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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9-07-08 13:09
기후변화와 집단적 감각의 덩어리 / 김현우 선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7,577  
기후변화 대응에서도 차분한 논리 뿐 아니라 자루 속의 송곳처럼 삐져나오는 돌파가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기후침묵’을 깨는 방법이다. 다른 체제를 요구하는 논리와 이론 뿐 아니라 그것을 담지하는 감각과 행동이 이를 자극하고 연결해야 한다. 한국의 청소년들도 함께 할 ‘9.27 기후파업’이 비상하게 기대되는 이유다. 물론 송곳의 역할을 그들에게만 맡겨둘 이유도 없고 정당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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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집단적 감각의 덩어리
[에정칼럼] 기후변화 대응 회의론, 송곳의 자극 필요

한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한 기후활동가가 얼마 전에 “한국 사회는 왜 기후변화 문제에 둔감할까” 제목의 진지한 메모를 카톡방을 올렸다.

그 활동가가 나름 제시한 이유는 첫째, 사계절이 너무 뚜렷해서 기후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것. 둘째,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정보와 교육이 부족하다는 것. 셋째, 5년 단임제 정치체제에서 기후변화가 정책적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는 것. 넷째, 성장과 확장 중독 때문에 자동차와 에너지 소비 증가가 문제가 안 되는 사회라는 것. 다섯째, 언론의 역할이 부재하다는 것. 여섯째, 기후위기에 사회구성원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실행방안을 나눠본 적이 없다는 것. 일곱째, 기후위기 대응책과 방안이 40-50대 남성 어른들이 주로 작성하고 있어서 기후위기에 대한 민감도가 낮다는 것이다.

그 내용에 많이 공감하면서도 과연 그러할까 좀 더 곱씹어 보았다. 먼저 사계절이 뚜렷한 것은 기후변화를 오히려 더욱 느끼기 좋은 조건이 아닐까? 크지도 않은 나라에서 극한 더위와 추위가 번갈아 오는 것이야말로 ‘기후격변’이고, 봄과 가을이 사라지는 것이야말로 가장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증거가 아닐까? 게다가 이제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국내산 한라봉과 애플망고가 기후변화 말고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물론 같은 현상을 두고 해석, 느낌, 그리고 기억은 여럿일 수 있다.

다음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정보와 교육의 부족이 문제이긴 하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가십성 기사로든 교양 서적으로든, 기후변화를 다루는 자료들은 결코 적지 않다. 한국의 사회와 생활에 밀착하는 구체성과 대응의 절실함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학생과 공무원을 일깨워서 사회를 움직인다는 접근 순서가 맞는 것일까? 일제하 독립운동에서도 교육운동이 중요하긴 했지만 국내외에서 온갖 수단으로 격렬하게 싸운 투사들이 있었고, 그 소식 자체가 가장 큰 교육이었다.

청와대와 정당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 정치 체제의 한계는 크게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임기 중에 성과를 낼 수 없는 ‘너무 큰’ 문제에 해당하는 기후변화 대응은 당장 먹고 사는 이른바 민생 문제의 뒤로 밀리고, 유권자들에게 자극성이 있는 미세문제가 환경 문제를 대체하며, 전 정부들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사실은 민생과 환경, 산업과 정치 모두를 건드리고 문제를 방식 자체에 문제제기하게 만드는 것이 기후변화 이슈인 탓에, 기후변화 대응이 정치 체제 자체의 변화 요구를 만들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이것부터가 머리와 꼬리를 알기 어려운 과제다.

성장과 확장 중독, 언론의 역할, 주체의 문제는 나에게는 하나의 묶음으로 여겨진다. 성장과 확장 중독이 기후변화 문제를 파편적으로, 인지편향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그것이 언론에도 반영되며 주체의 행동을 제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기예보에 출연하는 기상청 예보관은 여름철 폭염과 겨울철 맹추위가 기후변화 탓이라고 분명하게 그것도 여러 차례 이야기하며,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해하고 수긍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산불과 필리핀의 태풍, 그리고 한국의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은 하나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경제 성장이라는 대전제를 교란시킬 문제 인식과 해법은 청와대, 주요 정당, 주요 언론의 프레임 속에 빠져있다. 오히려 일부 기업들 또는 기업의 일부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활용하는 발걸음에 빨리 나서고 있지만, 그들에게 역시 옛 프레임 속에서 활용할 것을 다 활용하면서 여러 주머니를 관리하는 편이 지혜롭다. 그리고 기후변화는 너무 넓고 많은 층위를 가진 문제인 탓에 인력과 초점을 무한히 가질 수 없는 전통적 환경운동 단체들이 소화하기에도 힘든 모습니다.

이 모든 것이 ‘기후 침묵’(http://www.redian.org/archive/134394)의 현상을 빚어내고 그 침묵이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한국에는 공공연한 기후변화 회의론자가 드문 대신에 기후변화 대응 회의론이 팽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기후 침묵의 비관론은 불가피한 것일까? 따지고 보면, 청와대의 인사부터 서울역 티브이 앞의 시민들까지, 모두들 기후변화에 대해 나름대로 알고 있는 것 아닐까? 축구의 ‘오프사이드’ 규칙이나 야구의 ‘인필드플라이’ 규칙만큼은 아는 것 아닐까? 그래서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묻는 여론 조사에서 기후변화가 세 번째 쯤을 차지한다는 것 아닌가? 석탄발전을 줄이고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에너지 소비를 효율화하고 산업 생산도 줄여가야 한다는 해법도, 적어도 머리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러한 파편화된 정보와 인식을 수미일관한 이해와 적절한 방향의 행동으로 이끄는 리더십이 있다면 해결되는 것 아닐까?

각자가 가진 ‘상식’을 통합적인 ‘양식’으로, 그리고 정치적 ‘행동’으로 잇는 일이 그렇게 쉽다면 기후변화 문제가 이렇게 막막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상황의 진전은 그렇게 논리로만, 단선적으로 그리고 평화롭게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기후변화 대응에서도 차분한 논리 뿐 아니라 자루 속의 송곳처럼 삐져나오는 돌파가 필요하다. 여기서 18세기 말 미국의 혁명가 토머스 페인이 이야기 한 ‘감각의 덩어리’가 떠오른다. 그는 혁명들이 천재성과 재능을 창출하지만, 그런 사건들은 이런 것들을 앞으로 끌어내는 계기일 뿐이라고 보았다. 인간 속에서 잠자고 있는 감각의 덩어리가 있는데 이는 그대로 두면 무덤으로 침잠해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활동하게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집단적인 감각의 덩어리를 일깨우는 송곳의 자극, 그것이야말로 ‘기후침묵’을 깨는 방법이다. 다른 체제를 요구하는 논리와 이론 뿐 아니라 그것을 담지하는 감각과 행동이 이를 자극하고 연결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나름 가지고 있던 기후 상식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과 양식으로 만들고, 자신의 일로 느끼게 만드는 돌파구. 국회의 입법과 예산 심의에 이 의제가 중요하게 반영되고, 대통령의 연설에 그 심각성이 담기도록 하며, 에너지전환과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따로 노는 문제에 대해 뉴스룸에서 한발 더 들어가도록 만드는 시발점. 영국의 ‘멸종저항’과 독일의 ‘엔데 갤랜데’가 보여 준 것,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하고 있는 역할이 다름 아닌 이런 송곳이다. 한국의 청소년들도 함께 할 ‘9.27 기후파업’이 비상하게 기대되는 이유다. 물론 송곳의 역할을 그들에게만 맡겨둘 이유도 없고 정당성도 없다.

/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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