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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20-12-08 04:48
한국 정부의 ‘기후지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에 동참하며 / 한재각 소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7,584  
한국은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볼 때, 기후변화를 유발하여 취약한 국가들(그리고 사람들)에게 기후재난을 안겨다 준 가해자의 위치에 서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안에서도 심화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나란히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가 주거빈곤층이나 야외 노동자 등의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집중됨변서 불평등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이 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부끄럽기가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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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기후지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에 동참하며
[에정칼럼] 이제 한국은 지구적 기후재난의 가해자

이 글은 필자가 ‘기후위기 인권그룹’이 주관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한국 정부의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해서 진정을 내는 데 동참하면서 쓴 진정서다. 이미 기후위기를 인권의 차원에서 다룬 많은 연구와 활동들이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 출간된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학자인 조효제 교수의 <탄소사회의 종말>에서도 인권의 시각으로 기후위기를 바라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관련하여 인권 침해를 주장하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하는 것은 가능하고 또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며, 이 생각을 나누고자 에정칼럼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진정인은 가속되고 있는 기후위기로 인해서 삶의 궁극적인 기반인 지구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지금까지 누려왔던 일상의 삶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 공포와 절망감, 그리고 우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이 크게 부족하여 진정인의 행복 추구권을 보장하는데 소홀히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등 전 세계 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실제하며 그 원인이 인류의 화석연료 이용 등으로 인해 배출되는 인위적 온실가스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산업화 이전 시기에 비해서 이미 지구 평균 기온은 1℃ 정도 상승하였고, 전지구적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재와 같이 지속된다면 2030년 경에는 평균 기온 상승 폭이 1.5℃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IPCC 1.5℃ 특별보고서는 기온 상승이 2℃에 달했을 때보다 1.5℃로 제한되었을 때, 지구 생태계와 사람들이 겪게 될 충격과 변화가 얼마나 완화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5℃ 온도 상승이라고 하더라도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명확합니다. 예를 들어, 2℃ 상승 시에 북극해의 빙하가 10년에 한 번 꼴로 모두 녹아버린다는 예측이 1.5℃ 상승 시에 100년에 한 번 꼴로 모두 녹아버린다는 예측으로 바뀐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2℃ 상승 시에 모든 바다에서 산호초가 소멸할 것이지만, 1.5℃ 상승 시에는 그나마 20-30%의 산호초가 살아남을 것이라는 과학자의 예측이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인류가 문명을 건설하고 살아왔던 수만 년 동안 언제나 얼어 있었던 북극해의 빙하가 모두 녹아버리는 현상, 지구 생태계와 인간 생계 활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던 산호초가 대거 사멸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진정인을 포함한 인류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얼마나 큰 충격과 재앙에 직면하게 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홍수 피해와 녹아내리는 북극 빙하 자료사진

기상 관측사상 처음으로 기록되는 지난 여름, 최장기기간의 장마, 2018년에 경험한 극심한 폭염과 열대야, (특히 제주도에 빠른 상승이 관찰되는) 지속적인 해수면 상승, 폭염으로 인한 열사병 환자 및 사망자의 지속적인 증가, 절기에 따른 농사짓기가 불가능했다는 농민들의 호소 등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19 재난과 기후위기는 자연 자원의 대규모 산업적 추출이라는 동일한 원인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할 뿐만 아니라, 기후재앙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는 예고편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015년 파리협정을 통해 전 세계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2℃ 혹은 1.5℃ 이내로 막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1.5℃ 목표가 달성된다고 하더라도, 지구 생태계와 수많은 인류의 삶은 근본적인 변화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더 잦은 태풍을 견뎌야 내야 할 것이며, 폭염, 한파, 가뭄, 홍수, 산불, 해수면 상승과 같은 극단적인 기상과 자연재해에 노출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대규모 난민의 발생, 식량과 물의 확보를 위한 (전쟁까지도 포함되는) 국제/지역적 갈등 등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1.5℃ 목표는 지구 생태계가 “찜통 지구(hot house)” 상태에 빠져들어 이전 상태로 영구히 되돌아지 못할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할지라도, 전대미문의 재앙에 장기적으로 직면하는 상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1.5℃ 목표를 지켜낼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습니다. IPCC 1.5℃도 특별보고서는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전지구적으로 넘지 말아야 할 온실가스 배출 총량(이를 ‘탄소예산(carbon budget)’이라고 합니다)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2018년이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20Gt를 넘지 않아야 하지만, 인류는 매해 42Gt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탄소예산을 모두 소모하는 데까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겨우 7년에 불과합니다. 오십이 된 제 나이에 더해도 육십 이전에, 인류는 1.5℃ 기온 상승을 넘어선 기후재앙을 피할 기회를 잃고 됩니다. 지금 태어난 아이들, 초중고 학교를 다리는 청소년들, 그리고 사회에 나선 청년들의 삶을 생각하면, 이 비극은 더욱 가슴을 답답하게 합니다.

한국은 지난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급격히 온실가스 배출량을 확대해 왔습니다. 이제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세계 10위권 안팎에 위치한 다배출 국가이며, 기후변화의 역사적 책임을 보여주는 누적배출량에서도 10위권 중반, 그리고 지구적 형평성을 가늠할 수 있는 일인당 배출량에서도 OECD 주요 국가 중에서 미국 다음으로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볼 때, 기후변화를 유발하여 취약한 국가들(그리고 사람들)에게 기후재난을 안겨다 준 가해자의 위치에 서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안에서도 심화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나란히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가 주거빈곤층이나 야외 노동자 등의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집중됨변서 불평등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이 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부끄럽기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기후위기의 실재, 기후재난의 가해자로서의 한국의 위치 그릭 기후위기의 불평등에 대해 인정하기를 거부하면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지속적으로 회피해왔습니다. 한국 정부는 2009년에서야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지만, 그 목표도 미약할 뿐만 아니라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목표를 명시한 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의 해당 조항을 슬그머니 바꾸고 국민들에게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어진 정부에서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경제적 규모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고 국제사회에 제시하면서 “기후악당”이라는 비판을 자처했습니다.

진정인은 2000년대 후반부터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한 연구와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여러 연구자 및 활동가들과 함께 정부에게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과 불평등한 효과에 대해서 경고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한국도 국제 사회의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동참하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을 계속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기후위기의 절박함과 국제적 책임에 걸맞는 감축 목표 설정과 환경사회적 비용을 반영한 에너지(전기) 요금 인상과 같은 필수적인 정책 추진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 계획을 승인하고 또 그 추진을 방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 등도 저항하지 않고 동참할 수 있는 정책 마련 요구도 외면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이런 입장과 태도는 무기력과 절망감을 안겨다 주고 심각한 우울감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비록 현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일부 개선된 조치가 마련되고 있다지만 그 장기 목표 달성을 위해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외면하면서, 오히려 혼란만 야기하고 있습니다.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 돌입해도 부족할 상황에서, 국내외에서 석탄발전소를 신규 건설하는 것을 묵인하거나 공적인 투자를 승인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서 제주도 제2공항의 건설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을 확대할 가능성이 분명한 토건 사업도 강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결정과 정책들은 한국 정부의 모순된 태도만을 더욱 부각시키면서, 진정인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을 기후위기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깊은 절망감에서 더욱 빠져 들게 만듭니다. 또한 합리적인 문제제기와 토론 그리고 정책 변화라는 민주적 제도의 작동이 기후재앙을 피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와 신뢰마저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내는 계절에서 익숙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릅니다. 한국 정부의 ‘기후 지체(climate delay)’를 인권의 이름으로 고발하기에 너무 늦었을 수도 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며 이렇게 진정서를 냅니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에정칼럼은 레디앙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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