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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8-12-18 11:01
탈핵 플랜 중 우리에게 없는 시나리오 / 이보아 연구기획위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9,102  
왜 우리는 2030년 탈핵에 멈춰 있었는가. 지금 당장 모든 핵발전소를 멈추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이런 대안 시나리오를 만들게 되었다고 오히려 스스로 선을 그어버렸는가. 그리고 탈핵에 적색등이 켜지자 이제는 그 2030년마저 재검토해야 한다고 물러서려 하고 있는가. 지금 자기 논리에 갇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방어하기에 바쁜 탈핵 세력에게는, 다른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그것은 모두 당장 폐쇄의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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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플랜 중 우리에게 없는 시나리오
[에정칼럼] 에너지전환 시나리오들, 풍년 속의 모순?

한국에는 이제 탈핵과 에너지 전환의 대안 시나리오‘들’이 제법 존재한다. 핵발전소를 모두 멈추는 시점이나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이 100%를 차지하게 되는 시점 등을 제시하는 이 규범적인 시나리오들은 그래서 소위 20XX 시나리오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에정칼럼의 필자들이 속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역시 독자적으로 또는 녹색당과 함께 2030 탈핵 2050 탈석탄 시나리오를 발표하면서, 뒤를 이어 탈핵이나 에너지 전환의 실현 시점을 제시한 시나리오들이 2040, 2050 시나리오 등으로 알려졌다. 이후 문재인 정부 또한 탈핵 시점을 2080년으로 제시하며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작성했다. 그중에서도 탈핵을 창당 목표로 내건 녹색당이 2030 탈핵 시나리오를 제시하자 후속 시나리오들에게 2030년은 마치 마지노선처럼 작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탈핵·에너지전환 시나리오들은 에너지 분야 최상위 국가계획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기본계획이 핵발전소의 상대적 절대적 확대를 목표로 삼고 있던 한국의 현실에서 매우 큰 2가지 역할을 해왔다. 우선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을 늘려 가면 실제로 핵이나 화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그려볼 수 있게 했다. 두 번째로, 따라서 이를 정치적으로 결정하고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준비해가면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나 산업과 일자리 피해 등을 최소화할 수 있음을 제시하면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들은 여전히 중요하고 필요하며 할 수 있는 역할이 남아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적어도 담론적으로는 그 역할을 다한 듯하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목표시점이 다를 뿐 정부의 공식 문서상에 탈핵 시점이 제시되고 에너지전환을 선언하면서 대안 시나리오들의 주요 논리가 흡수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이 시나리오와 시나리오의 활용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간극 혹은 모순 때문이다.

이 시나리오들에는 공통점이 2개 있다. 먼저 중요한 전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핵발전소 중대 사고의 발생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 핵발전소 사고의 가능성이 있으며, 그 피해가 상당할 것이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이에 대비하는 탈핵 시나리오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탈핵 또는 에너지전환의 시점이다. 시나리오들이 제시하는 목표시점은 시나리오의 작성자 각각의 가정을 통해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2030이나 2040 시나리오는 핵발전소의 수명연장 없는 설계수명을 기준으로 시점을 정한 것이다.

질문을 던져보자. 2030년까지 혹은 2040년까지 핵발전소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 건가? 핵발전소 사고가 언제 발생할지 그러니까 그게 2030년 전에 발생할지 2040년 전에 발생할지는 지구상의 누구도 알 수 없다. 즉, 저 시나리오대로 한국 탈핵이 안전하게 실현된다는 장담은 아무도 할 수 없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저 시나리오대로 실행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빠른 탈핵시점인 2030년까지라 하더라도, 그때까지는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또 다른 전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제 모순이 드러난다. 핵발전소가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가 계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탈핵을 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가동이 중단된 독일의 한 원자력 발전소의 모습 [출처: 융에벨트 화면캡처]

모두 당장 폐쇄의 시나리오

이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를 말해보겠다. 참석자 모두가 탈핵을 염원하고 탈핵을 위해 자기 시간을 쪼개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어떤 회의에 참석했다. 첫 안건은 바로 고준위 핵폐기물 재공론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였다.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의견은, 우리는 이 재공론화를 통해 연간 약 690톤의 고준위 핵폐기물을 토해내는 핵발전소를 계속 가동시키면서 저장시설이 없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정부나 핵산업계의 주장이 얼마나 어불성설인지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물며 핵폐기물을 훨씬 더 많이 훨씬 더 빠르게 토해낼 신규 핵발전소가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도 말이다. 그런데 참석자들 간 이견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것은 의외로 한 참석자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 참석자는 앞의 의견에 공감하는 한편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모든 핵발전소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에 동조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더 많게는 그런 주장은 비현실적이며, 그 때문에 오히려 대중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논란이 오고 가는 것을 지켜보며 문득 깨달았다. 하나는 탈핵을 주장하는 많은 이들조차도 지금 당장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 생각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데 모두 당장 폐쇄가 현실적이라 하는 쪽이나 비현실적이라 하는 쪽이나 아직 그 근거가 분명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후자는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유로 제시된 것들 중에는 검토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기후변화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어디에선가 검토되었을 법한 것들이었다. 다만 그것들은 서로 다른 주체가 개별적으로 검토했을 가능성이 높고, 모두 당장 폐쇄의 현실/비현실성을 어떻게 뒷받침할 것인지 종합적으로 검토된 적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순간 아찔했다. 이대로라면 한국의 탈핵세력은 어느 날 갑자기 핵발전소 사고가 나더라도 사고가 난 핵발전소 외 어떤 핵발전소도 멈추지 못하고 일본보다도 더 빠른 핵발전 의존 시스템으로의 회귀를 목격하게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스스로에게도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우리는, 아니 나는 2030년 탈핵에 멈춰 있었는가. 지금 당장 모든 핵발전소를 멈추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이런 대안 시나리오를 만들게 되었다고 오히려 스스로 선을 그어버렸는가. 2030년이라도 지켜내야 한다고 끙끙대고, 곳곳에서 탈핵에 적색등이 켜지자 이제는 그 2030년마저 재검토해야 한다고 물러서려 하고 있는가. 지금 자기 논리에 갇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방어하기에 바쁜 탈핵 세력에게는, 다른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그것은 모두 당장 폐쇄의 시나리오다.

이 모두 당장 폐쇄 시나리오는 하나일 필요도 없다. 누가 만드냐의 문제도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당장 폐쇄의 시나리오 역시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그것은 계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모두 당장 폐쇄하고자 하는 혹은 해야 하는 시점이 전력소비가 낮은 봄이나 가을이라면 시나리오는 훨씬 더 쉽게 간단하게 작성될 수 있을 것이다. 전력소비가 높은 여름이나 겨울에 모두 멈춰야 한다면, 시나리오는 훨씬 더 어렵겠지만 한편으로 훨씬 더 풍성해질 수도 있다. 비상시 전력을 반드시 공급해야 하는 우선순위가 가려질 것이며(이때 9·15 정전 당시의 논의가 활용될 것이며) 무엇보다 소비 절감과 효율화가 대책의 최우선 순위가 되고, 가용발전설비들은 최대 활용 방안이 실행될 것이다. 특히 현재 가장 성적이 나쁜 산업 에너지 효율화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이 모색될지 모른다. 모두 당장 멈추게 된다면 어디가 어떻게 타격을 입을지, 타격을 입지 않기 위해 산업과 기업들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취해야 하는지 말이다.

그러자면 모두 당장 폐쇄의 시나리오는 이제까지 연구된 온갖 시나리오와 전략 연구와 시뮬레이션의 종합편이 될 가능성이 높고, 이 시나리오를 실제로 작동시키기 위해 준비된 것과 준비되지 못한 것이 식별될 것이며, 필요한 사회적 합의는 무엇이고 그 사회적 합의의 구체적인 개인과 집단이 확인될 것이다. 한 마디로 규범적 시나리오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훨씬 더 정치적일 것이다. 에너지 전환을 선언한 정부 시대에 오히려 수세에 몰린 탈핵 세력은 좀 더 가까운 미래 혹은 지금 당장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 어쩌면 모두 당장 폐쇄의 시나리오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시나리오는 핵발전소 사고 발생의 경우만 가정할 필요가 없다. 탈핵을 주장하는 이들이라면 이미 알다시피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시설은 이미 꽉 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장시설을 어디에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갑자기 수월하게 결론이 날 리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핵발전소를 멈춰야 할 이유를 다시 한 번 제대로 주장해야 하지 않겠는가?!

/ 이보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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