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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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20-06-29 01:45
그린뉴딜에 정의로운 전환은 없다 /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5,475  
그린뉴딜보다 정의로운 전환이 우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내부와 외부에서 국가 모델 자체를 바꾸는 전환기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은 현실의 원칙이 아니라 희망의 원칙이어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의 관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의 관점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판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린뉴딜의 마술적 리얼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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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뉴딜에 정의로운 전환은 없다
[에정칼럼] 과거의 녹색성장과 현재

2009년, 에너지정치센터 산하 기관으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설립됐다. 연구소 정식 명칭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너무 길기도 하지만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다소 생소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정의로운 전환 개념이 전문에 실린 파리협정이 체결된 2015년 연말부터 느리지만 조금씩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시민사회와 학계 일부에서 통용되는 대안 담론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에너지 전환과 기후위기 대응을 다루는 몇몇 정부 문서에서, 적어도 표현상으로는 정의로운 전환 혹은 이와 유사한 용어가 늘고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녹색성장은 비극, 그린뉴딜은 희극?

대표적으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 그렇다. 제3차 녹색성장 5개년 계획(2019~2023)은 정의로운 전환의 의미를 일부 수용한 최초의 국가 법정계획이다. 별 효력 없는 문서상의 계획에 불과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에 탑재해야 할 주요 원칙이자 전략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해외 그린뉴딜 동향을 소개하고 한국 도시재생 뉴딜사업과 어촌뉴딜 300사업을 녹색성장계획의 범위에 포함시킨 것 역시 약 1년 전의 일이다.

녹색성장이든 그린뉴딜이든, 이명박 정부의 비극이 문재인 정부에서 희극으로 끝날 것이라는 법은 없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는 2020년도 제3회 추경예산안 분석을 통해 그린뉴딜을 포함한 한국판 뉴딜 사업에 “상당수가 계획이 부실하거나 효과가 불확실하다”는 평가를 내놨다는 내용이 보도된 바 있다. 그린뉴딜 자체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진영에서도 이런 지적에 공감하고 있다. 예외가 있길 기대하지만, 앞다퉈 그린뉴딜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많은 지방정부 역시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것 같다. 마치 10년 전 녹색성장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에너지정치센터가 작성한 “녹색성장 관련 예산 실태 분석 및 대안” 보고서를 보면, 당시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녹색성장정책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전국공무원노동조합. <아깝다 예산, 바꾸자 제도>. 2011. 참조). 센터는 광역 지자체들이 수립한 지방녹색성장추진계획에 대해 지방정부의 주도적 역할 미흡과 준비 부족, 정책조율과 보고체계 부재, 불분명한 녹색사업 추진과 재원조달 문제 등을 지적했다. 더 큰 비극은 비극의 반복일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의 다양성

유럽과 북미에서 정의로운 전환이 법제도로 보장되고 있는 흐름에서 새로운 언어와 용법으로 다양한 내용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공개된 <재생 경제로의 정의로운 전환>(United Frontline Table. <Just Transition to a Regenerative Economy>. 2020.6)이 대표적인 사례이다(참고로 Climate Justice Alliance, Indigenous Environmental Network, It Takes Roots, Labor Network for Sustainability, New Economy Coalition, Trade Unions for Energy Democracy, Just Community Energy Transition Project 등 북미를 대표하는 다양한 조직들이 참여했다).

보고서는 채굴・착취 경제를 끝내기 위해 정의로운 전환을 통해 재생 경재를 지향하는데, 그린뉴딜은 기회 요소만이 아니라 위험 요소도 존재한다고 인식한다. 따라서 정의로운 전환은 넓은 의미로는 그린뉴딜을 관통하는 원칙이어야 하며, 좁은 의미에서는 노동과 지역사회의 맞춤형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유럽의 전환정책(transition policy) 논의는 정의로운 전환을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틀을 제공한다. 보상(피해 및 손실 금전적 보상), 특례(적용 유예 및 예외 조치), 구조조정 적응지원(지원과 보조), 대안모델 전환지원(지원과 보조)이라는 다차원적 구상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자유시장 경제모델이 아니라 조정시장 경제모델에서 전환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하기 수월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정의로운 전환 기금(Just Transition Fund)이나 정의로운 전환 지구(Just Transition Zone)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정치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용이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단체들(Next System Project・Oil Change International)이 제안하는 것처럼, 독립적인 정의로운 전환 기구(Just Transition Agency) 설립, 그리고 이를 통한 화석연료 및 유관 산업의 국유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정의 없는 전환은 구조조정

정의롭지 못한 전환(unjust transition)은 구조조정으로 끝나게 된다. 독일 루르 지역(석탄 광산과 철강 산업), 네덜란드 림부르흐 지역(석탄 광산), 영국 뉴캐슬 지역(철강 산업)과 달리 영국 웨일스 밸리스 지역(석탄 광산)과 미국 애팔래치아 지역(석탄 광산), 호주 석탄발전소 폐쇄 사례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5월 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포스트 코로나 산업전략”으로 산업구조의 친환경 전환, 기업활력 촉진 및 사업재편 활성화 등을 제안했다. 그리고 6월 3일에는 한국판 뉴딜(그린・디지털 뉴딜)에 저탄소 녹색 산단 구축, 재생에너지 및 수소 확산기반 마련과 에너지 디지털화 등 담았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기업활력법은 산업전환의 최소한의 법제도이고, 3차 추가경정예산안은 에너지전환의 양적 확대 정책사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기업활력법이 정의로운 전환을 부분적으로라도 보장할 수 있을지, 오히려 구조조정을 정당화하는 수단에 불과할지는 결코 장담할 수 없다.

그린뉴딜 역시 계획 부실, 실체 불분명, 효과 불확실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뉴딜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환경부를 비롯한 범정부 협의체가 추진하고 있는 “장기 저탄소 발전 전략”과 그린뉴딜이 어떻게 연계되는지, 그 누구도 확인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확인 불가능한 영역이라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종합하면, 그린뉴딜보다 정의로운 전환이 우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내부와 외부에서 국가 모델 자체를 바꾸는 전환기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은 현실의 원칙이 아니라 희망의 원칙이어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의 관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의 관점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판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린뉴딜의 마술적 리얼리즘이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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