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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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20-08-04 15:07
문 정부 그린뉴딜에 정의로운 전환은 없다 / 한재각 소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4,861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은 단지 배출제로와 같은 목표 설정이 부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의로운 전환과 같은 중요한 수단을 채택하고 있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그린뉴딜은 기업들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과(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린뉴딜 다시쓰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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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부 그린뉴딜에 정의로운 전환은 없다
[초록發光] '구체안 부재'만이 그린뉴딜 문제가 아니다

지난 7월 14일 정부가 발표한 그린뉴딜 계획에는 무슨 뜻인지 알쏭달쏭한 단어 하나가 있다. "공정전환"이 그것이다. 뭔가 싶어, 내용을 살펴보니, "석탄발전 등 사업 축소가 예상되는 위기 지역 대상 신재생에너지 업종전환 지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지원되는 업종은 그린 모빌리티, 신생에너지 디지털 관리, 해상풍력 실시 플랫폼 등으로 제시되어 있다.

언뜻 생각해도 필요한 일처럼 보인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해서 석탄발전소를 폐쇄하면 해당 지역 경제에 충격이 예상되니, 이를 대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읽힌다. 같은 문서의 다른 곳에 '공정한 전환'이라는 말을 비슷한 의미로 쓰고 있는 것을 보니, '공정전환'은 이 용어를 줄여서 쓴 것으로 보인다. 공정전환은 작업 과정(工程)의 전환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해한 내가 문제일까 싶지만.

생소하게 보이는 '공정한 전환'은 'Just transition'를 번역한 것인데, 사실 불공정한 번역어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사회운동은 이 개념을 선도적으로 소개하면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번역어를 오랫동안 사용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전환 개념의 역사는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되었다. 미국 화학산업 노동자이자 '작업장의 레이첼 카슨'이라고 불리던 전설적인 노동운동가, 故 토니 마조치가 제안했다. 독성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공장의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깨끗한 산업으로 전직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요구한 게 시작이었다. 이런 제안이 1990년대 캐나다 노총을 거쳐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노동운동의 전략으로 발전하고, 2000년대에 국제노총(ITUC)이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 노동운동의 전략으로 채택하였다. 

즉, 이 개념은 노동자, 그리고 지역 공동체에 초점을 맞출 뿐만 아니라, 그들이 주체가 되어 지속가능한 전환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다(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만 아니라, 녹색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입고 비용을 감당해야 할 모든 부문과 계층에 적용되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국제노총 등의 오랜 요구로 2015년 파리협정의 전문에 이 용어가 들어가게 되었다. 

한국 정부는 파리협정에서 이 용어를 발견하고서야 주목하게 되었다. 지난 2019년 5월에 수립된 제3차 녹색성장 5개년(2019-2023)에 '정의로운 전환'이 언급되면서, 정부 문서에 처음으로 이 개념이 등장하였다. 이를 이해하고 있던 일부 녹색성장위원들이 집요하게 요구한 끝에, 이 보고서 최종본에는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와 함께 역사와 개념, 캐나다 정부의 정책 사례 등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국무조정실이 요약하여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지역사회 복원'이라는 모호한 용어가 대신하고 있었다. 지역사회 복원은 "석탄, 원전 등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별 맞춤형 프로젝트 시행, 고용지원으로 지역 자생형 경제구조로 전환(을) 지원"하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공정한 전환'과 '정의로운 전환'은 그저 같은 뜻의 다른 번역어일까? 그런 것 같지 않다. 2019년의 3차 녹색성장 5개년 계획에서는 모호하기는 하지만 '고용'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전환 과정에서 충격을 받게 될 노동자의 존재를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해주었다. 반면 2020년 그린뉴딜 계획에서는 '업종'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영향받게 될 산업과 지역은 부각된 반면, 노동자는 시선에서 아예 사라졌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노동자 배제적인 오랜 정책 전통(?)과 이 사안에 무감한 한국 노동조합의 상황, 그리고 그 논의 과정에 노동자들을 참여시키거나 의견을 수렴하려는 시도의 부재를 생각하면 그렇다. 이런 흐름은 실제 예산 배정에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6월 1일에 발표된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배정하겠다는 관련 연구 예산 10억 원은 탈석탄 정책 등으로 인해 영향받을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하는데 쓸 것이라는 기대와 다르게, 해당 지자체의 재생에너지사업을 지원하는 용도로 사용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하여, 현재 가장 중요한 쟁점은 아무래도 탈석탄 정책 분야에 있을 것이다. 지난 6월 25일 민주노총 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를 비롯하여 석탄발전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의당 강은미, 그리고 배진교 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정부가 정규직화 약속을 이행하고 김용균씨 사건으로 부각된 업무 외주화를 금지할 것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정부의 탈석탄 정책을 원칙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히면서도, 그로 인한 고용 불안을 우려하고 이 문제를 다룰 협의기구 설치를 요구하였다. 

이들은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대로 석탄발전을 LNG발전으로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고용이 유지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연료(석탄)를 보일러까지 이송하고 타고 남은 재(회) 등을 처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부분 일자리는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재 석탄발전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을 대략 1만1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 중에 3분의 2는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정부의 인식, 그리고 대책이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확인된 바가 없다. 대체적으로 재생에너지의 고용 창출 효과가 크기 때문에 그 산업이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석탄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숙련된 기술과 경력이 재생에너지산업에서도 유용할지, 현재 정착한 지역에서 그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그리고 지금의 급여와 근로조건은 유지될 수 있을지, 따져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사실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는 산업부나 에너지정책 전문가들이 아니라 고용노동부, 고용정책 전문가, 그리고 노동조합들이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상황이다. 다행스럽게 민주노총에서는 기후위기 대응 특별위원회를 준비 중에 있고, 노동연구원의 전문가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일보> 윤지로 기자와 같은 언론인도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정부가 정책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도록, 제때 개입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탈석탄 정책으로 고용 불안에 직면한 노동자들이 먼저 나서고 있다. 2023년에 폐쇄가 시작하는 태안 석탄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재 4조 2교대 근무형태를 5조 3교대로 바꿔 일자리 나누기로 이 상황에 대응하려는 자구책을 제시하고 있다. 잔업 수당 등을 포기하여 실질적인 급여 삭감으로 이어지겠지만 동료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들의 분석에 의하면 발전사가 감당해야 할 비용 분담도 크지 않다. 그러나 이미 2018년에 산업부는 발전사 정규직 노동자들이 요구한 5조 3교대제 도입과 그에 따른 인력 충원 요구를 거부한 바가 있어, 정부가 노동자들의 이런 자구책 제안을 수용할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의로운 전환을 정부가 진지하게 다룬다면, 당장 이 문제부터 산업부와 발전사들이 노동조합과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근무 형태 변화만으로 탈석탄 정책으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고용 불안 문제를 다룰 수 있는지는 보다 구조적인 차원에서 검토가 필요하다(배출제로 목표를 생각하면, LNG발전 전환도 타당하지 않다). 국가 차원에서 독일의 탈석탄위원회와 비슷한 '정의로운 전환 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제안에도 주목해야 한다.

한편 탈석탄 정책과 관련된 정의로운 전환 문제는 또 다른 뜨거운 감자인 두산중공업 이슈와도 관련이 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내외적 탈석탄 정책으로 석탄발전소 신규 건설 수요가 사라지면서, 두산중공업의 중심적인 사업 영역인 석탄발전소 설비의 수주 물량이 줄어들어 경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1조 원의 긴급 자금을 지원하였는데, 환경단체들은 공적 자금 지원의 조건으로 석탄발전 부문을 폐쇄하고 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정부의 자금 지원에도 희망퇴직자를 모집하고 휴업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노동조합의 반발을 사고 있으며, 이들은 고용 보장을 위한 공기업화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 상황에서 두산중공업은 최근 가스터빈과 풍력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때마침 발표된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에 힘입어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두산중공업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숙련을 살려 친환경 부문으로 전환하여 고용을 유지할 수 있을지, 관련 하청기업들과 그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지 제대로 파악하고 대책은 마련되고 있는지 장담할 수 없다. 

일본과 중국의 홍수만이 아니라 한국 중부 지역의 폭우를 보며,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온실가스의 급진적 감축 필요성을 다시 실감한다. 이를 위해 석탄발전소의 조속한 폐지 등 산업구조의 전환은 불가피하며, 또한 매우 시급하다. 그럴수록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수립과 시행이 절박하다.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은 단지 배출제로와 같은 목표 설정이 부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의로운 전환과 같은 중요한 수단을 채택하고 있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그린뉴딜은 기업들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과(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린뉴딜 다시쓰기"가 필요하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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