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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20-03-23 12:55
이미 불은 번지고 있다, 호주와 쓰레기 산불 / 이태영 소유문제연구소 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6,228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경고들은 이미 충분하다. 호주 산불과 경기도 화성 재활용업체 화재를 연결하듯이, 이 경고들을 하나하나 연결하면 결국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변화는 불을 끄는 행위와 동시에 불이 더 이상 나지 않도록 땅을 갈아엎는 수준의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기후위기의 주범인 탄소기반산업에서 탈탄소산업으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그리고 대량폐기로 이어진 선형경제에서 버려지는 것 없이 활용되는 자원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지금 당장 고민하고 실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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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불은 번지고 있다, 호주와 쓰레기 산불 그리고 곳곳에서
[에정칼럼] 급한 불 끈다고 작은 불씨 퍼뜨리면 안돼

남한 면적의 산림을 태운 호주 산불

새해가 시작될 무렵 세계적으로 가장 화제가 된 뉴스는 호주 산불이었다. 지난 해 9월 호주 남동부 지방에서 발생한 산불은 해를 넘어 2020년 2월까지 계속되었다. 호주 전 지역 1100만 헥타르 이상의 산림이 불에 타 사라졌는데 이는 한국의 면적과 비슷한 크기라고 한다. 33명의 사람과 10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죽었다.

전문가들은 이 처참한 산불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하고 있다. 호주는 매년 더 더워지고 있다. 호주의 평균기온은 1910년 이후 섭씨 1도 올랐다. 지난해 12월에는 일평균 기온이 41.9도를 기록한 날도 있었으며, 낮 최고 기온이 49도에 이르는 등 말 그대로 ‘펄펄 끓는’ 날들이 이어진 것이다.

건조함 역시 산불 진화를 어렵게 한 요소였다. 100년 만에 가뭄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건조한 날씨는 산불이 번져가는 데 최적의 조건을 부여했다. 건조한 날씨가 이어질 경우 3월까지 산불이 진화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지만, 호주 산불은 2월 13일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호주 산불 모습

호주 산불 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도 결국 날씨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홍수 피해가 날 정도의 폭우가 쏟아지며 호주 동부에 비를 골고루 뿌려 결국 산불은 진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후변화와 산불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며 호주의 석탄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총리도 결국 들끓는 민심에 기후변화의 치명적인 영향을 인정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호주의 산불 소식은 유례없이 따뜻하고 건조했던 겨울을 보내던 한국의 시민들에게도 강력한 신호로 전해졌다.

쓰레기들이 타고 있던 한국의 겨울

호주 산불이 한창 화제가 되고 있을 무렵, 경기도 화성의 한 재활용업체에서도 큰 불이 났다. 설 연휴를 앞둔 1월 22일 2,500톤 규모의 플라스틱을 보관 중이던 재활용 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진화작업은 5일간 계속되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플라스틱에 붙은 불이 내뿜는 유해물질에 고스란히 노출된 인근 주민들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이미 공기 중에 배출된 화학물질들의 장기적인 영향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1월 경기도 화성시 한 폐기물 재활용 공장에서 불이 난 모습(경기도소방재난본부제공)

그런데 재활용업체 화재 문제는 생각보다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발생한 사안이다. 콘센트에 코드만 꽂으면 전기란 당연히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대도시의 일상이 철탑과 발전소로 삶이 파괴되는 장소의 일상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정해진 날짜에 분리수거한 폐기물을 버리기만 하면 일상의 경관에서 더 이상 그 쓰레기들을 마주할 리 없는 대도시의 시민들에게 경기도 화성의 재활용업체 화재가 와 닿을 리 없었을 뿐이다.

당장 지난 겨울 일어난 재활용업체 화재만도 여러 건이다. 지난 12월 28일 경기도 용인의 재활용업체 화재는 폐합성수지 40톤을 태웠다. 2월 14일 2,000톤의 폐기물을 보관 중이던 경북 경주의 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는 5일 이상 지속되며 역시 폐비닐과 폐합성수지를 태웠다. 충북 청주, 전북 정읍, 부상 기장, 경기 남양주 등 전국 각지에서 지난 겨울에만 여러 건의 크고 작은 화재들이 있었고, 가장 최근으론 지난 3월 13일 경북 성주의 한 재활용업체에서 가연성 폐합성수지 700톤에 화재가 발생해 진화에 애를 먹었다.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거나, 배터리가 터져 화재가 시작되었거나, 혹은 보험금을 노리고 처리가 어려워진 폐기물들을 일부러 태운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존재하는 경우가 있지만, 건조한 날씨와 이미 발생한 매립가스는 불이 번지는데 최적의 조건이었을 것이다.

시장에 맡겨진 폐기물 관리

한편, 폐기물 문제를 둘러싼 지역사회의 논란은 한두 가지도 아니고, 한두 해 일도 아니다. 지난 1월, 한 폐기물 업체의 화재가 5일간 지속되었던 경기도 화성에는 허가된 폐기물재활용업체만 280개를 넘는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준이다. 신도시 등의 개발로 최근 늘어난 인구가 많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폐기물 관련 사업장이 많이 있을 필요는 없다. 수도권 끄트머리에 위치한 화성시에 이렇게 재활용업체가 많이 들어선 이유는 이른바 여기가 ‘공장하기 좋은 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공장하기 좋은 땅에 최근 몇 년 전부터 재활용 업체가 우후죽순 들어설 수 있었던 건, 폐기물 관리의 책무가 분명 지방자치단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민간에 그 관리를 맡겨왔던 관행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는 폐기물 관리에 소홀했고, 시장에 맡겨진 폐기물 관리는 공공성보다는 수익성 중심으로 ‘폐기물 산업’을 팽창시켰다. 그 결과가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가 목도했던 여러 장면들이다. 2018년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멈추면서 그 연쇄효과로 한국 아파트단지 플라스틱 폐기물의 수거가 중단된 적이 있었다. 쓰레기는 잘 분리수거해서 정해진 날짜와 장소에 ‘배출’하면 잘 처리된다는 대도시 시민들의 상식에 질문을 던진 사건이었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의 쓰레기산이 발견되었다. (어쩌면 이미 존재했던 그것들을 서울의 시민들이 확인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폐기물 처리업체의 사업 중단으로 사업장 내에 방치되어 있는 쓰레기의 규모는 전국적으로 100만톤 이상 될 것이라 예측된다. 한 외신은 2019년 3월, 의성 쓰레기산 문제를 보도하며 “한국의 플라스틱 문제는 문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South Korea’s plastic problem is a literal trash fire)”라는 제목을 쓰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쓰레기산 문제를 전국적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도 ‘산불’ 이었다. 2018년 12월 불꽃이 피어오르며 시작되었던 의성 쓰레기산의 화재가 한달 이상 지속되며 이 심각한 문제를 우리는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시 등장한 카페의 일회용컵

호주 산불의 진화가 끝날 무렵, 경기도 화성의 한 재활용업체에서 2,500톤 규모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다 탈 무렵, 또 어딘가 쓰레기 산에서는 작은 불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던 그 시기, 세계는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이라는 새로운 위기를 직면했다. 밀집된 일상과 전지구를 연결시킨 이동성은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과 확산에 그 속도를 보탰다. 변화된 기후로 앞으로 이와 같은 감염병의 등장이 더 자주 있을 것이라는 과학적 예측도 확인되고 있으니 기후위기로 말미암은 재난은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 간 가장 큰 환경 이슈였던 미세먼지와 플라스틱 대란, 그리고 호주 산불에 이어 최근의 감염병 확산까지, 각각 존재했던 신호들을 이으면 우리는 이미 기후 재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그래서 더 우려하는 마음으로 주목하게 되는 코로나19 국면의 한 장면이 있다. 정부는 2018년 8월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가 시작되고 1년 반이 채 지나기 전에 감염병 확산에 대한 우려로 이 시기 한시적으로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허용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환경부가 발표한 2022년까지 1회용품 사용을 35% 이상 줄이겠다는 목표에도 의문을 던지게 되는 방침이다. 실제로 최근 카페에 가면 반납대에 높게 쌓인 일회용컵 더미를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다회용컵의 세척과 소독을 강화하고, 개인컵 사용을 장려하는 대책을 추진할 수도 있었을 텐데, 급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일회용품 사용을 허용하는 방식의 대책을 발표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그 실효성과 장기적 영향에 대해 검토하고 하루 빨리 새로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뿐 아니다. 코로나 19의 장기화가 영향을 끼친 시민들의 새로운 일상 중에는 ‘온라인 주문과 배달’을 통해 소비하는 패턴이 절대적으로 급증한 부분도 있다. 배달음식과 온라인 주문 상품이 얼마나 많은 일회용 포장재에 쌓여 집 앞에 도착하는지 모르는 바 아니지 않나.

지금 이렇게 배출된 쓰레기들은 반드시 우리 일상을 돌아올 것이다. 어딘가의 화재로, 어딘가의 악취로, 커다란 쓰레기 산으로 돌아올 것이고, 2년 전 플라스틱 대란이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으니 그 쓰레기산이 이제 대도시의 일상으로 들어오는 것도 시간문제다. 급한 불, 물론 꺼야 한다. 그런데 급한 불 끄겠다고 자꾸 작은 불씨들을 주변으로 퍼트려 놓고, 그 작은 불씨가 큰 불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이제 분명 한계에 도달했다.

기존의 것들을 모두 의심하자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경고들은 이미 충분하다. 호주 산불과 경기도 화성 재활용업체 화재를 연결하듯이, 이 경고들을 하나하나 연결하면 결국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변화는 불을 끄는 행위와 동시에 불이 더 이상 나지 않도록 땅을 갈아엎는 수준의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지금 갈아엎지 않으면, 갈아엎기를 시작할 수 있는 불이 나지 않은 작은 땅을 찾기조차 어려운 지경에 이를 것이다. 기후위기의 주범인 탄소기반산업에서 탈탄소산업으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그리고 대량폐기로 이어진 선형경제에서 버려지는 것 없이 활용되는 자원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지금 당장 고민하고 실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감염병이 더 치명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이들이 도저히 쉴 수 없는 저임금 노동자라는 점은 이번에 정확히 경험했다. 지금 상태라면 처치 불가능한 여러 폐기물이 먼저 쌓이게 될 장소도 당연히 대도시가 아닌 농촌, 그리고 지방 소도시들일 것이다. 호주 산불은 도망칠 수 없는 존재들의 삶을 가장 먼저 파괴했다. 무엇이 됐든 지금 이후로 발생하는 모든 재난은 우리 세계의 가장 소외되고 약한 고리들을 공격할 것이 틀림없다. 이는 속도를 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고, 지금 추진해야 할 변화가 가장 강화해야 할 영역을 가리키는 준거점이기도 하다.

이제 절박하게 각각의 경고들을 연결하자. 그래서 통째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자. 일단 이 불을 끄면 된다고 유혹하며 다른 불씨를 살리고 있을 기존의 것들을 모두 의심하자.

/ 이태영 소유문제연구소 연구원

* 에정칼럼은 레디앙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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