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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20-07-13 13:46
그린 뉴딜이 잊고 있는 두물머리의 구호 / 김현우 연구기획위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4,918  
그린 뉴딜이 부족하나마 경제와 사회 대전환의 주춧돌이 되고 기후위기 대응의 물꼬를 트는 정책이 되려면 두물머리의 그 구호부터 상기해야 한다. 그때 두물머리에 울려 퍼진 구호가 바로 "공사 말고 농사, 발전 말고 밭전"이었다. 그저 그곳 유기농민들만을 위한 구호가 아니라, 생태와 문명의 위기에 공감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든 구호였다고 기억한다. 지금의 코로나 위기와 기후 위기의 시대에 국가 비전으로 삼을만한 구호다. 녹색성장 사업이 국토와 경제를 망가뜨린 바로 그곳부터 복기와 회복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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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말고 농사, 발전 말고 밭전"
[초록發光] 그린 뉴딜이 잊고 있는 두물머리의 구호

지난 주, 기후위기비상행동의 지역 기후행동학교 강의를 위해 경상북도 상주를 찾았다. 중앙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의지가 박약하고 행동도 뒤처진 탓에 국제적으로 '기후악당 국가'라는 비난을 듣고 있지만, 곳곳에서 시민과 농민 활동가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실천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 함께 한 이들은 축산농가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과 지역 먹거리 활성화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상주 지역에서 기후행동 모임을 이어가기로 하며 자리를 정리했다.

상주의 인심과 풍성함으로 느끼며 기후행동이 가지를 뻗어가는 모습을 보는 즐겁고 보람된 시간이었지만 마음이 무거워지는 풍경도 있었다. 강의 전 비는 시간을 이용해서 오랜만에 상주 경천대를 돌아봤다. 휘돌아가는 강굽이를 따라 펼쳐져 있던 금빛 모래와 고즈넉이 흐르던 강의 물결은 찾아보기 어려워진지 오래인 것 같았다. 딱 10년 전, 4대강 사업 초기에 모니터링을 위해 방문했던 그때 그곳도 벌써 중장비의 삽날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이제 탁한 물이 상주보에 막혀 벙벙하게 차 올라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관광객들은 경천대 절벽에서 강물 아래를 내려다보며 역시 낙동강의 비경이라 꼽힐만하다고 감탄했고, 우리를 실어주신 택시기사는 4대강 사업 덕분에 가뭄 없이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매년 녹조 사태를 겪으면서도 그런 강의 모습들이 '정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환경단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4대강의 재자연화는 더욱 어려워진다고 우려해왔다. 이러한 모습의 4대강이 국민에게 당연한 이미지로 굳어지고, 관료들이 관성화하고, 바뀐 4대강 환경에 맞추어 농업 방식을 바꾼 주변 농민들이 많아질수록, 늘어나는 생태적 부작용과 관리 비용 낭비에도 불구하고 재자연화 작업이 지연될 것이라는 염려였다. 그 염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환경부, 국토부 장관과 공무원들은 코앞에 있는 세종보 구간의 변화도 쳐다보지 않는 것일까? 일부 보를 개방한 구간에서 모래톱이 되살아나고, 강물이 맑아지고, 물고기들이 돌아오는 모습이 확연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라거나 마지막 농민까지도 설득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이해하기 어려운 답답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원회와 국가물관리위원회는 금강과 영산강 3개보의 전체 및 부분 해체, 2개보 상시 개방 등을 작년 12월까지 결정하기로 했고, 한강과 낙동강의 수문을 개방하여 모니터링한 후 11개 보 처리 방안 방침도 제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금강과 영산강 보 처리 결정은 미루어졌고 낙동강과 한강은 언제 제대로 논의를 할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이명박 정부의 사업에 손을 댈 경우 초래될 정쟁이 두려운 것일까? 그게 두려워서 4대강을 방치한다면 그린 뉴딜은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린 뉴딜이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다른 게 아니거나 연장선상에 있음을 자인하는 모습일까? 

얄궂게도, 최근 발표되는 정부의 그린 뉴딜, 즉 코로나 대응 한국판 뉴딜의 한 축으로 포함된 그린 뉴딜은 의혹어린 시선을 받고 있다. 그린 뉴딜의 불명료함을 지적하는 기자의 질문에 한 청와대 관계자는, 그린 뉴딜은 "녹색성장을 갈아엎는 게 아니라 지금 시대에 강화한, 업그레이드 버전"이며 "대규모 토목공사와는 다르다"고 답변했다. 앞으로 그린 뉴딜의 사업 내용과 시행 방안이 일정하게 보완은 되겠지만, 큰 틀에서는 과거 녹색성장을 뛰어넘거나 방향을 크게 바꾸는 일은 없으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과거 녹색성장의 대표적 토목공사인 4대강 사업을 달리 손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나의 이런 이해와 해석이 틀렸다면 정부가 말과 행동으로 그렇지 않음을 증명할 일이다.

경천대를 나오면서 떠올랐던 또 하나의 풍경은 8년 전 한강 두물머리다. 그곳 팔당 유기농민들은 스스로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4대강 사업에 대한 마지막 저항의 중심이 되었다. 강을 지키고 수도권에 건강한 먹거리를 공급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했고 그래서 칭찬받았던 농민들은 갑자기 강물을 오염시키는 주범이 되었고, 자전거길과 수변공원을 만들어야 한다며 퇴거를 통고받았다. 4대강 토건사업에 반대했던, 생명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이들이 두물머리로 모여들어 함께 맞서고자 했지만 2012년 8월 14일 4대강 추진본부와 맺은 합의를 끝으로 아쉽게도 투쟁은 종료되었다. 그 후 생태체험학습장 조성이라는 약속은 잊혀져갔고 끝까지 투쟁했던 4가구의 농민들은 언제 두물머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때 두물머리에 울려 퍼진 구호가 바로 "공사 말고 농사, 발전 말고 밭전"이었다. 그저 그곳 유기농민들만을 위한 구호가 아니라, 생태와 문명의 위기에 공감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든 구호였다고 기억한다. 지금의 코로나 위기와 기후 위기의 시대에 국가 비전으로 삼을만한 구호다. 그리고 지금의 정신 사나운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정책의 사업과 수치들이 잊고 있는, 상상하지 못하는 문구이기도 할 것이다. 그린 뉴딜이 부족하나마 경제와 사회 대전환의 주춧돌이 되고 기후위기 대응의 물꼬를 트는 정책이 되려면 두물머리의 그 구호부터 상기해야 한다. 녹색성장 사업이 국토와 경제를 망가뜨린 바로 그곳부터 복기와 회복을 시작해야 한다. 4대강 보 철거와 재자연화라는 꼭 필요한, 그리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는 토목공사 또한 더 미뤄서는 안 된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 초록발광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지난 2011년, 정부의 강제수용에 맞선 두물머리 인근 농민들이 비닐하우스 위로 '농업사수'라고 쓴 깃발을 걸어둔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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