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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20-07-14 13:24
'그린(녹색)'과 '뉴딜' 눈으로 바라보기 / 김형수 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4,918  
그린뉴딜에서 ‘그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류의 생존 조건인 1.5도 이내의 지구 온도 상승을 위해선, 2050년까지 화석연료로 인한 탄소배출을 제로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뉴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뉴딜은 새로운 사회 협상, 즉 기존의 체제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던 노동자, 농민, 장애인 등의 좋은 삶을 보장하고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그린뉴딜로 현재의 생태적, 사회경제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성장과 팽창을 전제한 각종 정책과 운동과제를 재검토하고, 정치경제의 불평등 구조를 혁파하기 위한 기존의 해묵은 사회적 과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기반 위에서 녹색정책들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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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뉴딜(Green New Deal), '그린(녹색)'과 '뉴딜' 눈으로 바라보기
[에정칼럼] 성장주의와 불평등 구조 고민 동반되어야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위축에 대한 대응으로 그린뉴딜이 각광을 받고 있다. 코로나19와 분리할 수 없는 기후위기가 시시각각 충격을 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탄소배출을 줄이면서 경제를 활성화할 방안으로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을 골자로 하는 한국형 뉴딜을 추진하려고 한다. 정부는 대대적인 한국형 뉴딜을 조만간 다시 발표할 예정이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코로나19의 충격에서 회복하기 위한 녹색 회복 전략으로 앞 다퉈 그린뉴딜 정책을 추진하는 국면에서 정부의 뉴딜을 어떤 관점에서 봐야할 것인가?


그린뉴딜에서 ‘그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류의 생존 조건인 1.5도 이내의 지구 온도 상승을 위해선, 2050년까지 화석연료로 인한 탄소배출을 제로화해야 한다. 탄소배출을 제로화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가 요구되고 있지만 불행히도 완벽한 답이 될 수 없다. 다미엥 귀로 등이 작성한 ‘100% 재생에너지 시나리오를 위한 광물과 금속 필요량’에 따르면, 2050년 최종에너지 소비가 2015년보다 26% 절감된 수준이라고 할 때, 미래의 기술과 재활용 혁신이 일어나더라도 전기저장장치의 핵심 자원인 코발트와 리튬의 수요량은 누적 매장량의 100%를 초과한다고 경고한다.

전력생산이 가변적인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경우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전기저장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100% 재생에너지 체제가 낙관적 미래만을 담보하지 않는다. 결국 기후위기 시대의 ‘그린’은 화석연료뿐 아니라 지구 자원 소비의 총량을 줄이는데 있다. 따라서 ‘그린’은 에너지와 자원 소비의 확대 및 팽창을 결과하는 성장주의와의 결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뉴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뉴딜은 새로운 사회 협상, 즉 기존의 체제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던 노동자, 농민, 장애인 등의 좋은 삶을 보장하고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의미한다. ‘뉴딜’을 처음 시작한 미국의 1930년대 2차 뉴딜은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는 공공사업진흥국(Works Progress Administration)의 설치, 기업이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국가노동관계위원회 도입, 연방정부가 장애인과 어린이들을 돌보도록 규정한 사회보장법 도입 등을 골자로 한다. 우리가 수용 및 응용하고자 하는 ‘뉴딜’ 정책은 본래 노동자와 농민 등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과 안정망을 촘촘히 하는 정책들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대대적인 탄소 저감 정책을 바탕으로 인간과 생태계의 관계를 조정하고, 기존의 불평등한 정치경제의 권력구조를 재편하는 것이 곧 그린뉴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이 핵심이 제대로 공유되지 못한다면 그린뉴딜은 탄소배출을 줄이면서 경제성장을 한다는 모순된 목표로 움직이는 탈동조화 전략, 녹색성장으로 귀결된다. 인간이 사용하는 자원과 에너지의 총량을 감소시키려는 노력 없이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와 이로 인한 사회적 고통을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각종 경제 활성화 정책은 얼마간 녹색의 옷을 걸치고 있지만, 인간의 의한 생태계 파괴를 지속하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주요 자원 채굴로 인한 환경부정의 사례는 가난한 자원수출국의 고착화된 현실이 되었다. 국내의 경우 현재의 에너지 소비 규모를 전제한 재생에너지 양적 팽창 정책은 빠른 속도로 논밭과 바다 등 농어산촌의 경관과 환경을 빠르게 훼손하고 있다. 성장주의와 팽창주의의 관성을 이겨내지 못하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의 재편이란 ‘그린’의 본질이 상실될 수 있다.

한편, 기존의 정치경제의 권력구조를 재편한다는 핵심이 상실된다면, ‘그린’은 ‘뉴딜’과도 충돌할 수 있다. 식량자급에 필수인 농지의 경우 여전히 각종 개발사업에 의해 사라져가고 있지만, 태양광 발전 또한 농지감소에 큰 몫을 차지해가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농가 및 농촌 소득 증대 방편으로 제시되지만, 이는 농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불평등한 현실을 가리기도 한다.

건물 에너지 효율화는 탄소감축의 필수다. 하지만 건물 에너지 효율화로 인해 발생할 부동산 및 건물 지대가치 상승은 상가 및 주거세입자에게는 또 다른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세입자 보호, 주거공공성이 뒤 따르지 않는 건물에너지 효율화는 녹색 정책의 원주민 축출(저탄소 젠트리피케이션)로 이어질 위험도 높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쉬운 해고가 뒤따른다. 고용보장, 일자리나누기, 노동시간단축 등 고용 안정을 바탕으로 한 고용체계 개편이 없다면, 철강, 시멘트 등 탄소다배출 산업 축소의 충격은 고스란히 노동자의 몫이 된다. ‘그린’을 추진하면서,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이 강화된다면 그것은 ‘뉴딜’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그린뉴딜로 현재의 생태적, 사회경제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성장과 팽창을 전제한 각종 정책과 운동과제를 재검토하고, 정치경제의 불평등 구조를 혁파하기 위한 기존의 해묵은 사회적 과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기반 위에서 녹색정책들을 추구해야 한다. 각종 정부 정책과 계획이 성장과 팽창주의적 전제와 계산법에 근거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경제활성화를 위한 녹색정책의 속도보다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의 속도가 현저히 늦진 않은지 따져봐야 한다. 가령 녹색 일자리 창출은 이야기하지만 일자리의 조건에 대한 개선 없는 정책은 아닌지, 건물에너지 효율화를 이야기하지만 세입자를 보호하는 정책엔 침묵하진 않는지, 광역도시의 에너지 자급률이 낮은 상태에서 농촌의 재생에너지 확대만을 이야기 하지 않은지 촘촘히 살펴야 한다. 궁극적으로 여전히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 소비를 전제한 생산과 노동 정책의 관성이 유지되지 않는지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김형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에정칼럼은 레디앙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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