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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20-03-09 10:24
총선 선거연합, 원로가 아닌 청소년들이 제안한다면 / 한재각 소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6,547  
모든 선거연합이 부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법과 제도를 바꿔서 선거연합이 더 쉽게 될 수 있도록 하여, 양당 체제에서 반영되지 않은 유권자들의 민의가 더 잘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선거연합은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의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퇴행적인 미래통합당 반대 선거연합이 아니라, 기후위기 해결과 그린뉴딜을 위한 선거연합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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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선거연합, 원로가 아닌 청소년들이 제안한다면
[에정칼럼] 무엇을 위한 연합? 강령과 정책공약은?

4월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 사태가 거의 모든 이슈를 가린 탓에 소위 말하는 ‘선거 분위기’도 제대로 뜨지 않고 있다. 보통 때라면 정당들 사이의 이합집단과 정치인들의 철새 이동으로 야단법석이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정당들의 총선 공약 발표와 논쟁에 불이 붙기도 하는 정치적 바람이 불어야 하는데, 너무 조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코로나 비선 자문’과 같은 황당한 정치 공세를 제외하면 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감염되어 치료받고 있는 분들이나 방역과 치료를 위해서 애쓰는 분들이 공감할는지 조심스럽지만, 이런 재난 앞에서 정치는 중단되기보다는 더욱 활성화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재난이 누군가의 생계와 생존을 위협받고 있지만 누군가는 돈벌이 기회로 이용하고 있고, 정부는 이를 바로잡기보다는 기존의 불평등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일부 건물주들의 선행을 상찬하며 그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데 골몰하거나, 온실가스 배출을 늘릴 자동차 구매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재난 앞에서 정치는 조용해서는 안 되며, 총선은 더 시끄러워야 한다.

기후위기를 경고하고 비상행동을 촉구하는 입장에서도 조용한 총선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총선을 통해서 기후위기가 얼마나 절박하고 파국적인 상황인지를 알리고, 지구와 삶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 변화를 일굴 정치적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사태로 오랫동안 준비했던 3월 14일의 제2차 대규모 집회와 행진 기획을 포기해야 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를 두자는 처방은 존중하지만, 정치적 억압의 이데올로기로 작동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모이고 외치는 것이 시민들이 가진 정치적 자원의 대부분인데, 광장을 잃고 동료 시민들과 함께 모이는 것조차 불온시되고 있다. 답답하다.

그런데 조용한 정치의 장에 ‘위성정당’ 논란만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다. 표의 등가성 보장을 위해 비례대표를 확대하자는 선거법 개정운동은 기득권 정당들의 저항을 뚫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법적 미비함으로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을 세워 제1당 자리를 차지한다는 ‘꼼수’를 가능케 하면서, 곧바로 정치는 늪에 빠졌다. 민주당 주요 정치인들과 그 지지자들은 미래통합당의 꼼수가 통해 이명박-박근혜 류의 극우반동 세력이 재등장할 수 있다며 공포를 부채질하고, 그 핑계로 같은 ‘꼼수’를 매만지고 있다. 자칭 시민사회 원로라는 이들도 선거연합당을 주장하며, 결과적으로 그 꼼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다행히 정의당의 입장은 명확해 보인다. 심상정 대표는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과 비례선거 참여는 ‘꼼수’에 ‘꼼수’로 대응하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은 일각에서 지속된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을 스스로 뒤집어쓰는 선택이 될 것이며, 의석수의 확대 가능성도 낮다고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를 이런 입장을 공개적으로 확인하고 비례대표 명단을 확정하여 발표하였지만, 여전히 정의당을 흔드는 이들이 많아서 안타깝다. 이와는 별개로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단 한 명의 후보만이 후순위로 포함되어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위장정당 규탄 정치개혁공동행동 기자회견. 박스 안은 녹색당

가장 난감한 것은 녹색당이다. 사퇴는 했지만 당내 유력한 정치인이자 최근까지도 공동운영위원장이었던 이가 시민사회 원로들과 함께 선거연합당 창당에 나서면서, 녹색당의 참여를 제안하였기 때문이다. 당 일각에서는 오랜 염원이었던 국회 진출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무엇보다도 기후위기 상황에서 국회 내에서 녹색당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며 기대감을 표하기도 있다. 그러나 싸늘한 반응이 대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녹색당 내부 갈등이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사전 논의와 합의 과정도 없고 향후 이를 진행할 시간도 부족한 상황에서 갑작스런 제안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위성정당 구상은 선거법 개정 취지를 부정하는 몰염치한 일이지만, 시민사회 원로가 제안했다는 선거연합당 구상 자체도 정치적으로 문제가 많다. 선거연합을 위해서 모인다고 했을 때 내세울 강령 혹은 정책공약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래통합당의 원내 제1당 등장의 저지 이외에 다른 것을 공동으로 합의할 수 있을까? 미래통합당 위성정당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논의되지 않았을 선거연합이기 때문에 답은 명확하다. 반대로 위성정당이든 선거연합당이든 보수 양당 사이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하고자 노력해온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기 쉽다. 한국 정치가 대변하지 못한 이들을 대의하려 애쓰고, 생략되고 미루어졌던 사회적 의제를 정치화하려고 싸워 온 진보정당운동의 역사와 책무를 잊어서는 안된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 생략되고 미루어지고 있으나 부각되어야 할 중요한 의제에 기후위기를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지속되는 기후침묵 속에서 기후위기를 가장 먼저 정치적 의제화했고 이를 위해서 오래전부터 활동해온 정당은 녹색당이다. 하지만 이번 위성정당 혹은 정치연합정당 논쟁에 휘말려 잘못된 판단을 한다면, 자신들이 뽑아놓은 후보들이 기후위기를 경고하고 그린뉴딜에 대해서 호소할 기회를 제약받거나 아예 잃을지도 모른다. 높다란 봉쇄조항과 미래통합당의 꼼수 등으로 인해서 국회 진출의 가능성이 낮다 하더라도, 이번 총선에서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녹색당과 후보가 없다면 이는 한국 사회에 더 큰 불운이다.

그린피스는 최근 여론 조사를 하면서 유권자의 77.4%가 “기후위기 대응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한 후보나 정당에 투표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작년 9월에 각 정당에게 질의를 한 결과, 기후위기 비상선언 등의 3대 요구 조건에 모두 동의한 정당은 녹색당과 정의당뿐이었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자유한국당(지금의 미래통합당)에 비해서 낫지만, 민주당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여 어정쩡하고 모호한 답변을 했다. 비상행동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다시 정당들에게 질의를 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위성정당이든 선거연합정당 요구에 녹색당 그리고 정의당이 굴복한다면 기후국회를 원하는 유권자들은 표를 찍을 정당을 잃게 될 수 있다.

모든 선거연합이 부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법과 제도를 바꿔서 선거연합이 더 쉽게 될 수 있도록 하여, 양당 체제에서 반영되지 않은 유권자들의 민의가 더 잘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선거연합은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의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퇴행적인 미래통합당 반대 선거연합이 아니라, 기후위기 해결과 그린뉴딜을 위한 선거연합이어야 한다. 과거 정치에 얽매여 있는 시민사회 원로가 아니라 기후위기의 미래를 살아야 할 청소년들이 선거연합을 제안한다면, 마땅히 후자가 되지 않겠는가. 미래를 지향한다면 기후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를 위한 선거연합 방안을 제시할 수 없다면, 그냥 침묵하라.

/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 에정칼럼은 레디앙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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