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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9-04-08 16:50
우리는 '검은 공화국'에 산다 / 이정필 부소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8,012  
모두가 먼지와 탄소의 '검은 공화국'에 살지만 각자의 공간은 각양각색이다. 전환 진영은 포항, 영양, 제주와 필리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에너지전환을 지배하는 자들과 여기에 동참하는 자들이 서둘러 할 일은 그 안의 반지성적 풍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지나간 정부 탓, 반대세력 탓, 지역주민 탓이라는, 남 탓 반지성주의를 경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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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검은 공화국'에 산다
[초록發光] 탈핵과 탈탄소에 대한 '반지성주의'

세계경제포럼(WEF)은 2013년부터 매년 주요 국가들을 대상으로 에너지구조성과분석지수(EAPI)를 발표했다. 2018년에는 국제적 흐름을 반영해 세부 지표를 수정한 에너지전환지수(ETI)로 이름을 바꿔 국가별 순위를 매긴다. 110여개 국가 중 한국은 2018년 49위, 2019년 48위를 기록했다. 발표 시점을 고려하면 각각 2017년과 2018을 기준으로 평가한 것으로 보면 된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은 선진국(advanced economies)으로 분류된 32개국 중 30번째를 차지했는데, 체코와 그리스가 그 뒤에 이름을 올렸다. 

국제기구의 평가나 국가별 비교 지수들을 활용할 때는 주의할 게 많지만, '귀머거리 대화'가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는 나름 쓰임새가 있다. 에너지전환을 둘러싸고 반지성주의가 판을 치는 현 시점에서 에너지전환지수에 그런 역할을 기대해볼 수 있다. 다보스포럼이라고 잘 알려진 세계경제포럼은 주로 기존 질서를 유지하거나 재생산하려는 입장을 대표하는 민간 총회이다. 매년 세계 위기와 기회를 논의하는 자리에 생태적 주제가 항상 거론되곤 하지만, 이 또한 우파적 틀 내에서 수용되는 것은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대화다운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세계경제포럼은 왜 에너지전환에 주목하는가? 포럼에서 규정하는 전환의 실체는 무엇인가? 전환을 추동하는 요소는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에너지전환 내부의 쟁점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에너지 백년지대계를 걱정하는 이들이라면 자신들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국제판에 민감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아니 그렇게 하길 바란다.  

에너지전환의 준비 정도를 평가하는 주요 지표인 ①자본과 투자, ②목표와 규제, ③제도와 거버넌스, ④인프라와 기업혁신환경, ⑤인적자본과 소비자참여, ⑥에너지시스템구조 등을 함께 진지하게 살펴보는 작업에 착수하면 된다. 스웨덴, 스위스,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Top 10에 속한 나라들과 무엇이 다른지 비교하는 방식도 '선진국 따라잡기'에 능숙한 이들의 특화된 영역이지 않은가. 

올해 <에너지전환지수 보고서>(Fostering Effective Energy Transition, 2019. 3)는 에너지시스템이 경제-기술-사회시스템의 공진화로 보고, 다음 세 가지 과제에 주목한다. 첫째, 에너지경제시스템에서는 에너지 소비와 경제성장의 탈동조화를 검토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기술시스템 측면에서는 저탄소 기술의 잠김 상태를 극복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셋째, 에너지전환의 비용과 편익의 공정한 분배와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탈정치적 에너지전환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세계경제포럼이 제시하는 에너지전환의 추진단계 역시 여러 층위의 정치과정에서 다뤄야만 효과적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 들어 벌어지고 있는 에너지전환 논쟁들을 반지성주의로 싸잡아 비난해서는 곤란하다. 합리적인 문제제기와 생산적인 대안생산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성과를 내거나 평가하기에 시간이 더 걸리는 정책들도 제법 많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에너지전환의 미담이 없다는 조급증이 아닐까 싶다.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에너지 기업들의 구태 경영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빨리 성과를 보여야 하는 조급함이라는 함정에 빠진 전환관리자들에게 에너지전환지수의 순위 정체는 아쉬움을 넘어 시야를 좁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령 의도하지 않더라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데 일조해 에너지전환의 지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치인, 관료, 전문가, 활동가 모두 각자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자.  

최근 지열발전, 풍력발전, 고형폐기물연료(SRF)가 이슈가 된 세 사건들은 에너지전환의 불편한 진실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이 사건 모두 그 기원이 에너지전환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사건의 범위가 복잡하고 그 파급효과가 상당하다는 점에서, 에너지전환지수가 담지 못하는 한국 에너지전환의 실상을 마주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사례들이다. 

2017년, 지열발전으로 촉발된 포항 지진은 과거 정부의 책임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부실한 관리감독은 전기를 생산하는 지열발전의 실증만이 아니라 지하 열을 활용하는 지열 정책일반, 나아가 에너지전환의 위험성과 무용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조사단의 발표를 호기로 삼아 에너지전환 때리기에 앞장서는 이들을 탓하는 데 힘을 쏟아서는 에너지전환의 반지성 현상에 동참하는 꼴이다. 전환기술 도입 실증·보급 사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핵발전소와 핵폐기물처리장은 물론이거니와 석탄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하는 CCS 실증사업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2018년, GS E&R이 추진하는 영양 제2풍력사업 환경영향평가협의회 당시 발생한 물리적 충돌사태는 현재 진행 중이다. 파괴적 방식의 풍력사업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단체들은 난개발과 설비집중으로 인해 환경파괴와 생활피해를 호소해왔다. 협의회가 열리는 군청 회의실에 문제를 제기하려고 온 주민들을 GS 직원들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태는 반대 주민들에 대한 기업의 고발로 이어졌다. 반면 GS와 영양군청 측의 혐의 대해서는 '봐주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예전 정부부터 사회적 쟁점이 된 재생에너지 갈등을 예방·관리한다는 정부 정책에도 불구하고, 전환관리의 예외, 영양과 같은 치안지역의 존재는 여전하다. 

2019년,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됐던 생활폐기물의 정체가 밝혀졌다. 제주도는 늘어만 가는 쓰레기를 고형폐기물연료로 처리할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위탁업체는 압축 포장해 필리핀으로 쓰레기 투기를 한 사실이 적발됐다. 우여곡절 끝에 평택으로 돌아왔지만, 이마저도 다시 필리핀으로 재수출됐다. 쓰레기 불법투기의 국제화는 전형적인 환경부정의 사건이다. 고형폐기물연료의 정책실패는 강원, 충남, 전남에서도 계속됐고,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최근까지 다툼이 지속되고 있다. 폐기물과 산림바이오매스의 에너지화 쟁점은 언제 터질 전환의 뇌관으로 남아 있다. 근본적으로는 '쓰레기 대란'을 반복하지 않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전환의 치부를 들춰서 그렇지, 미담도 많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시민사회와 지역사회의 끈질긴 의지와 노력에 힘입어 전환시대를 개척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전환이 공식화·제도화되는 과정은 순수한 논리만으로는 어렵다. 전환지수 순위도 올려야 하고, 양적 목표 달성 같은 가시적 성과도 내야한다. 하지만 에너지전환의 지역적·전국적, 정서적·물질적 동의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그들도 우리처럼' 모두가 먼지와 탄소의 '검은 공화국'(Black Republic)에 살지만 각자의 공간은 각양각색이다. 전환 진영은 포항, 영양, 제주와 필리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에너지전환을 지배하는 자들과 여기에 동참하는 자들이 서둘러 할 일은 그 안의 반지성적 풍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지나간 정부 탓, 반대세력 탓, 지역주민 탓이라는, 남 탓 반지성주의를 경계하자. 선언한다고 해서, 집권한다고 해서, 그리 쉽게 바뀔 일도 아니며, 과녁을 잘못 겨냥해서는 적대적 의존관계를 청산할 수도 없을 것이다. 

/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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