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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9-03-19 10:59
'미세먼지 포퓰리즘', 그림자와 빛의 두 얼굴 / 김현우 선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671  
에너지전환과 미세먼지 논쟁으로 한국에서 거의 처음으로 본격적인 공식정치화와 운동정치화를 맞이한 에너지 정치는, 그러나 너무도 미진한 제도정치의 태세 앞에서 포퓰리즘의 계기를 먼저 맞이하게 되었다. 불행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자의 반대편에 있을 빛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에너지전환 운동 역시 논리와 주장에 앞서 이러한 포퓰리즘 계기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객관화하되 그 일부가 될 고민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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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포퓰리즘', 그림자와 빛의 두 얼굴
[에정칼럼] 에너지 제도정치와 운동정치, 모두의 갱신을 말할 때

최근 미세먼지 문제가 정치담론화 되는 양상을 보면 ‘중우정치’라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는 포퓰리즘의 전형을 보는 것만 같다. ‘중국 탓’과 ‘탈원전 탓’은 반지성주의적인 선동의 모닥불에 부어지는 기름이다. 위성사진 해석의 오류라든가 미세먼지 2차 생성에 작용하는 국내 요인 같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또는 감정적으로 한가한 이들의 주장으로 공격받는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핵발전이 실제로 줄지도 않았고 석탄화력의 발전량은 그래도 조금 줄었으니 에너지전환 정책 때문에 미세먼지가 늘었다는 것은 괴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앞으로 미세먼지를 해결하려면 석탄화력을 퇴출하는 대신 그 공백을 핵발전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적지 않은 이들에게 설득력 있는 진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세먼지와 중국 그리고 탈원전을 한 데에 모아 밀고 나가면 이런 주장도 가능하다. 핵발전이 미세먼지의 대안이라면 그리고 당분간 중국이 전기 소비를 줄일 공산이 적다면 중국의 석탄화력발전부터 핵발전으로 교체하자고 제안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중국은 현재 45기(총 43GW 설비용량)의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고 13기(12.6GW)를 건설 중이며, 총 982GW인 석탄화력발전을 2020년까지 259GW 증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진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중국에서 신설 예정 용량의 석탄화력발전을 한국형 핵발전소(1.4GW 기준)로 대체한다면 185기의 핵발전소를 지어야 하고, 기존 석탄화력까지 모두 핵발전으로 대체하면 자그마치 886기가 필요하다.

중국에 1백기 이상의 핵발전소가 신설되는 것에 동의할 한국 국민들 그리고 정치인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중국의 핵발전소가 한국의 것들보다 부실하게 시공되고 위험하게 운영될 것이라고 전제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한 해에 몇 기 건설도 어려운데 논리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고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중국의 동해안에 밀집되는 핵발전소 규모 자체를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들도 것이다. 어쨌든 중국 탓이고 정부 탓이기 때문에 이 모든 논의 자체가 싫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뭔가를 차근차근 따져보고 자명하다고 여기는 근거와 논리를 되돌아보자는 이야기는 초입부터 거부된다. ‘미세먼지 포퓰리즘’ 또는 미세먼지 이슈를 촉매로 격화된 포퓰리즘적 현상이라 할 만 하다. 그리고 이런 양태는 극우 성향의 온-오프라인 사회운동뿐 아니라 공식 제도정치에서도 다르지 않다. 실은 제도정치에서 문제가 해소되지 못하기 때문에 포퓰리즘의 계기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자한당은 태극기부대의 괴담과 선동에 편승하고 여당은 탈원전 당론 정리마저 소극적이며 청와대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안 논의를 꺼리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한국의 경우만도 아니다.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부터 세계 청소년들의 ‘기후파업’까지, 전통적인 정치학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에너지-기후 정치 현상들이 생겨나는 것도 기존 정치질서와 국제 논의체제가 대중들의 불안과 불만을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을 드러내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를 쓴 샹탈 무페와 정치적 동반자로 활동했던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는 포퓰리즘을 “‘권력자들’에게 맞선 ‘패배자들’을 동원하여 사회를 두 진영으로 분리하는 정치적 경계 구축 전략”으로 정의한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포퓰리즘 현상들을 기존 정치 질서에 걸었던 기대감이 불안으로 바뀌면서 무너진 질서에 대해 아래로부터 나타나는 대중들의 원초적 대응 방식으로 본다.

하지만 무페에게는 포퓰리즘 현상 자체가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정치와 질서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로서 다가온다. 그것이 탈정치화와 민주주의 쇠퇴, 공포와 배제의 확산을 유발하는 우파 포퓰리즘으로 귀결될지, 아니면 무페의 바램대로 기성의 정치공학적 사회민주주의와 전통적 계급정치를 뛰어넘는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촉진하는 좌파 포퓰리즘의 기회가 될지가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포퓰리즘은 진통을 수반하지만 이를 외면하고 회피해서는 안 되며, 그 속에서 정치와 제도의 재구성을 적극적으로 꾀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무페의 주장과 제언이 우리의 복잡한 생각과 염려를 쉬이 씻어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세먼지 포퓰리즘의 현상들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미세먼지 원인과 발전원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데이터들이 소개된다 하더라도 반지성주의적 반응들은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탈핵을 이야기하는 환경단체는 미세먼지 걱정도 안 하면서 세금만 축내는 집단이라는 댓글을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재생가능에너지 관련 논쟁 역시 에너지 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 보다는 ‘좌빨정권 비판 대 정부 엄호’라는 구도가 압도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잠재적 도화선은 에너지 포퓰리즘의 화약을 언젠가는 만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보다 큰 염려, 그리고 정부의 행보보다 앞서 나아가는 에너지 시민의 실천이라는 포퓰리즘 현상도 존재한다. 그 의미를 과장하거나 축소해서도 안 되겠지만, 무페의 표현을 빌자면 좌파 에너지 포퓰리즘의 실마리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에너지전환 운동 역시 논리와 주장에 앞서 이러한 포퓰리즘 계기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객관화하되 그 일부가 될 고민도 필요하다. 물론 제도 정치의 책임과 역할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며, 제도 정치의 갱신 없이는 포퓰리즘의 대안도 가능하지 않다.

에너지전환과 미세먼지 논쟁으로 한국에서 거의 처음으로 본격적인 공식정치화와 운동정치화를 맞이한 에너지 정치는, 그러나 너무도 미진한 제도정치의 태세 앞에서 포퓰리즘의 계기를 먼저 맞이하게 되었다. 불행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자의 반대편에 있을 빛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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