 때문에 통탄스럽게도 불가능하겠지만, 4대강 사업을 헌법과 법률로 막을 수 없었던 일은 역사에 마지막이 되어야 할 것임이 분명하다.  

/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운영부소장




* 초록발광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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