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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20-05-25 16:21
'뉴노멀'에 올림픽의 자리는 없다 / 이태영 소유문제연구소 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5,607  
우리는 코로나 이후 서로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감동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복구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질문을 마주한다. 확실한 건 올림픽과 같은 형태와 규모의 행사는 그 질문의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가 주목한 방역 선진국 한국의 다음 행보는 2032년 올림픽 유치의 포기를 전격적으로 발표하는 것이었으면 한다. 그뿐 아니라, 코로나 이후 시대 메가스포츠 이벤트 자체에 대해 성찰하게끔 국제사회의 토론을 제안하였으면 한다. 이 쯤 되어야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의 위상에 걸맞은 대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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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에 올림픽의 자리는 없다
[에정칼럼] AC시대, 메가스포츠 이벤트 성찰 필요

얼마 전 방문한 서울시청 서소문2청사에는 눈에 띄는 부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올릭픽추진과’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고 올해 초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추진이 국가 차원에서 공식화된 ‘2032년 서울·평양 하계올림픽’의 유치와 추진을 지원하고 실행하는 부서이다. 2032년 서울· 평양 올림픽은 2018년 지방선거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굵직한 정치적 이벤트를 거쳐 주식시장에서 이른바 ‘통일주’라 하여 건설, 철강 산업 관련 주식이 대박을 치던 시점에 평화와 성장의 상징으로 대통령과 서울시장을 포함한 유력 정치인들이 그 언급을 본격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올 1월 21일 국무회의 모습(사진=청와대)

아직 반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20년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지금은 이미 너무 과거의 이야기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걱정했던 호주 산불의 공식적인 종료일이 2월 13일이었다. 5개월 이상 한국 면적의 산림이 불 타 버렸고, 급격한 기후변화가 그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세계는 코로나 19 감염병 확산이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 놓이게 된다.

이 위기는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종류의 빠르고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왔다. 학교와 공공시설은 문을 닫았고, 모든 행사는 취소되었다. 소비는 줄었고, 자영업은 위기에 내몰렸다. 당연히 유례없는 ‘일시 정지’다. 특히, 몇몇 종교는 연중 가장 큰 의례를 진행하지 않거나 집합하여 하는 행사를 진행하지 않았는데, 이는 종교사적으로도 기록될 만한 사건이라 한다. 이에 당장 2020년 개최가 예정되어 있던 도쿄 올림픽이 결국엔 연내 개최를 포기하게 되고, 아베 정권은 올림픽 개최라는 변수로 감염병 확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치명적인 정치적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국무회의가 올림픽 유치 및 추진계획안을 의결한 때가 올 해 1월이다. 올림픽 유치와 추진을 의결한 국무회의와 정치적 도구로서 평화와 성장의 상징인 올림픽을 활용한 일들이 모두 BC(Before Corona) 시대의 일이라고 겸허히 받아들여보도록 하자. 그런데 코로나 이슈가 시민들의 일상에 가장 중요한 이슈로 존재했던 이번 21대 총선 시기에도 서울 평양 올림픽 공동개최는 여전히 집권여당의 주요 공약 가운데 있었다. 그뿐 아니다. 물론 미흡한 준비와 부족한 실무력,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소통부재 덕에 결국 무산된 2030년 아시안게임 충청권 유치 역시 민주당의 주요 총선 공약 중 하나였다.

왜 일본 정부가 도쿄 올림픽을 쉽게 포기하는 결정을 못 내렸으며, 그 결정이 일본 사회와 시민들의 일상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그 맥락을 조금이라도 살핀다면 AC(After Corona) 시대에 올림픽을 유치하고 그 정도 규모의 메가스포츠 이벤트를 중심으로 공공재정과 사회경제적 자원을 편성한다는 것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올림픽 때문에 감염병 확산에 대한 초기 대응에 철저히 실패한 일본 정부의 실책이 곧 앞으로 진행될 모든 올림픽의 리스크적 요소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인지 부조화의 이유로 의심되는 것 중 하나는 그 시점이다. 아시안게임을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던 2030년, 그리고 서울 평양 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사업을 진행 중인 2032년은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이다. 아마도 이 10년이라는 시간이 근거 없는 낙관을 강화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2030년은 결코 머나먼 미래가 아니다.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급격한 기후변화가 지구를 공유해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멸종시킬 위기는 진행 중인 상태였고, 코로나는 이러한 위기 상황을 우리 일상에 고스란히 전해 준 강력한 신호일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10년은 화석 연료 중심의 산업 기반과 사회경제적 구조, 도시의 일상 전체를 통째로 전환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간축이지, 근거 없는 낙관을 기반으로 산업사회를 살아 온 인류의 일상을 유지해서는 안 되는 10년이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2018년 채택한 보고서에서 지구 온난화의 규모를 1.5도로 제한해야 하며 그것이 가능한 경로로서 ‘2030년까지 전 지구 인위적 CO2 순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 감소, 2050년경에는 net zero(순배출제로)에 도달’을 제시했다. 멸종에 저항하기 위한 최소한의 목표인 셈이다.

세계의 여러 국가들은 IPCC 보고서가 제시한 경로를 중장기 정책 결정의 가장 중요한 준거점으로 삼아 미래 전략을 수정하거나 재구성하고 있다. 또한 보고서는 이러한 경로를 준수하기 위해 채택하게 될 전환의 규모와 속도가 유례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속도 면에서는 그러한 경험이 있을 수 있지만(세계대전 등 전시상황이 그 대표적인 예), 규모 면에서는 분명 유례없는 변화를 수반하게 될 것이라 보았다. 2010년 대비 CO2 순 배출량이 45%로 감소한 2030년의 일상은 모든 면에서 오늘과 다를 것이라는 예측이다. 말 그대로 뉴노멀(New noaml)이 등장해야 하는 시점이고, 코로나는 그 뉴노멀의 등장을 강력히 견인했고, 앞으로 10년은 무엇이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인지 치열하게 논쟁하고 그 원칙을 합의해가는 시점이 될 것이다.

새로운 기준, 뉴노멀은 누군가에 의해 정리돼서 암기과목처럼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 의해 구성되고 규범화되는 것이라 볼 때, 먼저 그 기준의 원칙에 대해 합의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당연히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이 그 원칙이 될 것이고, 전환의 과정이 약한 이들을 가장 먼저 배제하지 않는 ‘정의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 역시 중요한 원칙이 될 것이다.

기후위기와 같은 재난이 사회경제적인 약자와 차별과 혐오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소수자에게 가장 먼저 치명적인 위협으로 작동한다는 것(그리고 별다른 조치와 사회적 합의 없이는 앞으로도 그렇게 작동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2020년 오늘도 정확히 경험하고 있다. 게다가 불평등과 기후위기의 원인이 모두 화석연료 중심의 성찰 없는 성장주의라는 것을 인식할 때 기후변화 대응이 중요하다는 것과 그 대응이 정의로운 전환의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은 충돌할 수 없는 명제이다. 그렇다면 뉴노멀로 재구성 된 2030년 변화된 일상의 자리에 올림픽이 존재할 수 있을까? 단호히 말할 수 있는데, 앞서 이야기 한 최소한의 원칙으로 비추어보더라도 뉴노멀 시대에 올림픽의 자리는 있을 수 없다.

당장 가까운 과거에 한국에서 진행된 두 번의 메가스포츠 이벤트를 돌이켜보자. 14조원 이상이 쓰인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난 지 2년이 지난 시점에 평창올림픽을 위해 구축한 인프라의 관리비용에 대한 문제제기와 올림픽 이후 황망해진 지역사회에 대한 언론보도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미 평창동계올림픽의 기억은 우리와 미래세대에게 부과된 실질적 부담이 되어버렸다. 2014년 인천에서 진행된 아시안게임은 어떤가. 대회 후 매년 100억원 규모의 운영적자가 인천시를 짓누르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부담은 당연히 우리 시민들의 몫이 되었다. 최근 몇 개월 우리가 공통으로 경험했듯이 재난이 일상화 된 시기에 국가의 역할은 적극적인 분배정치에 있다. 국가 규모의 이벤트에 시민들의 세금이 쓰이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에 공공재정이 정의롭게 분배되어야 한다.

또한 1988년 서울올림픽이 쫓아낸 어떤 이들의 삶, 배제된 시민들의 삶을 추적해보면 올림픽이라는 행사가 우리 사회의 상호신뢰를 구축하고 적대와 편견을 제거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라 쉽게 생각할 수 없다. ‘평화’가 더 이상 올림픽의 명분이 될 수 없다는 증언인 셈이다. 올림픽 시설 개발을 위해 파괴되는 자연, 그리고 각종 SOC 개발을 빌미 삼아 강화되는 건설, 토건 사업에 대한 우려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얼마 전 만난 마을활동가들과 코로나 이후 행정이 더 이상 정량적 성과지표로 행사 참가자 수를 제시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정량적 지표 대신 정성적 지표를 개발하자고 노력해왔던 것들이 코로나 변수 덕에 이뤄지게 될 것이라 이야기했다. 모두가 이런 변화를 예측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른바 ‘언택트(Untact)’가 소비와 일상 전반에 불가피한 트랜드로 자리 잡게 되고 있는 시점에 우리는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소통하며, 민주적으로 협력할 것인지 그 방법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모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서로의 연결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는다면, 시장과 정부는 시민의 일상을 철저히 관리(Management)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코로나 이후 서로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감동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복구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질문을 마주한다. 확실한 건 올림픽과 같은 형태와 규모의 행사는 그 질문의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고, 우리는 이 확실한 오답을 최대한 빨리 질문 선상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다음 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모든 영역에서 마주한 비슷한 질문에서 올림픽과 결을 같이 하는 오답들을 재빨리 배제하는 단계로 넘어가면 좋겠다.

세계가 주목한 방역 선진국 한국의 다음 행보는 2032년 올림픽 유치의 포기를 전격적으로 발표하는 것이었으면 한다. 그뿐 아니라, 코로나 이후 시대 메가스포츠 이벤트 자체에 대해 성찰하게끔 국제사회의 토론을 제안하였으면 한다. 이 쯤 되어야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의 위상에 걸맞은 대응이다.

/이태영 소유문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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