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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9-10-28 14:29
‘시위 이후’, 파국론적 비관에 속박되지 않을 전략적 입지 / 박동범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7,044  
기후위기 국면에서 갈수록 불거지게 될 시스템 차원의 불확정성 증대 추이가 함축중인 어떤 가능성 겸 불가능성들은, 기후위기 국면에 내재한 복잡계적 소산-분기 과정 속에서 극히 상반된 양상으로 생겨나는 중이고, 이 같은 양상은 갈수록 더 두드러질 것이다. 기하급수적인 피드백 효과는 그 위기 자체의 동학상 부정적으로만이 아니라 긍정적으로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전략적 입지는 바로 이런 가능성의 현실성을 상호참조, 연결, 증폭시키는 과정을 겨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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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국면, 벼랑 끝? 시스템 이행·전환의 싹수
[에정칼럼] ‘시위 이후’, 파국론적 비관에 속박되지 않을 전략적 입

지난달 하순쯤 세계 동시다발 비상행동 시위와 더불어, 중고생들 위주로 조직된 결석시위가 연이어 벌어졌다. 기후위기 국면이 가진 ‘비상함’을 두루 알리고 공론화하고자 한 것이었음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한동안 반공자유주의적 발전국가의 좌표처럼 손꼽히던 한국의 지정학적 업장 탓인지, 여타 국가-권역에서 벌어진 대중시위 규모에 비해서야 단출하다 하기도 뭐하다 싶게 그 차이가 현격했다지만, 그래도 당초의 흉흉한 예상을 넘어선 호응 속에서 적잖이 고무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현 문재인 정부가 유엔 기후위기 정상회의에 부랴부랴 참석하고, 기후위기 대응 전망에 관해 참 허랑방탕하게나마 어떻게든 ‘반응’한 사실 또한 그 내용처럼 우습게만 볼 순 없는 대목이었지 싶다. 사회운동적인 입지의 대항/대안세력화 과정으로 생겨나는 정치적 저변과 그 압박 효과들이 앞으로 어째서 더더욱 유효해지겠는지 새삼 보여준 듯싶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로선 여러 국면적 맥락들로 보건대, 기성 입법 및 행정의 국가장치들이 그 특유의 과두정적 자기폐색 경향이라든가 중상층 시민-계급적 반노동 편향에 적어도 당분간은 한층 더 충실하면 모를까, 어떤 반전의 장소로 다가올 만하진 않아 보여 더 그랬던 것 같다.

어쨌거나 분명 이번 시위의 성과인 건, ‘시위 이후’에 관한 행동의 중지를 좀 더 전략적인 입지에서 두루 모아가고, 이런 가운데 국면 전환의 동력과 그 지역적 저변을 적극 조성해가기로 한 점이었지 싶다. 민주노총에서 종래의 원칙적 지지 관행을 넘어 이제나마 정치적, 정책적 개입 움직임과 공통된 행동전략을 조직하는 데 적극 발맞추기로 한 건 특히나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종종 생겨나는, 아니, 동시에 바로 그렇게 때문에 이내 생겨나고 마는 어떤 초조감이 이래저래 표출되는 상황 또한 어쩔 수는 없는 것 같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의 지적처럼 이미 위기 국면인 현 기후시스템이 그 부정적 피드백 효과를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리라는 전망대로라면, 조 전 원장이 현 국면을 “벼랑 끝”에 비유한 것 또한 그저 과장만은 아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게 지름길이라고, 이런 상황에 선제적으로 개입해 좀 더 광범한 효과를 내자면 ‘보다 더 전략적인’ 개입 지평이 요청되는 까닭도 아마 여기에 있을 거다.

그런데 바로 이런 맥락에서 되짚어보건대, 현 기후위기 국면의 비상함에 관한 저간의 초조감어린 경고니 호소는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이젠 뭘 어떻게 바꾸려 한들 별 가망이 없으리라는 파국론적 정서를 되레 부추기고, 의도치 않게 그런 정서로 자꾸 동조화되는 중인 건 아닐까? 말하자면 이런 자문을 실마리로 자기비판적인 복기가 좀 돼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UN 기후변화정상회의에 운집한 시위대

일단 기후위기 국면의 막장됨 자체보다 사실 더 중요한 건, 그 위기가 어떤 위기로 ‘좀 더 복잡하게’ 다시 지각, 규정될 수 있겠느냐 아닌가 싶다. 실제로 이 국면은, 오롯이 그 국면에서 생겨난 기하급수적 피해증폭 효과로밖엔 전망될 수 없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현 위기 국면의 복잡성이 가지게 될 ‘기본 성격’이, 바로 이 대목에서 한층 더 두드러져야겠다고 할까. 이런 내 주장은 그럼 소위 ‘뇌피셜’, 즉 파국의 가능성 따위 근자감으로 극복하자는 또 다른 정신승리법의 발로인 거냐. 글쎄, 그렇기보다는, 기후위기라는 실재와 그 실재의 일부인 우리 자신이 어떤 ‘복잡계적 과정’의 행위소로서 어떻게, 어디까지 상호연루된 만큼이나 그와 동시에 상호분기하게 되겠느냐는 문제틀에 좌우되는 것이라 해야겠다.

어쩌면 이런 문제틀(로의 전환)이야말로, 적어도 현 위기 국면의 긴급함만큼이나 긴급하게 요청되어야 하는 것 같다. 향후 보다 더 전략적으로 넓혀야 할 행동 지평의 핵심이 바로 이런 상호분기 움직임들로 생겨나는 긍정적 피드백 효과를 부정적 효과가 무색해지리만치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켜가려는 데 있다면, 확실히 그렇지 싶다.

이 문제틀을 진전시키는 데서 역시나 중요한 건, 현 기후위기가 지구적 생태시스템 자체의 위기이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지난 수 세기 동안 자본제적으로 재조직, 정당화돼왔던 아주 독특한 생태시스템의 위기란 사실 아닌가 싶다. 수 세기에 걸쳐 먹거리와 농/토지, 자연자원들, 사물화-인종화된 사람들 간의 (재)생산관계 및 그 부불-그림자노동에 이르는 광범한 비인간/인간-행위자들을 “값싼 자연”으로 끊임없이 (재)규정, 규율한 가운데 지구 규모로 집적돼온 자본제적 생태시스템은, 이젠 그 자체로 막장의 아수라 상태에 다다른 셈이다.

그만큼 현 위기 국면은, 자본제적 생태시스템 특유의 사회-정치지리적 편성 및 그 비용전가의 풍선 효과가 이런 시스템상의 직접적, 만성적 피해대중은 물론 주요 수혜자 계급의 미래와 영혼마저 급속히 잠식할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될 것임을 시사한다. 자본제적 생태시스템의 불확정적 궁지들을 그 규모/빈도 면에서 폭증시키는 저간의 위기를 온통 나쁘게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자본제적 생태-시스템에 참 괴이하다 싶게 특유하던 ‘자기조절-정상화’ 압박들 또한 바로 이 위기 덕분에 그 어느 시절보다도 이미 박약해졌거나, 박약해질 수밖엔 없겠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아무리 이렇다 한들, 저간의 위기는 자본제적 인간됨 및 그 생태시스템의 막장을 넘어 지구적 생태시스템 자체의 구조전환, 즉 인간됨 자체의 소멸로 능히 귀결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전략적 입지’에서 부러 부각돼야 할 건, 자본제적 생태시스템 스스로 산출중인 불확정적인 소산(消散) 효과 덕에, 이제까지와는 크게 다른 시스템 이행/전환의 전망 또한 기왕의 그 어느 역사적 국면에서보다 사회정치적으로 더 커지게 됐다는 점 아닐까? 자기해방적이고도 상호해방적인 살림살이 저변-관계로의 세계-사회적 이행/전환 전망을, 그 어느 때보다도 기하급수적으로 범람시킬 수 있겠다는 쪽으로 말이다. 이런 가능성이 인간됨 자체의 소멸 공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낮출 가능성과 거의 필연적으로 양립가능해지는 건 물론이다.

바로 이런 전망과 그 국지적, 권역적 싹수들을 어렵사리 발굴, 상호참조해가는 일이야말로, 적어도 이제부터는 보다 더 전략적인 입지의 대들보 노릇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도 파국론적 비관의 가능성들만큼이나, 시스템 이행/전환의 싹수들은 마치 세계 곳곳에 흩어진 ‘드래곤볼’ 같은 형태로나마 이미 국지적 규모로 대개 ‘현존’ 중이기도 하다.

이들 가능성은 아마도, 자본제적 생태시스템의 파국적 위기 가능성이나 지구적 생태시스템 자체의 불가역적 전환 가능성으로도 환원불가능하게 생겨나고야 마는 살림살이의 장역들일 테다. 예컨대 ‘해고는 살인이다’ 같은 슬로건이 고용 여하가 삶을 판가름내지 않는 더 나은 살림살이 저변에 관한 미시정치적 상상력을 되레 옥죄는 효과를 불렀던 전철이, 파국론적 경고에 깃든 조바심의 정서 속에서도 거듭 되풀이 되려는 건 아닌지, 그야말로 전략적인 입지에서 이참에 서로들 좀 되짚어봤으면 싶다. 상호배타적인 건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제껏 던진 물음들을 진전시키는 데서 보다 더 유용한 건 ‘인류세’보다는 ‘자본세’라는 규정이 아닌지도 아울러서 말이다.

이처럼 기후위기 국면에서 갈수록 불거지게 될 시스템 차원의 불확정성 증대 추이가 함축중인 어떤 가능성 겸 불가능성들은, 앞서 기후위기 국면에 내재한 복잡계적 소산-분기 과정 속에서 극히 상반된 양상으로 생겨나는 중이고, 이 같은 양상은 갈수록 더 두드러질 거다.

우리가 실제로 전략적인 입지를 중시하자면, 이런 사실에 보다 더 민감해질 수 있어야지 싶다. 기하급수적인 피드백 효과는 그 위기 자체의 동학상 부정적으로만이 아니라 긍정적으로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전략적 입지는 바로 이런 가능성의 현실성을 상호참조, 연결, 증폭시키는 과정을 겨냥하는 것일진대, 이런 입지가 보다 더 분명해져야 파국론적 비관의 정서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시스템 이행/전환의 입지 조성 및 세력화 전망 또한 좀 더 차분하면서도 기왕이면 활기차게, 아마도 기하급수적으로 폭증, 범람하게 되지 않겠나 싶다. 이런 기대 내지 ‘믿음’부터가 상당 정도 이런 말이 씨가 되도록 하는, 일종의 자기수행적 실천 효과를 겨냥한 것일지는 몰라도 말이다.

/ 박동범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조지부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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