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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9-07-29 10:25
기후비상사태 선언과 기후파업 투쟁 / 이정필 부소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7,839  
기후비상사태 선언과 권력 행사의 정당성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점이 분명하다면, 최대한 개방적이면서 기후정의 원칙에 공감을 표하는 개인과 단체가 참여하는 시민총회 방식의 기후파업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하게 이루질 수 있도록 시민사회의 역량이 결집되어야 한다. 일종의 ‘기후정의 인민전선’은 모두를 위한 기후파업의 성과가 확산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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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비상사태 선언과 기후파업 투쟁
[에정칼럼] 9월 기후행동주간과 '기후정의 인민전선'

2019년 최근,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역시 시작은 아래로부터다. 전 세계 곳곳에서 청소년, 학부모, 주민조직, 사회단체, 정치조직, 노동조합, 농민단체, 의료인, 학계, 종교계, 예술계 등이 ‘기후정의를 위한 기후파업’을 주장하는 직접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올해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프랑스가 공식적으로 기후비상사태 혹은 기후위기를 선언했다. 중앙정부보다 더 적극적인 곳은 지방정부다.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프랑스,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포르투갈, 벨기에, 체코, 호주, 뉴질랜드, 미국, 필리핀, 이렇게 16개국에서 800여개의 지방정부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기후대응의 상징적 조치에 그치지 않고, 2030년과 2050년 대응계획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리고 LA는 행정조직을 개편해 전담부서(Climate Emergency Mobilization Department)를 신설하기도 했다.

물론 과거에도 기후변화의 비상국면을 경고하는 담론과 선언이 있었고, 각종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전환 계획·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90년대 유엔기후변화기본협약과 교토체제, 2000년대 포스트 교토체제, 2010년대 신기후체제를 구상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즉 30년 가까이 지금과 같은 기후비상사태로의 진입을 막지 못했다. 정상상태에서 벗어난 이유는 다름 아닌 기후정치 실패 때문이다.

이미 잃어버린 시간이 많지만 더 늦기 전에 2015년 파리협정으로 준비되고 있는 2021년 이후의 신기후체제는 2030년을 비상사태를 완화하여 적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 비상사태가 상황이 긴급하고 안보와 질서에 미칠 영향이 현저할 경우 발동하는 것이라면, 기후비상사태는 국제, 국가, 지방, 마을, 그리고 집단과 개인, 이 모든 층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만큼 기후변화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것이 되고 있다.

인과관계망이 사회적이면서 자연적인, 이중 속성을 갖는 기후변화는 비상사태에 잘 어울리는 이슈다. ‘인류세’ 개념 역시 인간과 지구의 상호관계에 새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플라스틱, 닭뼈, 아스팔트, 방사능, 탄소 등의 퇴적 지층의 원인 규명을 인류라는 거대한 하나의 자아로 환원해서는 기후변화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유엔이 정한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 원칙을 반영해야 하며, 더 나아가 자본주의 근대화를 인류세와 결합하려는 ‘자본세’라는 정치경제 지질학의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올 3월 호주에서 학생들의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하는 시위(방송화면)

라즈 파텔(Raj Patel)과 제이슨 무어(Jason Moore)는 근대사회가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이렇게 일곱 개의 값싼 재료들로 형성되어 유지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회적으로, 생태적으로 유용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거나 낮게 평가하면서 이익을 취하는 지배체제는 사회-자연관계를 값싸게 관리하는 전략들을 통해 자본주의 위기를 해결해왔다(<A History of the World in Seven Cheap Things: A Guide to Capitalism, Nature, and the Future of the Planet>, 2018. 참고).

지배적 해결책을 둘러싼 역사적 투쟁들은 성공할 때도 있었고 실패할 때도 있었으며, 혁명으로 도약하기도 했고 개혁으로 남기도 했다. 기후정의 담론과 운동 또한 기후변화가 아닌 체제변화를 외치면서, 한편에서는 기후변화의 부정과 회의와 침묵에 맞섰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전과 지연과 축적의 잘못된 해결책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이안 앵거스 엮음, <기후정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옮김, 2012. 참조). 기후파업은 기후변화과학과 함께 성장한 기후정의운동이 닦아온 토대 위에서 대중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2011년 국내에서 출벌함 ‘기후정의연대’는 취약한 주체 역량과 당시 국내외적 조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웠고, 존재감을 알리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최근 국제 기후비상사태와 기후파업과 호흡을 맞추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7월 4일, 녹색당은 기후위기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7월 23일 열린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한국 시민·종교·사회단체·정당 집담회’에 총 45개 단체 및 개인들이 모였다. 2007~2010년 유엔기후변화총회 대응 논의 테이블에 비해 훨씬 다양한 영역에서 더 많은 조직들이 함께 했다. 당면해서는 9월 20~27일 국제기후파업에 동참할 공동행동을 기획하지만, 그 뒤로 기후대응 행동과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대중운동의 구심점으로 진화할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맥락에서 비상사태 선언이나 계엄령과 긴급조치를 운운하면 독재정치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이 익숙한 나라가 됐다. 현행 재난안전관리기본법은 태풍, 홍수, 해일, 대설, 한파, 가뭄, 폭염, 지진, 황사 등의 재해를 자연재난으로 규정할 수 있다. 사회재난에는 화재, 붕괴, 폭발, 교통사고, 환경오염사고, 가축전염병, 국가기반체계 마비 등이 포함된다. 최근에는 미세먼지가 사회재난으로 규정됐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과 고용정책기본법은 각각 산업위기지역이나 고용위기지역을 지정하고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 에너지, 지속가능발전을 총괄하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은 기후비상에 대한 고려가 없으며, 법의 취지와 체계로는 도저치 그러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못 된다. 기후비상사태의 정당성은 법률이 전부가 아니다.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총론과 각론의 제도화도 필요하다. 당연하듯이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고, 사회적 동의가 이를 가능하게 만든다. 때로는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우선할 수 있고 시장 혁신이 이를 추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기후정책에 무능하거나 무관심하고 일각에서는 저항하며, 시민과 시민사회는 기후대응 실천에 소극적이거나 소비자로 개인화하는 상황에서는 다른 돌파구가 필요하다. ‘탄소 민주주의’라는 네트워크의 취약성의 지점을 찾아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열 전환동맹을 형성하고 서로 연결시켜야 한다(티머시 미첼, <탄소 민주주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옮김, 2017. 참고).

동학운동,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촛불혁명의 정신이 기후정의운동으로 계승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9월 기후파업은 완성태가 아니라 통과 지점 중 하나에 위치한다. 어려운 현실 여건은 낙관의 근거를 갉아먹지만, 각계각층의 기후비상사태 선언과 국가 전체의 기후정책 실행은 1.5도라는 숫자에 담아내지 못하는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적색과 녹색과 보라색에 파란색이 더해지면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을 연대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기후정의를 위한 기후파업은 명백하게 정치파업이자 경제파업, 그리고 사회파업이 되어야 한다. 파업과 사보타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탄소 분자를 줄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 그리고 마음 편히 숨 쉬는 ‘재생 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세상을 바라는 ‘현실주의 급진파’라 할 수 있다. 기후파업 만큼 명분과 실리가 충분한 대중파업이 어디 있겠는가. 자칫 기후 베헤모스나 기후 리바이어던으로 치우쳐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협하게 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에정칼럼 <국가론과 기후변화>, 2018. 8. 24 참조). 관련 글 링크

대중적 기후행동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전략적 기획이 중요하다. 우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공식적으로 기후비상사태를 선언하자. 의지만 있으면 적절한 형식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9월 23일, 뉴욕 기후정상회의에서 대통령의 발표로 이어지면 더 좋다. 다음으로 정부는 석탄 단계적 폐쇄와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실효성 있는 기후변화 완화・적응계획, 그리고 포괄적이고 진취적인 2050 장기전략도 수립해야 한다. 기업은 그린 워싱으로 위기를 외면하지 말고 기후 친화적 경영을 전면 도입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환 저항 행위는 반동이 되어 공적 지원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기후비상사태 선언과 권력 행사의 정당성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점이 분명하다면, 최대한 개방적이면서 기후정의 원칙에 공감을 표하는 개인과 단체가 참여하는 시민총회 방식의 기후파업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하게 이루질 수 있도록 시민사회의 역량이 결집되어야 한다. 일종의 ‘기후정의 인민전선’은 모두를 위한 기후파업의 성과가 확산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불끄기 운동’ 이상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과거와 다른 멈춤과 새로운 움직임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면서, 어쩌면 기후정의와 에너지전환을 둘러싸고 수정주의 논쟁이 벌어지겠지만, 당장은 9월 기후파업 범국민행동을 위한 기후행동 주간에 집중하자.

/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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