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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8-08-24 09:38
국가론과 기후변화 / 이정필 연구부소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9,493  
기후변화처럼 예외상태가 극단적이지만 정상상태가 되는 순간, 국가론이 재부상하고 국제정치가 중요해진다. 기후변화 시대에 한국의 주권이란 무엇인가? 지방분권 지향 국가에서 지방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동북아시아 지역블록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유엔이 세계국가의 위상을 획득하는 게 바람직할 것인가? 이런 고차원의 질문들에 한국은 대비하고 있는 것일까? 기후대응계획이나 장기발전전략에는 숫자와 정책은 난무하겠지만, 그 토대를 뒷받침하는 전환적 정치 기획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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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론과 기후변화
[에정칼럼] 자본주의와 국가 및 지구 주권의 모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탈국가주의’를 내세웠다. 그가 말하는 탈국가주의가 무엇을 말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할 마음은 없다. 국가와 탈국가를 굳이 나눠 혁신적 좌표로 거창하게 제시하는 철 지난 행보에 신경 쓸 겨를도 없다.

소모적인 탈국가주의 논쟁으로는 정부의 정치 행태를 직시할 수 없다. ‘적폐청산’이라는 과거의 정치가 현재의 정치로 이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공정경제’로 대표되는 현재의 정치가 미래의 정치에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제2의 민주화는 국가, 시장, 시민사회를 가로지는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일인 것이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같은 새로운 의제도 이런 과정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8월 20일, 백운규 산업통상부 장관은 기자 간담회에서 “퇴임 후 에너지전환 정책에 성공한 장관이 아니라 산업정책에 성공한 장관으로 기억에 남고 싶다”고 말했다. 탈원전 논쟁 탓에 산업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곧바로 녹색당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에너지전환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섰는지, 그동안의 진정성이 다시 한 번 도마에 올랐다. 특히 에너지와 산업, 두 분야를 총괄하는 부처 수장으로 에너지전환 산업화를 비롯한 전환 생태계 불감증을 고스란히 노출한 것이다.

에너지는 그래도 정치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반면 기후변화 의제는 정부가 바뀌어도 비정치적 영역으로 남아 있다. 파리협정 프로세스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재산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에너지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다. 에너지를 다소비하고 온실가스를 다배출하는 기업들과 이들의 입장을 앞장서서 대변하는 언론들, 그리고 장기 집권하면서 변화를 거부하는 관료집단들의 반(反)전환 동맹세력의 입지만 공고해지고 있다.

재난 수준의 폭염 같은 이상기후의 일상화가 점쳐지는 가운데 그 원인으로 기후변화가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기후변화는 전문가의 멘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 같다. 기후변화를 에너지와 교통, 산업, 노동, 그리고 일상생활과 연결시키려는 성찰적 공론화나 정치적 실천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기요금 논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이 각종 계획과 보고서에서 잠자고 있는 한 상황이 나아질 일은 없을 것이다.


10월 1~5일, 인천 송도에서 열릴 제48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총회에서 ‘1.5도 특별보고서’가 발표될 것이고, 12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개최되는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4)는 신기후체제 대응의 세부지침를 마련할 예정이다. 지구적 비상사태를 맞아 얼마나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만들어질지 확실하지 않지만, 점차 새로운 국제질서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기후변화처럼 예외상태가 극단적이지만 정상상태가 되는 순간, 국가론이 재부상하고 국제정치가 중요해진다. 기후변화 시대에 한국의 주권이란 무엇인가? 지방분권 지향 국가에서 지방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동북아시아 지역블록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유엔이 세계국가의 위상을 획득하는 게 바람직할 것인가? 이런 고차원의 질문들에 한국은 대비하고 있는 것일까? 2030년, 2040년, 2050년까지의 기후대응계획이나 장기발전전략에는 숫자와 정책은 난무하겠지만, 그 토대를 뒷받침하는 전환적 정치 기획은 없다.

얼마 전 <기후 리바이어던 Climate Leviathan>(Verso, 2018)이 출간됐다. 이 책의 저자인 조프 만(Geoff Mann)과 조엘 웨인라이트(Joel Wainwright)는 ‘미래 지구의 정치이론’을 부제로 달았다. 이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예상되는 국제질서 시나리오를 경제구조와 정치구조의 두 변수를 두고 네 가지로 전망하다. 각각 리바이어던(Leviathan), 베헤모스(Behemoth), 마오(Mao), 엑스(X)라는 상징으로 표현된다. 평가는 독자의 몫이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책 제목처럼 기후 리바이어던(Climate Leviathan)은 가장 우세한 질서로 예고된다. (외계가 침공하지 않더라도) 지구적 주권자가 (비록 주권 국가들이 기능하더라도) 국제적인 것으로 나타나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비상조치를 취하게 된다. 반면 기후 리바이어던에 유력한 경쟁질서로 기후 베헤모스(Climate Behemoth)가 제기된다. 지구적 단위로 결성된 거버넌스와 엘리트주의를 거부하면서 국가 주권의 절대 우위를 주장하는 극우세력이나 초국적 기업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를 떠올리면 된다.

비자본주의 혹은 반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지향하지만, 정치권력 등 권력구조에서 차이를 보이는 두 가지 다른 시나리오도 있다. 기후 마오(Climate Mao)는 비자본주의 혹은 권위주의적 국가를 지칭하는데 이들은 지배적 국제관계에서 자본주의 국가들과 협력하면서 그 내부에서는 강력한 집단주의를 추구하거나, 진보적 대중운동을 통해 그런 체제가 정당화되기도 한다. 전통 국가사회주의의 새로운 모델일 수도 있고, 남미 좌파 국가의 갱신일 수도 있다.

저자들에게는 기후 리바이어던과 기후 베헤모스는 물론 기후 마오 역시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부정적 시나리오에 가깝다. 이와 달리 기후 엑스(Climate X)는 자본주의 경제구조와 국가주권의 정치구조 모두를 반대하는 급진생태주의로 총칭할 수 있다. 다양한 의미로 변주되곤 하지만 기후정의(Climate Justice) 진영도 여기에 포함되며, 다른 세계를 지향하는 수많은 대안세력을 포괄한다. 이들 사이에 기후 마오나 기후 리바이어던에 대한 부분적 동조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엑스가 아직 출현하지 않은, 미지로 향하는 다양한 실험과 과정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자본주의와 국가 및 지구 주권의 모순을 정면으로 주시하는 것이 흠은 아닐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 작성은 다가올 미래를 단순 예측하기 위함이 아니다. 잘 살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고 정치적 실천을 구성하는 나름의 사고 실험이다. 국가주의든 탈국가주의든 그 기표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김병준식 탈국가주의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진짜 혁신이 없으면, 보수는커녕 진보도 내일은 없다.

현재와 미래의 정치가 필요하다면, 그리고 에너지전환과 기후변화 대응이 절실하다면,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 시스템을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임기가 정해져 있는 선출된 위임권력과 무능한 정당정치로는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기후 엑스도 아직은 비어있지만 말이다.

/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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