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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9-05-07 10:09
패스트트랙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 김현우 선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7,811  
가동될 핵발전소가 30개에 이르고 누적된 핵폐기물이 포화 상태에 이를 때, 한반도의 식생이 변화하고 혹독한 여름과 겨울이 계속될 때, 이를 두고 멱살잡이를 한 국회의원들은 없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석탄화력 정책이 따로 놀 때 이를 두고 진지하게 사과한 대통령과 장관도 없었다. 소선거구제가 권역별 연동형비례대표제로 보완된다 하더라도 그런 상황이 크게 바뀌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바로 여기에 정치의 부재가 있고, 심각한 의제들을 한가한 소리로 만드는 프레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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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에정칼럼] 차선의 정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공수처와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입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랐다. 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여야 4당과 자한당 사이의 공방은 스펙타클한 몸싸움으로 이어졌고 언론들은 자극적인 장면들을 좇았다. 패스트트랙의 여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후 한동안 한국 정치극장을 규정할 프레임을 만들어낸 것 같다.

그런데 패스트트랙의 향하는 곳, 이 글에서 좀 더 좁혀 말해서 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 개혁의 최대치 결과는 무엇일까? 의석수 득실 계산에 따른 자한당의 반발과 정의당의 적극적 태도, 그리고 바른미래당의 좌고우면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하더라도, 그 정도 난리라면 무언가 더 큰 이야기를 두고 벌어졌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연동형비례제는 개혁을 담보하는가?

사실 이번에 패스트트랙 오른 입법안은 정치제도 개혁의 프레임으로도 너무 협소하다. 여야 4당은 물론 자한당까지도 일정한 딜이나 여론 압박을 통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염두에 두고 골격이 짜인 탓이 클 것이다. 국민이 좋아하지 않는(것으로 간주되는) 의원 증원은 배제되었고, 지역구는 일부 축소되었으며, 비례대표제마저 권역별 시행으로 정해졌다. 물론 이후 입법 논의 과정에서 소폭 증원을 포함하는 조정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여야 4당의 입법안이 큰 틀에서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역구 250명에 전국단위 비례대표 250명 수준으로 의석을 확대하고 국회의원의 특권 축소를 연결한다거나 내각제의 정당 책임정치 요소를 포함하는 것과 같은 논의는 애초에 배제되었다. 즉 지금의 입법안은 국회 통과를 위하여 정치공학적으로 차선책을 종합한 결과인 측면이 크다. 물론 누군가는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만으로도 의회 구성의 다양성 확대가 이루어질 것이고, 일단 이러한 정치개혁이 보다 큰 정치사회 개혁과 진보를 위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의회 구성의 다양성 확대는 조건부로 가능한 것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개혁과 진보를 가져오는 것도 조건부로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패스트트랙 입법안은 더 큰 정치변화를 위한 디딤돌이 되기는커녕 ‘잠금효과’를 낳고 말 공산이 크다. 의원 증원은 불가한 것으로 치부되고, 제도적 대의성 확대 노력은 외면되며, 정당정치의 내용과 책임 심화는 정치개혁 의제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 고착될 우려가 높다는 말이다. 그리고 자한당이 격렬히 저항할수록 지금의 입법안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개혁과 민주주의로 자리매김 될 것이고 그 이상의 논의는 한가한 소리가 될 것이다.

여야의 물리적 공방에만 주목한 언론을 탓하기도 어렵다고 본다. 정치개혁안이 가져올 정치와 사회의 미래에 대한 가슴 뛰는 이야기를 담고 국민을 설득한 세력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지금 이러한 변화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담론도 부족했고 그만큼 대중적 동력도 부재하기 때문이다. 자한당을 해산해달라며 번지수가 잘못된 것을 잘 알면서도 청와대 신문고를 두드리는 국민청원은 정치개혁의 동력이기는커녕 정치퇴행의 반증에 불과하다. 비전과 기대, 동력이 모두 부족한 가운데 국회 심의 절차가 진행될 경우, 차선책의 통과마저 불투명한 것은 물론 새로운 제도가 가져올 것으로 상정되는 변화마저 퇴색할 우려가 크다.

심각한 의제와 최선의 정치를 이야기하기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작은 불꽃이 된 학생들의 ‘기후파업’과 영국 기후활동가들이 주도한 ‘멸종 저항’ 점거 시위는 흔한 말로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이 어떻게 기성 제도정치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기성 제도정치가 심화되는 사회 불평등 뿐 아니라 에너지 위기와 기후격변 같은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화답하지 못하는 정치기계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가동될 핵발전소가 30개에 이르고 누적된 핵폐기물이 포화 상태에 이를 때, 한반도의 식생이 변화하고 혹독한 여름과 겨울이 계속될 때, 이를 두고 멱살잡이를 한 국회의원들은 없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석탄화력 정책이 따로 놀 때 이를 두고 진지하게 사과한 대통령과 장관도 없었다. 소선거구제가 권역별 연동형비례대표제로 보완된다 하더라도 그런 상황이 크게 바뀌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아니, 선거제 변화는 그런 큰 의제와 상관없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볼지도 모른다. 또는 그런 큰 의제들은 제도정치와 무관하다고 단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여기에 정치의 부재가 있고, 심각한 의제들을 한가한 소리로 만드는 프레임이 있다. 지금의 선거제도, 지금의 의회, 지금의 대통령제 모두가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과 논쟁이 필요한 때다. 정치개혁 패스트트랙에 거는 기대보다 거기에서 빠진 기대와 요구들이 더 많다는 것을 환기해야 한다. 우리에게 절실한 의제들을 정치 테이블에 올리고 정치 테이블마저 바꿀 상상과 요구들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패스트트랙에 올라 출발하는 열차에 박수를 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만고만한 출발역으로 다시 돌아오는 셔틀열차의 무한반복 트랙 위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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