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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9-06-03 10:13
덴키브란···전기의 시절, 핵의 시절 / 김현우 선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7,870  
방사능이 1백년 전에 발견된 이래 핵에너지는 이웃 나라에 떨어진 폭탄으로 그리고 세 차례 이상의 멜트다운 사고로 그 무서운 위력을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우리의 언어에서 ‘핵’은 19세기 말 일본의 ‘전기’ 같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 같다.언어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핵발전소와 핵폐기물, 그리고 식품 방사능까지도 세상 속에는 존재하지만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만 관련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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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키브란···전기의 시절, 핵의 시절
[에정칼럼] ‘인류세(人類世)’를 초래한 인간의 시절

얼마 전 일본 술 중에 “덴키브란(電気ブラン)”이라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1880년에 개업한 일본 최초의 바인 도쿄의 카미야 바에서 판매하는 칵테일을 상품화 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름의 의미는 글자 그대로 ‘전기’ 더하기 ‘브랜디’다. 전기 양주라니 신기하지만, 이렇게 명명된 것은 당시 일본인들에겐 전차를 움직이고 전등을 밝히는 전기 자체가 신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신 문물을 상징하는 전기, 그래서 이곳 저곳에다 ‘전기’를 붙였던 모양이다. 또는 알콜 함량이 45도로 높아서, 마시면 감전된 것처럼 짜릿하다는 뜻도 있었다고 한다.

키미야 바의 덴키브란

이름을 갖다 쓴 것은 아닌 경우지만 신문물이 아주 잘못 이용된 경우도 있다. 퀴리 부인이 1898년에 세상으로 가져온 라듐이 그렇다. 스스로 빛을 내는 라듐의 성질은 사람들에게 신기하게 여겨졌고, 그래서 미량의 라듐을 넣은 음료수와 화장품, 치약 등이 상품화되어 팔렸다. 이런 상품들로 인한 피해가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지난해에 한국에 번역된 <라듐걸스>는 인간이 몰랐던 방사능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무섭도록 생생한 실화로 보여준다.

1920년대 미국 시계공장의 젊은 여공들은 라듐 분말을 물에 개어 야광시계 숫자판을 칠하는 일을 맡았다. 여공들은 무의식 중에 또는 선배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붓끝을 혀에 넣어 뾰쪽하게 만드는 ‘립포인팅’을 반복하며 작업했고, 머리털과 옷에 묻은 라듐가루가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을 황홀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여공들 중 다수는 구강과 관절에 종양이 생기는 등 이름 모를 질환에 시달리다 죽었고, 지난한 법정 투쟁 끝에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라듐이 가진 방사능의 위험성은 뒤늦게야 사람들에게 인식되었고 1931년에 와서야 관련 제품의 시판이 금지되었다.

이런 일들이 1백년 전에 벌어졌고, 핵에너지는 이웃 나라에 떨어진 폭탄으로 그리고 세 차례 이상의 멜트다운 사고로 그 무서운 위력을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우리의 언어에서 ‘핵’은 19세기 말 일본의 ‘전기’ 같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 같다. 얼얼하게 매운 닭고기 볶음은 ‘핵불닭’이고, 엄청나게 좋은 상태를 ‘핵 좋아’라고 이야기하며, 대용량 커피를 대표상품으로 내세운 ‘핵커피’라는 프랜차이즈도 있다. 한국 사람들이 핵에너지에 열광해서라기보다는 더 강력하고 자극적인 표현을 선호하는 세태 때문이라 해석하는 게 맞겠지만, 어쨌든 우리의 언어 습관에서 핵은 무서워서 가급적 멀리해야 하는 대상은 아닌 모양이다. 아니면, 언어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핵발전소와 핵폐기물, 그리고 식품 방사능까지도 세상 속에는 존재하지만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만 관련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된 과거 원자력문화재단 건물 옆에는 2015년 당시 재단 이사장 이름의 식목일 식수 기념비가 서 있다. 문구는 “춘매추국각유시(春梅秋菊各有時)”, 봄의 매화와 가을의 국화처럼 모든 것은 각각 그 때가 있는 것이라는 뜻이리라. 핵에너지의 시절은 어디에 와 있을까? 인류세를 초래한 인간의 시절은 또 어떠할까?

/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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