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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9-12-23 10:42
'기후침묵'과 '원전침묵' 모두를 깨야 / 김현우 선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8,342  
핵발전의 문제는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염려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일정한 딜레마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후침묵’을 비판하고 벗어나고자 했듯이, 온실가스 감축 달성을 걱정하며 ‘원전침묵’에 빠져 있어서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어차피 환경과 에너지의 프레임을 전면적으로 다시 짜지 않으면 기후위기는 극복될 수 없다. 핵발전에 의지하는 화석연료 퇴출은 불가능한, 진정한 해법을 늦추는, 후회막급한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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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침묵’과 ‘원전침묵’ 모두를 깨야
[에정칼럼] 후회 없는 해법을 위한 후회 없는 행동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가 작년 가을에 발표한 “1.5도 상승에 관한 특별보고서”와 올해 전 세계에 파급된 그레타 툰베리의 “기후파업”의 여파 속에 기묘한 그러나 어느 정도는 예상되었던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방안의 하나로서 핵발전 유지 또는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여러 곳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월 12일, 유럽연합 회원국 정상들이 2050년까지 유럽의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로 한다는 이른바 탄소중립 달성 목표에 합의한 것을 보도한 국내 언론들의 해석과 반응도 그 중 한 모습이었다. 몇몇 언론은 이 합의가 핵발전을 녹색 에너지로 공식 인정하는 내용을 포함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과 맥락을 살펴보면 보도 자체는 고의적인 오보에 가깝다. 이 정상회의에서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핵발전 수용 여부가 논의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대해 합의가 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핵발전 비중이 높은 프랑스나 동유럽 일부 국가들이 핵발전 포함을 바랐지만 이미 탈핵을 분명히 한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은 강하게 반대했고, 그래서 합의문에는 “일부 회원국들은 자신의 국가 에너지믹스의 한 부분으로 핵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했다”고만 기술되었을 따름이다.

사실 이번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핵발전 문제가 새삼스레 논쟁이 된 배경에는 유럽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우선적으로 금융을 지원할 대상 에너지원의 범위를 결정하는 과정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12월 5일 열린 유럽의회는 녹색금융상품의 기준에 “중대한 피해를 끼치지 않는(Do no significant harm)” 에너지원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포함했다.

구체적인 기준은 내년에 확정될 예정인데, 이를 두고 유럽 녹색당은 석탄발전뿐 아니라 천연가스발전과 핵발전도 투자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입장을 냈다. 하지만 이 회의에서 핵발전이 녹색금융의 투자 회피대상으로 분명히 정해진 것도 아니다. 결국 중대한 피해 불가를 강조하면 핵발전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결론으로 해석되지만, 배출제로라는 합의 속에 각국의 핵발전 선택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부분을 강조하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기후변화 대응 속에서 핵에너지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엔 기후체제에 핵발전을 끼워 넣으려는 시도들이 진작 전개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1999년 독일 본에서 열린 제5차 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5)에서 도서국가연합과 유럽 국가들이 청정개발체제(CDM)에 핵발전을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 유엔 기후체제에서 핵발전이 처음으로 언급된 사례였다. 다음 해에 헤이그의 열린 COP6가 교토의정서의 구체적인 제도 설계가 논의된 회의였는데 여기서 핵발전에 대한 본격적인 찬반 논쟁이 이루어졌다. IPCC 의장은 핵발전이 온실가스 감축에 유효하다는 취지의 연설을 했고 유럽연합은 핵발전 이용에 반대했다.

2001년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COP6 속개회의에서 나온 타협안은 오히려 “선진국들은 핵발전을 통한 배출 감소를 자제해야 한다”는 문구로 정리되었고, 이후 CDM에 핵발전을 포함시키는 문제는 더 이상 논의되지 않게 되었다. 2015년에 핵발전 강국 프랑스에서 열린, 그리고 새로운 기후체제를 탄생시킨 파리 COP21에서도 핵발전은 어떤 공식 의제가 되지 못했다. 요컨대 핵발전은 합의될 수 없는 수단이며, 핵추진 국가들도 핵발전 주장을 유엔 기후체제에서 꺼내는 게 무용한 일이라고 여기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Don’t Nuke the Climate”이라는 국제 네트워크가 있다. WISE(국제에너지정보센터), NIRS(핵정보자원센터), IPPNW(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 등 반핵단체들이 주도하고 전 세계 500개 이상의 단체들이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이 네트워크의 명칭은 ‘기후를 핵으로 괴롭히지 말라’로 번역될 텐데, ‘핵에너지가 기후변화의 대안이 될 수 없음에도 이를 빌미로 핵발전 세일즈 같은 공연한 시도를 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핵발전이 너무 더럽고, 너무 위험하며, 너무 비싼 에너지원이어서 기후변화 대응 수단으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핵에너지는 원료 채굴부터 개발 및 운영 과정에서 인권 침해를 일으키고 수백년 이상 환경을 오염시키며 후세대에게 부담을 안겨준다. 특히 화석연료로 인한 배출을 줄이기 위해 핵발전을 사용하려면 전 세계 핵발전 산업의 능력을 넘어서는 전례 없는 핵발전 건설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대신에 이들은 태양, 바람, 지열, 에너지 효율, 분산 발전, 전기 저장 등을 포함한 청정 에너지를 통해 탄소 및 메탄 배출, 방사성 폐기물 및 기타 오염 물질 없이 세계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진] 석탄발전과 핵발전 반대를 함께 요구하는 “Don’t Nuke the Climate”

핵발전이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반핵단체들의 말만이 아니다. 세계의 기술자들이 모여서 지구온난화를 저지할 100가지 실용 기술과 수단들을 검토한 <플랜 드로다운>은 핵발전을 온실가스 감축 효과로 20번째의 방법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핵발전에 대한 이 보고서의 평가는 회의적이다. 플랜 드로다운을 실현하는 해법은 여러 유익한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주어야 하며 동시에 ‘후회 없는 해결책’이어야 한다. 하지만 핵발전은 이미 여러 차례 일어난 사고와 방사성 물질 발생과 폐기물 처리 등의 문제로 후회막심한 해결책일 뿐 아니라 경제적이지도 못하다. 저자들은 사실상 다른 모든 형태의 에너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비용이 낮아졌지만 반면에 핵발전의 비용은 40년 전에 비해 도리어 4~8배나 높아졌다고 지적한다.
지구온난화의 티핑 포인트가 산업혁명 이후 1.5도 상승으로 제시되고 탄소예산이 10년이 채 남지 않은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시간’의 문제는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국제에너지기구 (IEA)에 따르면, 향후 15년 동안 매주 하나의 새로운 원자로가 완공되더라도 온실가스 배출은 9%만 감소될 수 있을 따름이다. 게다가 현재 세계에서 한 해에 늘어나는 원자로는 많아야 3,4기 정도에 불과하며 노후한 원자로가 더욱 빠른 속도로 폐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는 사이에 재생에너지 보급의 확대는 핵발전이 전 세계 전기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더욱 왜소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9월 27일 공개된 2019년 WNISR(세계 핵산업 현황보고서 2019)까지만 살펴보자. 대표 편집인은 프랑스 에너지 경제학자 마이클 슈나이더이며, 올해에는 로키마운틴연구소의 에이머리 로빈스도 필진으로 결합했다. 로빈스는 “핵발전이 다른 기후 해법들을 몰아낸다”는 점을 환기한다. IPCC의 1.5도 특별보고서가 핵발전을 온실가스 감축 수단의 일부로 언급하고 있지만, 시간과 비용을 고려할 때 핵발전을 배제하는 대안이 실제로 더 많은 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보고서는 새로운 핵발전소는 태양광 또는 풍력발전보다 건설이 5~17년 더 오래 걸리며 건설비용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화석연료 발전소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는 “탄소감축 뿐만 아니라 비용과 시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핵발전의 기후위기 대안으로서 갖는 문제는 이외에도 많다. 핵발전의 전체 사이클로 보면, 핵분열 과정 자체를 제외하면 우라늄 채굴과 농축, 발전소 건설과 운영, 운송과 폐기의 모든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지만 이는 제대로 계산되지 않는다. 핵발전에서 방출되는 온배수는 바닷물 온도를 상승시킨다. 또한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상승이 가속화되면 대부분이 바닷가에 위치한 핵발전소의 가동 자체가 수십 년 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폭염이 잦아지면서 냉각에 어려움을 겪은 유럽의 핵발전소가 피크 시즌임에도 오히려 가동을 중단해야 했던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에너지의 기술적 운용 측면에서도 핵발전은 미래에 더 많은 장애물이 될 것이다. 핵발전 찬성론자들은 재생가능에너지의 변동성과 간헐성을 지적하지만, 그러나 핵발전은 경직성과 지리적 편중성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갖는다. 늘어나는 재생가능에너지와 결합되는 기동적이고 유연한 에너지 수급 시스템과 핵발전의 경직성이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기에 대표적인 찬핵론자가 “원전은 큰 아들이고 재생가능에너지는 막내 아들”이라고 했던 비유가 잘못인 이유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의 기후위기 대안 논란은 좀비처럼 다시 등장한다. IPCC 특별보고서가 한 불쏘시개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정책가들을 위한 특별보고서 요약본은 온난화를 1.5도 이내로 억제할 수 있는 네 가지 시나리오에서 핵에너지 공급량을 2010년과 비교해서 2050년까지 2~6배까지 늘려야 한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IPCC는 본보고서에서 각 기술의 현실 타당성을 평가하는 부분에서는 핵발전이 지구물리적 측면 외에는 경제성, 환경, 기술, 사회문화 등 영역에서 모두 재생가능에너지원들에 비해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핵발전은 이제 확장 속도가 늦어졌고 많은 국가에서 사회적 수용성이 제약을 받고 있다고 적고 있다. 핵발전소를 대체 지구상 어디에 어떻게 몇 배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인지,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불리하고 부정적인 측면까지 감안하여 에너지 시나리오에 투입해야 한다는 것인지, IPCC가 각국 정부에 던져 준 무책임한 문제지다.

현실은 이렇다. 찬핵론자들도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핵발전을 구체적으로 몇 년까지 몇 기를 더 건설하자고 분명하게 말하는 이는 거의 없다. 다만 가동 중이거나 계획 중인 핵발전소까지 취소하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이행하는 게 더 어려울 것이라거나, 석탄화력발전소를 조기 폐쇄하면서 핵발전까지 줄이면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이 주된 주장이다. 기후위기의 현실론 앞에 실은 대안이 없다는 현실론을 들이대는 것이다. 핵발전 비중을 유지하는 영국과 프랑스가 온실가스 감축 실적에서 상대적으로 앞서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탈핵을 결정한 독일과,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 비중이 1/10 이하로 줄어든 일본이 상당한 온실가스 감축을 실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핵발전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한국과 터키가 OECD 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 증가가 가장 빠른 것 역시 사실이다.

핵발전의 문제는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염려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일정한 딜레마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후침묵’을 비판하고 벗어나고자 했듯이, 온실가스 감축 달성을 걱정하며 ‘원전침묵’에 빠져 있어서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어차피 환경과 에너지의 프레임을 전면적으로 다시 짜지 않으면 기후위기는 극복될 수 없다. 핵발전에 의지하는 화석연료 퇴출은 불가능한, 진정한 해법을 늦추는, 후회막급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와중에도 면밀한 준비 그리고 시행과 착오를 거치면서 핵발전과 석탄발전 없는 에너지전환을 실현하는, 우리가 힌트를 얻을 나라들이 여럿 있다. 탈석탄과 탈핵의 동시 병행을 향해 한 걸음 두 걸음을 내딛을 것인가, 엄두가 나지 않는 변화를 두려워하며 계속 석탄발전과 핵발전 모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방사능만큼 무서운 것이 핵발전이 만들어 놓은 관성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회 없는 해법을 위한 후회 없는 행동, 그 현실론이 필요한 때다.

/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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