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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20-02-18 16:07
코로나19와 배출제로에 관한 공상 / 김현우 선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6,877  
산업 생산의 규모 자체를 일정하게 줄이지 않으면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은 절대 불가능하다. 어떤 정책과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모두가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고 쉽게 이루어지는 배출제로는 없다. 물론 그러한 경제 축소를 질서 있게, 민주적으로, 지혜롭게 이루고 그 부담을 잘 나누는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 ‘정의로운 전환’이나 ‘그린 뉴딜’은 그런 방향의 전환을 거들 수 있는 방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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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배출제로에 관한 공상
[에정칼럼] 현 비극적 상황의 완화와 종결 바라며

윌리엄 맥닐은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질병이 인간 문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여러 장면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남미 정복이 군사력 못지않게 전염병이 작용했을 것이며, 인도와 남중국의 부족이 오랫동안 강대한 세력의 침략을 면할 수 있었던 것도 열대성 풍토병이 이유가 되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페스트나 콜레라처럼 엄청난 수의 생명을 앗아간 전염병이 대규모 이주나 신기술 개발과 확산의 계기가 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맥닐이 이러한 장면들을 단지 자연과학적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생’의 철학으로 해석하는 것이 재미있다. 그에 따르면 기생충이 인간이라는 숙주에 붙어사는 것이 ‘미시기생’이고 인간 집단이 다른 인간 집단 또는 생물 집단에 폭력적으로 기생하는 것이 ‘거시기생’이다. 역병의 창궐은 미시기생하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반란을 일으키는 현상이고, 거시기생은 착취와 전쟁이라는 현상을 일으킨다. 인간의 쓰임새를 위해 벌어지는 생태계의 교란과 사회의 파괴를 경고하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코로나19 사태의 끝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국내에서는 확진자 발생이 소강 상태에 접어든 듯하고 지역사회 감염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발원지인 중국에서는 확진자 7만명, 사망자 1700명을 넘어서고 있고,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도 확산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인명 걱정만큼이나 각국 정부는 경제를 걱정한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16일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8%에서 5.2%로 0.6%p 하향 조정했다. 한국 역시 완성차 같은 제조업 뿐 아니라 관광업과 서비스업에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비극적인 상황의 완화와 종결을 바라면서도, 하나의 공상을 해 본다. 중국발 전염병 사태가 인류의 커다란 위기인 기후변화에 극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공상이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를 위시하여 많은 국제기구와 과학자들이 산업혁명 이후 1.5도로 기온상승을 억제해야 파국적 결과를 막을 수 있으며, 2050년까지는 지구적으로 탄소 배출제로를 달성해야 가능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를 포함하여, 너무도 느린 각국 정부의 행보는 과연 배출제로가 가능할 것인지를 회의하게 만든다. ‘경제 성장’을 포기하거나 상대화한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배제한 채 기술적 해법과 말장난에만 매달리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산업 생산의 규모 자체를 일정하게 줄이지 않으면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은 절대 불가능하다.

한국이 한 해에 14% 정도 온실가스 배출이 하락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20여년 전 IMF 구제금융 사태의 결과였다. 1998년의 경제성장률이 –5.1%였다. 모두 기억하다시피 수많은 정리해고자와 자살자, 노숙자가 생겨났고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그 정도의 경제적 타격을 다시 감수하자고 하기는 쉽지 않지만, 온실가스 감축은 지금과 같은 경제의 일정한 축소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어떤 정책과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모두가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고 쉽게 이루어지는 배출제로는 없다. 물론 그러한 경제 축소를 질서 있게, 민주적으로, 지혜롭게 이루고 그 부담을 잘 나누는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 ‘정의로운 전환’이나 ‘그린 뉴딜’은 그런 방향의 전환을 거들 수 있는 방법들이다.

다시 공상을 계속 해보자. 코로나19 사태로 ‘세계의 공장’인 중국 경제가 더욱 위축된다. 중국 사람들이 비행기와 자동차를 덜 타고 마트를 덜 이용하게 된다. 한국 등 주변국들도 영향을 받아서 경기가 침체된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일어난다. 중국 정부가 경기 위축을 오히려 경제와 사회를 녹색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서 전당적 전국가적 노력을 경주하게 된 것이다. 우한에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임시 병원을 건립한 실력으로 재생가능에너지와 대중교통 건설에 나선다. 이미 중국은 태양광과 풍력 보급 규모와 속도가 세계 1위인 나라다. 농업도 자급률을 높이고 유기농 비중을 늘리며, 황무지에 나무를 심는 양도 훨씬 늘어난다. 물론 그만큼 온실가스 배출도 극적으로 줄어든다. 전염병 사태 이후 10년 만에 넓디 넓은 중국 땅이 ‘상전벽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중국은 배출제로를 향해 성큼 다가서게 된다.

중국의 변화와 함께 국제 사회도 바뀌게 된다. 중국이 기후위기 대응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되면서 그리고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유엔에서의 발언권도 커지게 된다.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했던 트럼프 때문에 미국은 국제 무대와 에너지 시장에서 중국에 완전히 밀려나게 된다. 한국 정부마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중국의 기술과 경험을 들여와 녹색 뉴딜을 본격화하게 된다.

2050년, 지구 온도는 1.5도가 상승한 수준에서 간신히 안정화된다. 세계인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코로나19가 우리 모두를 살렸다고 2020년을 돌아보게 된다. 인간이라는 기생충이 지구에 거시기생하며 초래했던 기후위기라는 폭력 사태가 미시기생 바이러스 덕분에 간신히 극복되었다고 자성하면서.

/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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