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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9-08-12 17:22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 그리고 인권 / 권승문 부소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7,295  
기후변화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광범위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영향이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한국은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들에 '기후부채'를 갚아야 하는 국가로 분류된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던 과제들이 눈앞에 있다. 다음 세대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논의를 시작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래서 기후위기는 절체절명의 인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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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해, 지금 당장 전환을 이야기해야 한다
[초록發光]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 그리고 인권

기후변화는 21세기 인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최악의 폭염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올해에도 지난해보다는 덜하지만 장마 이후 계속된 폭염으로 사망자가 발생하고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올해 7월은 전 세계 기온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의 빈도가 증가하고 폭염의 기간도 늘어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지구 온도 상승에 따라 온열질환 관련 사망자수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세계 곳곳에서 폭염, 폭우, 폭설, 태풍, 가뭄, 홍수, 한파 등과 같은 이상기후가 일상화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주요 원인인 이러한 현상은 인류 모두의 생존을 위협한다. 기후변화는 해수면을 상승시켜 연안 시스템과 저지대 지역에 대한 위험을 키우고, 많은 생물종을 멸종위기로 내몰고, 많은 지역에서 관련 질병을 유발하고, 미래 식량 안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기후안보, 기후정의, 기후인권, 기후외교, 기후난민 등 다양한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기후변화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광범위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영향이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기후변화의 부정적인 영향은 회복능력과 자원이 제한적인 빈곤국가나 빈곤층을 비롯하여 특정한 계층에 더 크게 나타난다. 작은 섬나라, 건조한 산악지대국가, 저지대 연안 국가 등이 기후변화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 기상 이변, 해수면 상승, 농업 생산성 하락 등으로 위험에 처한 국가들은 대부분 아시아와 남미에 위치한 개발도상국과 최빈국이다.

이러한 국가들은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매우 적게 배출한다. 기후변화 유발에 책임이 거의 없는 국가들이 기후변화에 더욱 취약하다.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 투발루나 전통적인 농어업 국가인 방글라데시는 기후변화 책임이 매우 미약함에도 기후변화로 인한 악영향에 취약한 대표적인 국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러한 현상이 이른바 ‘기후부정의’의 전형이다. 

개발지원연구협회(Development Assistance Research Associates)의 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 중 선진국의 사망자는 15%에 해당하는 반면, 개발도상국은 83%를 차지했다. 또한 화석연료 중심의 경제활동이 계속될 경우 2030년까지 연간 약 600만 명이 추가로 생명을 잃을 수 있으며, 그 피해는 특히 빈곤국가에서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됐다. 세계 인구의 20% 이하인 선진국들이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70%를 배출하지만, 기후변화의 피해는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3%만을 배출하는 저위도 개발도상국의 약 10억 명이 겪고 있다. 

기후부정의는 기후난민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영토를 잃게 될 것으로 확실시되는 투발루 국민이 주변 선진국인 호주와 뉴질랜드에 난민 요청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주로 북아프리카와 아랍지역에서 발생한 기후변화로 인한 최악의 가뭄과 이에 따른 식량 생산의 급격한 감소, 식량가격의 폭등, 주민들의 생활고, 국가 내 갈등과 주변 국가 간 갈등이 수백만 명의 기후난민을 양산하고 있다. 시리아로 대표되는 이와 유사한 문제들이 언제든지 다른 취약한 국가들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또한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더욱 큰 고통을 초래한다. 특히 빈곤층, 여성, 아동, 장애인, 노인, 원주민, 소수민족, 이주민, 난민 등이 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한 국가 내에서도 종사하는 산업이나 거주하는 지역, 사회경제적 능력과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기후변화의 영향은 다르게 나타난다. 1차 산업 종사자일수록 기후변화에 취약하고, 거주 지역에 따라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이 다르다. 도서지역이나 저지대, 해안가에 살고 있는 주민의 취약성이 클 수밖에 없다. 폭우나 폭염, 한파와 폭설 등으로 인한 피해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하며, 이들은 그런 상황에 대처하거나 그런 지역을 벗어날 능력이 거의 없다.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 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심각한 빈곤, 미흡한 대중교통 시스템, 낮은 교육 수준 등 그 지역의 사회경제적 요인들로 인해 그 피해를 가중시켰다. 1995년 시카고에 발생한 폭염 재난은 현재 더 극심한 형태로 진행 중이다. 폭염 등 유럽지역에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상 기후 현상도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에 더 큰 피해를 주고 있고, 그로 인해 멸종 저항 운동이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역사적인 폭염으로 재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하지만 그 논의는 ‘에어컨 복지’에서 멈췄고, 근본적인 기후변화대응 대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비상행동하기 위한 연대가 시작됐다. 오는 9월 미국 뉴욕에서 예정된 유엔 기후변화 세계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내에서도 9월 21일 기후위기 해결 촉구를 위한 대규모 행동을 결의했다.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원칙으로 정부와 산업, 언론, 국민을 향한 요구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기후정의는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이 초래하는 비윤리와 부정의를 인식하고 그것을 줄이기 위한 사회 운동이다.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인종이나 성별, 소득, 문화, 특정 사회의 구성원 등과 무관하게 기후위험으로부터 평등하게 보호받고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누릴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실질적 정의). 기후변화를 야기한 책임과 그로 인한 피해 간의 불일치를 교정해야 하며(분배적 정의), 기후변화로 가장 영향을 받는 사람에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절차적 정의). 정의로운 전환은 지속가능하지 않거나 해로운 산업과 노동이 환경적으로 수용 가능하고 노동자와 지역사회도 지킬 수 있는 산업과 노동으로 전환돼야 하며, 이 때 발생할 수 있는 피해와 희생을 예방하고 공적 장치와 프로그램을 통해 부담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요약될 수 있다.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원칙으로 기후변화를 완화(mitigation)하기 위해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고, 기후변화의 영향과 취약성을 파악하고 이에 적응(adaptation)하는 방안을 획기적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완화와 적응은 전 지구적 수준에서 각 국가마다 다른 역사적 책임과 능력을 고려해야 하고, 적응은 기후 재난 대비 시스템 등 사회기반확충을 넘어 빈곤과 사회불평등을 극적으로 줄이는 사회정책을 포함한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한국은 지구 온도 상승 제한 수준 2도 혹은 1.5도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할까. 현재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는 지구 온도 상승분을 3도를 넘어 5도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암울한 시나리오들이 제시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인류가 적응할 수 없는,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전망들이다. 

한국은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들에 '기후부채'를 갚아야 하는 국가로 분류된다. 어느 정도까지 부담해야 할까. 그리고 한국은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산업구조로 짜여 있다. 산업계에 어느 정도의 책임을 어떻게 요구할 것이며,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산업시스템으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전례 없는 거대한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국가와 계층, 계급 등이 정책 결정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정치적인 장치들을 작동해야 할까. 

우리 사회에서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던 과제들이 눈앞에 있다. 다음 세대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논의를 시작하고 행동해야 한다. 적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다. 기후위기는 절체절명의 인권(생명권, 건강권, 생계권 등) 문제다.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는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 그 가해자도 인류다. 특히 선진국이다. ⓒpixabay.com 

/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운영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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