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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9-07-15 07:46
기후위기 시대와 관료제의 모순 / 이태영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88  
현실이 되어버린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대안적인 삶의 형태와 그 삶의 형태를 둘러싼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의 관료제로는 이것을 할 수 없으며, 관료제가 허락한 행사는 ‘공론장’으로 역할할 수 없다.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관료제’ 그 자체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이전 계약의 작동방식과 최대한 빨리 작별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 관료가 되어버린 동료와 관료가 꿈인 동료가 더 늘어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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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와 관료제의 모순
[에정칼럼] 관료제와의 빠른 작별을 준비하자

이상한 공론장의 시대

이번엔 ‘공론장’이다. ‘네트워크’가 유행하는가 싶더니, ‘거버넌스’가 등장하고, ‘시민력’이라는 단어도 왕왕 쓰이더니, ‘혁신’이라는 개념이 가장 뜨거운 개념이 되었다가, ‘협치’가 전면에 걸렸다. 그런 흐름이 이어져 지금 시점을 기준으로 필자가 뽑은 공공(시민사회와 행정을 포괄한) 영역의 원픽(One pick) 키워드는 단연 ‘공론장’이다.

이제 막 여름으로 접어든 2019년, 올해만 벌써 몇 차례의 공론장에 참여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공론장이 하버마스가 말한 ‘사회구성원 간의 합리적 토론을 통해서 사회구성원들의 보편적 이익에 관한 사회적 합의(social consensus)를 도출하는 담론적 공간’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참여한 공론장들은 사실 ‘행사’에 가까웠다. 공론장의 진행은 ‘행사’로서 기획되고, 내용은 담당 행정부서의 권한과 과업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일상의 문제라는 것이 행정부서 별로 정확히 구획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민관협력이라는 개념의 수준은 딱 그 정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참여에서 권한으로’라는 슬로건을 건 서울시 협치 사업이지만, 아쉽게도 그 권한의 최대치는 칸막이로 분리된 행정 부서장의 그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공론장’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공론장처럼 ‘행사’나 ‘사업명’이 되어버린 사회적 개념들이 계속 등장하게 되는 배경에는 ‘관료제’라는 견고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대통령의 좋은 말들도, 단체장의 멋있는 선언도 관료제 안으로 들어오면 이상하게 꼬여 작동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우리는 이러한 장면들의 목격을 통해서 어떤 훌륭한 사회적 기획도 그것이 관료제를 경유하여 작동하는 구체적인 장면을 상상하지 않고선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서울시 한 자치단체의 공론장 행사 모습

관료제의 속도, 그리고 경직성

2년 전, 서울의 정책박람회 행사 자리에서 원외정당 정책토론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당시 녹색당 서울시당의 정책위원장으로서 서울의 도시정책이 기후변화 대응을 우선순위로 하여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 공무원은 기후변화 대응 문제는 반대하는 시민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계속 확장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단 환영할 일이지만, 사실 저 대답은 단적으로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라는 것을 행정 관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자동차를 줄이자는 정책, 플라스틱 사용을 규제하는 정책, 새 건물을 그만 짓자는 정책이 반대 의견이 존재하지 않는 정책일까? 흔히 환경문제는 이해관계자가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생태적 위기는 매일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자가용을 이용하며, 저가 항공기를 통해 여행하는 우리 모두가 이해관계자인 문제다. 아쉽게도 관료제는 이러한 인식을 전혀 할 수 없는 시스템인 셈이다.

관료제는 속도와 영역의 경직성 차원에서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주민참여’라는 명분이 관료제의 속도와 만나는 사례로 도시재생사업이 있다. 도시재생사업은 기존 도시재개발과 달리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전면재개발이 아닌 방식으로 지역의 주거와 문화, 경제를 재생시킨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런데 1년 안에 협의체를 만들고, 4년 안에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관료제의 속도와 도시재생사업이 만나면 결국 빠르게 모일 수 있는 조직된 주민들이 여전히 지역사회의 주요한 결정의 당사자로 등장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과연 누가 가장 빠르게 관료제를 통해 작동하는 사업의 성과목표와 조응하며 조직될까? 이런 과정을 통해 재개발사업의 ‘주민’과 도시재생사업의 ‘주민’이 사실상 다르지 않게 되고, 결국 같은 욕망이 도시공간의 변화에 개입하게 된다.

게다가 그 영역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가? 나는 도시재생사업의 성과로 새롭게 지어진 거점시설들의 에너지효율화 정도를 전수조사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에너지 효율화 사업이나 재생에너지 사업이 부동산 불평등에 기여하는 바는 없는지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관료제의 경직성은 이런 문제의식에 전혀 공감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

그런데 더 문제는 이른바 민관협력의 확대, 협치사업의 본격적인 추진이 야기한 관료제의 속성-그 고유한 속도와 영역적 경직성-을 사회 전체로 전이시키는 모양새다. 마을지원활동가란 명칭의 시민들은 보조금 사업을 집행하는 다른 시민들에게 원천징수 하는 방법을 설명하며 행정의 결산 시스템을 교육하고, 협치 영역의 각 분과위원이 된 시민들은 파트너가 된 행정부서의 과업을 충실히 이해하며 그 권한과 영역 안에서 가능한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한다.

바야흐로 협치 시대의 시민들은 때로는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할 갈등의 자리에 권한도 없이 중재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관료가 되기를 자처하는 시민들이 등장하였다. 넘쳐나는 공무원 지망생을 넘어 활동가들도 행정인력으로 포섭되는 시대에 전사회적으로 전이된 관료제 사회는 기후위기와 같은 치명적인 위협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관료제 하에서 우리는 각자 서로에게 주어진 분리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이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한다. 억울한 사람은 많지만 책임질 사회는 없다.

정치권력과 관료제, 그리고 생활세계

사실 관료제에 대한 비판은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칸막이 행정, 보신주의, 각종 비리문제와 순환보직의 비전문성 등 관료제 비판은 결코 새로운 내용들이 아니다.

관료제의 보수화 문제는 행정관료조직의 인사권을 지닌 수장이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인이라는 조건을 통해 보완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치인이 선출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사회적 정당성이 관료제가 작동하는 기반인 절차적 정당성과 경합하며 사회변동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문제는 때로는 관료제와 경합하며 정치적 역동성을 만들어내야 할 정치권력이 관료제를 이용하며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실상 관료제의 영향 안으로 포섭되어버린 현상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공론장을 그렇게 좋아하는 서울시는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의 해결을 촉구하는 6,000명 이상의 서명이 모인 문제제기에 법적, 절차적 근거를 제시하며 제기되는 문제의 책임주체가 서울시가 아니라고 회피한다. 숱한 재개발 현장에서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선택하는 입장도 비슷하다. 개발과 자본의 편이 되어버린 사법절차와 그 정당성 뒤에 숨어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기를 망설인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우리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은 청년수당 문제나 그린벨트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사용해 중앙정부 및 그 절차적 정당성과 경합했다. 정치인으로서의 선택이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권력과 관료제는 상보적인 관계로 변해버렸다.

정치권력의 문제는 시민 일상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미 고도로 시장화 된 시민의 일상에서 공공이 작동하는 장소를 찾아보기란 힘들어졌다. 자신의 일상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정치에 시민들은 관심을 잃었고, 오히려 정치는 시장의 편에서, 자본의 편에서 사적소유 기반의 사법제도를 강화시키는 역할에 충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장과 자본, 사적소유 기반의 경제는 곧 무분별한 개발, 탄소기반사회의 확장에 기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장화 된 시민의 일상을 공공성이 강화 된 생활세계로 전환시킬 정치권력의 등장은 아직 요원한 셈이다.

분명한 것은 각자도생을 잠언처럼 사용하는 시장화 된 사회는 결코 기후위기와 같은 치명적인 위협에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관료제에 대한 비판이 공적 조직의 민영화나 시민사회의 비즈니스 모델 개발로 흐르는 것은 절대 대안이 될 수 없다. 기후위기라는 변수가 이 명제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주었다.

기후위기 시대, 관료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현실이 되어버린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대안적인 삶의 형태와 그 삶의 형태를 둘러싼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탄소기반 사회, 플라스틱 경제로부터 벗어난 다음 세상을 적극적으로 구상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다. 당장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의 지구와 사회를 상상하기 어렵고, 이미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절망적 인식도 확인되고 있다.

기후위기는 우리 일상 전반에 연결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생산과 소비, 노동과 주거, 교통, 기술문화 전반이 기후위기를 야기한 원인이었고, 기후위기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그 전반적인 영역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지금의 관료제로는 이것을 할 수 없다.

다시 공론장으로 돌아와 하버마스가 정의한 담론의 장으로서 작동하는 공간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그 담론의 장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는 ‘보편적 이익’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보편적 이익’이란 무엇인가? 확실한 것은 우리를 위협하는 여러 치명적인 위기들은 아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 복잡하고 치명적인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우리의 보편적 이익이라고 할 때, 관료제가 허락한 행사는 ‘공론장’으로 역할할 수 없다고 하는 점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으로서 그린뉴딜이 화제다. 뉴딜(New Deal)은 말 그대로 새로운 사회계약이다. 새로운 계약의 당사자, 새로운 계약의 목표와 내용에 대해 합의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공론장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 때 빼먹지 말아야 할 질문은 ‘관료제’에 대한 질문이다. ‘관료제’는 새로운 계약의 작동방식으로 적당한가? 그리고 관료제는 새로운 계약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인가?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관료제’ 그 자체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이전 계약의 작동방식과 최대한 빨리 작별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 관료가 되어버린 동료와 관료가 꿈인 동료가 더 늘어나기 전에 말이다. 그래야 새로운 계약이 탄생한다.

/ 이태영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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