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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9-11-11 10:28
농민, 기후위기 시대의 선봉장으로 / 김현우 선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383  
로컬푸드와 유기농, 소농의 대안들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의 전기 생산 비중을 20% 달성한다는 계획보다 덜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어야 하고, 덜 적은 예산과 행정력이 투입되어도 괜찮을까?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좌우하는 농업과 토지 이용을 책임지는 이들이 농민이라면, 그만큼 농민도 ‘사라질 직업’이기는커녕 존경받고 인기 있는 직업군으로 대접받아야 한다. WTO 개도국 지위 여부는 그렇게 보면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한국의 농민들도 보다 과감한 요구를, 실은 아주 현실적인 요구를 진지하게 내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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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기후위기 시대의 선봉장으로
[에정칼럼] 해결자로서의 농업 자리매김 요구해야

“피딩 더 5000(Feeding the 5000)”이라는 행사가 있다. 아마도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것인데,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식재료로 5000명 분의 식사를 만들어 함께 나눠먹는 축제다. 2009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처음 시작된 이 행사는 지금은 더블린, 맨체스터, 파리, 시드니, 암스테르담, 브뤼셀, 뉴욕, 워싱턴 DC, 포틀랜드 등 수십 개 도시로 확산되었다.

이 축제에 쓰이는 식재료는 조금 상처가 난 브로콜리나 매끈하게 생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버려지던 것들이다. 가정과 식당에서 일부 나온 것들뿐 아니라 맛과 영양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이윤을 위한 시장 경쟁에 끼지 못하고 공장, 슈퍼마켓, 시장, 농장 등에서 모아진 못난이들이다. 행사 때마다 모이는 재료의 품목과 양도 제각각이다. 이 때 나서는 이들이 멋진 셰프들이다. 식재료의 상태와 특성을 확인하여 그날 만들 메뉴와 레시피를 작성하고 조리에 들어간다. 참가한 시민들은 맛있는 요리를 나눠먹으면서 먹거리의 지속가능성과 환경적 효과를 생각할 수 있는 각종 부대행사도 체험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만 해도 처음에는 이 행사와 비슷한 미덕을 가졌지만 지금은 인기 연예인들의 냉장고에 든 현란한 식재료를 활용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머물고 말게 되었다. 재능 있는 셰프들과 진행자들이 방치된 식재료에서 먹거리와 살림살이의 철학을 더 끌어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사진] “피딩 더 5000” 페스티벌

어쨌든 “피딩 더 5000”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많은 식재료가 아깝게 버려지고 있고 그럼에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어려운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뿐만이 아닐 것이다.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먹거리가 갖는 의미는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 측면에서도 엄청나게 크다. 폴 호컨이 대표 집필한 <플랜 드로다운>(글항아리/사이언스, 2019)은 70여명의 세계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모여서 온실가스 감축 효과와 경제적 실현 가능성이 큰 80여개의 기술과 수단들을 검토한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음식물 쓰레기 최소화’는 2050년까지 세계에서 70.53기가톤의 이산화탄소 감축을 가져올 수 있으며, 감축 효과는 전체에서 3위에 해당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음식물 쓰레기가 그저 가정이나 레스토랑의 식탁에서 먹고 남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볼 때 재배되고 조리된 식재료와 음식의 3분의 1은 생산부터 소비에 이르는 식품 사슬에 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그냥 버리는 식량은 매년 4.4기가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배출하는데 이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8%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한다. 식량을 국가로 친다면 중국과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 온실가스 다배출국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피딩 더 5000”이 알려주듯, 현대의 거대 식품메이저들의 기준으로 상품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식재료들은 산지에서 그냥 버려지기 일쑤다. 사실 우리는 동네 슈퍼와 마트에서 말끔한 인큐 호박, 크기와 색깔이 고른 사과 같은 예쁜 과채류 밖에 볼 수 없다. 조금 못생긴 가지와 오이가 괜찮다는 사람들이더라도 일상에서는 그런 식재료들을 접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렇게 버려진 식재료들은 재배하면서 에너지를 소비했을 뿐 아니라 그냥 부패하면서 메탄 같은 더 온실효과가 큰 가스들을 내뿜게 된다. 이런 커다란 온실가스 배출원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플랜 드로다운>이 제시하는 목록은 에너지 생산과 소비 방식 못지않게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 방식이 기후위기 대응에서 매우 중요함을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 효과 순위로 보면 3위 음식물 쓰레기 최소화, 9위 임간축산, 11위 재생농업, 14위 열대 주곡, 16위 보존논업, 17위 수목간작, 19위 관리형 방목, 23위 농지복원, 24위 개량된 벼농사, 28위 다층 혼농임업 등 먹거리와 농업에 관련된 것들 다수가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30위권 내에서 육상풍력발전 2위, 태양광 발전단지 8위, 지붕형 태양광발전 10위, 지열 18위, 집광형 태양열 25위, 전기자동차 26위이니, 재생가능에너지 보급만이 온실가스 감축에서 능사가 아닌 셈이다. 지난 8월 8일 IPCC의 제50차 총회에서 채택된 “기후변화와 토지 특별보고서”도 농업과 삼림 관리, 토지 이용 등에서 인류 온실가스 배출의 23% 가량이 이루어진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농민과 농업은 대체로 ‘피해자’로서의 위상만이 부각되어 온 게 사실이다. 기온와 수자원의 환경 변화로 경작과 축산 조건이 바뀌는 것과 관련된 결과들이 대표적이다. 사과 농장을 애플망고 농장으로 바꾸어서 일부 농민이 소득을 증대할 수 있겠지만, 더 많이 투입해야 할 시설비와 더 잦은 날씨 변동은 더 많은 리스크를 안게 만든다. 변화하는 유통 시스템과 기술을 소화할 수 없는 나이든 소농들은 그야말로 “없어질 직업”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된다. 최근 한국 정부가 내비친 WTO 개도국 지위 포기 방침으로 그 나마의 농업 보호막마저 없애게 하지 않을까 우려가 더욱 커진다.

그러나, 농업과 농민은 반격할 수 있고 또 반격해야 한다. 그것도 기후위기 대응의 선봉장으로서 말이다.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얀 다우 판 더르 플루흐 네덜란드 와게닝겐대 명예교수는 <새로운 농민: 세계화 시대의 농촌 발전>(한국농정신문, 2019)에서 어쩌면 놀라운, 그러나 그가 직접 경험하고 세계적으로 확인한 사실을 알린다. 농민이 줄어들기는커녕 이러저러한 모양새로 다시 나타나고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농민은 마르크스가 묘사한 “포대자루 속의 감자”이기는커녕 직접 창의적인 저항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존재들이다. 세계화 시대에 ‘재농민화’된 농민들은 지구 환경과 농민의 삶을 파괴하는 ‘먹거리 제국’에 맞서서 유통까지 포괄하는 더 넓은 농업 활동과 투쟁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먹거리 제국의 경영자 중심 농업과 달리 농업하는 농민은 농지와 산림을 보전하여 이산화탄소 흡수원을 늘리고, 식량 생산과 유통에 소비되는 에너지를 줄이며, 자신의 살림살이와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하여 경작과 축산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1만년 전부터 강어귀의 충적 평야에서 씨를 뿌리기 시작한 경작 활동은 현생 인류의 DNA 어딘가에 굳게 자리잡고 있으니, 지구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살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기후위기 인식과 대응의 방법들도 그 유전자 속에 이미 대부분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의 압력으로 인한 정부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 방침이 농업보조금 삭감과 수입개방 확대로 이어질 것을 염려하는 국내 농민단체들은 일단 강하게 반발하며 다른 한편으로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국가예산의 3%가 채 안 되는 농업분야 예산을 4%인 20조원으로 올릴 것, 보다 구체적으로는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수단인 공익형 직불제 예산을 1조원 가량 별도 편성하여 농민에게 기본 소득을 보전해달라는 것 등이다. 농민단체들도 개도국 지위 포기에 따른 피해에 대한 단순한 보전이 아니라 농민과 농업 보호를 위한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농민과 농업을 살리는 데에 충분할까? 그리고 그 정도로 기후위기 비상사태에서 농업이 맡아야 할 역할을 보장할 수 있을까? 로컬푸드와 유기농, 소농의 대안들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의 전기 생산 비중을 20% 달성한다는 계획보다 덜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어야 하고, 덜 적은 예산과 행정력이 투입되어도 괜찮을까?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좌우하는 농업과 토지 이용을 책임지는 이들이 농민이라면, 그만큼 농민도 ‘사라질 직업’이기는커녕 존경받고 인기 있는 직업군으로 대접받아야 한다. WTO 개도국 지위 여부는 그렇게 보면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농민단체가 요구하는 직불금과 예산 비중은 농업을 살리기에도, 그리고 기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턱없이 적다. 한국의 농민들도 보다 과감한 요구를, 실은 아주 현실적인 요구를 진지하게 내세워야 할 때다. 정부와 언론, 기후정의 운동, 그리고 전업으로 농민이 아닌 모든 국민들에게도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 예산의 4%가 아니라 10%를 농업에 투입하여 현재 25%에 불과한 식량 자급률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라고 해야 한다. 재생가능에너지 100%를 달성할 시점이면 식량 수출과 수입을 모두 합쳐서 식량 자급률도 100%를 달성하라고 해야 한다. 그만큼 중요한 공익적 활동을 하는 농민에게 준공무원 신분과 소득을 보장하라고 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산업부, 환경부, 국토부, 농림축산부가 동일한 비중으로 역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게 예산과 행정력을 배정하라고 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농촌에서든 도시에서든 지어먹을 작은 땅을 갖고 파트타임으로 농민이 되어야 한다고 해야 한다.

그리하여 농민은 경제성장 그리고 이와 더불어 초래된 환경 파괴의 대가로 얻은 이익을 좀 더 나눠달라고 요구하는 피해자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금은 기후위기 비상상황이기 때문이다.

/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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