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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9-08-26 12:53
미국 그린뉴딜과 노동조합의 입장 / 김현우 선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7,641  
그린뉴딜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이야말로 노동조합의 권리와 노동자의 일자리를 누구보다 염려하는 사람들이며, 그린뉴딜 결의안도 "모든 지역 사회와 노동자를 위한 공정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결의안 작성에 이르기까지 기후행동가들과 정책가들이 노동자들을 합류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음에도, 미국의 노동조합들이 '환경 vs 일자리'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기후행동의 반대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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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초록 전환 논란' 사례에서 배워야 할 점
[초록發光] 미국 그린뉴딜과 노동조합의 입장

정의당이 그린뉴딜 경제위원회를 발족하여 '진보의 성장전략'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는 소식이다. 아직 자세한 내용을 알기는 어렵지만, 이름에서 연상되듯 미국 민주당 진보 그룹이 발의한 '그린뉴딜' 결의안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정의당의 정책이 새로운 '성장' 동력에 방점이 있을지, 아니면 녹색 '전환'에 방점이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어쨌든 에너지 정책과 소득주도 경제 정책을 구조적 연관 없이 진행한 현 정부에 변화의 자극을 주고 풍부한 의제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데 그린뉴딜의 원조라 할 미국 민주당과 진보세력 내에서도 그 가치와 내용이 순탄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 3월, 자유기업원의 웹사이트에는 "미국의 노동자들이 그린 뉴딜 정책에 맞서다"라는 제목으로, 미국 경제교육재단이 게재한 존 밀티모어의 칼럼이 요약 번역되어 실렸다. (☞ 바로보기) 미국의 가장 큰 노동조합 조직인 AFL-CIO가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과 에드워드 마키 상원의원에게 서한을 보내서 그린뉴딜 정책이 실현 불가능하고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한다고 비판했다는 내용이다. 자유기업원이 이 칼럼을 기쁘게 소개한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지지 세력으로 꼽혀온 노동조합조차 그린뉴딜에 동의하지 않으며, 재생가능에너지 확충과 에너지 효율화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미국의 보수파들은 그린뉴딜이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명분으로 미국인의 번영과 편리, 그리고 안전을 위협할 사회주의 또는 독재라고 비난해왔고, 한국의 보수파도 한국 정부의 그다지 급진적이지도 않은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해 비슷한 반응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이 서한만 보고 그런 해석과 주장을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일단 55개의 산별노조를 포함하는 AFL-CIO 전체의 명의가 아니라 미국광산노조(UMWA)와 전기노동자형제회(IBEW)의 위원장이 대표 서명하고 다른 8개의 에너지 및 기술 관련 산별노조가 같이 이름을 올린 형식이다. 그리고 에너지 전환과 녹색일자리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는, 결의안 작성 과정에서 노동조합과의 대화가 부족했던 점, 기술적 고려가 미흡한 점, 앞으로 일자리 우려에 대해 토론이 요구된다는 점을 전달하는 내용이다. 미국의 대다수 노동조합들이 조합원의 일자리를 우선하는 실리주의적 태도를 취해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렇게 의외라고 할 서한은 아니다. 그리고 AFL-CIO의 도널드 트럼카 의장은 캐나다의 타르샌드 석유를 멕시코만까지 운송하기 위해 추진되어 큰 논란을 낳았던, 그리고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민주당 다수와 환경운동이 반대했던 키스톤-XL 파이프라인 계획에 대해서도 미국의 건설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며 찬성했었다.  

그럼에도 이 서한은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존 바라소 상원의원이 "우리 수백만 조합원과 가족들에 직접적 해를 입힐 제안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서한의 구절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면서 AFL-CIO에 동의한다고 밝혔고, 이를 여러 언론에서 받아쓰며 일정하게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진보 매체인 <자코뱅>의 한 기사는 바라소 의원 스스로가 예전부터 대표적인 반-노동 의원에 기후변화 부정론자로 꼽혀왔을 뿐 아니라 서한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 기사는 미국 거대노조들이 화석연료 기업주들에 편승한 것이 사실임을 지적하는 한편, 탄광 등 미국 화석연료 산업에서 안전 보다 이윤을 앞세우면서 더 많은 노동자와 지역 사회가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했다. 기사는 바라소 상원의원에게 지난 5년간 2만3500달러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광업회사 머레이 에너지는 작업장 안전, 환경, 노사 관계 등에서 많은 규제를 위반하여 2000년 이후 약 3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았을 뿐 아니라, 현장에서 다수의 노동자들이 사망했다는 사실도 고발했다.  

그린뉴딜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이야말로 노동조합의 권리와 노동자의 일자리를 누구보다 염려하는 사람들이며, 그린뉴딜 결의안도 "모든 지역 사회와 노동자를 위한 공정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결의안 작성에 이르기까지 기후행동가들과 정책가들이 노동자들을 합류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음에도, 미국의 노동조합들이 '환경 vs 일자리'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기후행동의 반대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드러났다. UMWA의 지도부는 '정의로운 전환'을 조합원들이 토론할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을 제공하지 않았다. 어쨌든 화석에너지를 다루는 노동자들이 에너지 전환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린뉴딜의 시행은 그만큼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린뉴딜 결의안이 공화당이 다수인 의회를 통과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런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예선 레이스가 시작된 미국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포함하여 그린뉴딜 또는 이와 유사한 정책 공약을 준비하고 있는 민주당의 주요 후보들에게도 노동자의 일자리와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 캘리포니아 산호세의 IBEW 332지부 노동조합 건물 위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시스템. ⓒNECA-IBEW Powering America 

또 다른 인터넷 매체 <복스>는 보다 깊은 분석 기사를 실었는데, 미국 노동조합 안에서도 목소리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문제의 서한에 이름을 올린 노동조합들이 AFL-CIO와 미국 노동자들을 얼마나 대표하는지도 문제이지만, 동참한 노동조합들 사이에도 온도 차이가 있다. UMWA는 탄소포집 저장 기술이 그린뉴딜에 포함되어 온실가스를 감축하면서도 석탄을 계속 쓸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IBEW는 서한의 문구 이상의 언급을 거부했다. 

'지속가능성 노동자 네트워크'의 의장은 AFL-CIO의 지도부가 그린뉴딜의 전체 맥락을 읽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하며, 그린뉴딜이 가져올 조직화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청정에너지 부문이 화석에너지 부문 보다 아직 노조 조직이 취약하지만 상황은 변화하고 있다. 청정에너지 일자리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이 부문에서 조직화 캠페인도 활발히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진 산업들이 그러하듯, 청정에너지 부문의 기업들은 기후변화에 맞서기는 하지만 노조 조직화와 단체 교섭에도 적대적인 경우가 많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환경운동가들도 함께 이러한 장애물을 극복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6월 18일 메인 주의 주지사는 메인주 AFL-CIO의 지지 속에 주정부의 그린뉴딜 버전에 서명했다. 주정부 수준의 탈탄소 정책이 일자리와 지역 사회에 유익하다는 점이 동의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2040년까지 학교 태양광패널 설치 및 효율 향상, 청정에너지 인력 개발 조항이 포함되었다. 메인 그린뉴딜의 이행을 감독할 태스크포스는 단체교섭 권리 보호와 좋은 처우의 일자리 창출도 그 임무로 삼게 된다. 메인 주는 화석에너지 매장량이 없고, 주정부가 이미 재생에너지로부터 4분의 3의 전기를 얻고 있다는 것, 그리고 메인 그린뉴딜 초안 작성에 노동 그룹이 밀접하게 관여했던 것도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 낸 배경이다. 메인 주의 사례는 지역의 노동과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고할만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정의로운 전환'은 이제 겨우 담론 수준의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탈핵-탈석탄에 반발하는 기업과 노동조합의 움직임은 이미 가시화되었다. 그린뉴딜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협소화되지 않도록,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이 오히려 준비 부족을 이유로 전환을 지연시키는 핑계거리가 되지 않도록, 알맹이 있는 이야기를 내놓아야 할 때다. '일자리 vs 환경'은 허구적 대립구도이지만 '일자리 + 환경'도 자명한 결론은 아니다.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고 '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다짐이 다음에 와야 한다. 

/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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