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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21-01-12 17:23
기후범죄기업처벌과 기후위기대응법 / 이정필 연구기획위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4,115  
‘탄소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기후위기대응법의 기후범죄 기준을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이 사망자 몇 명, 부상자 몇 명, 질병자 몇 명 따위로 설정해서는 곤란하다.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나 어울릴 법한 생명 가치의 정량적 표현들이 상위법령에 버젓이 들어가 있다. 기후범죄를 방지하고 기후정의를 실현할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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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범죄기업처벌과 기후위기대응법
[에정칼럼]야만이냐, 전환이냐···어떻게 싸울 것인가

2017년 고 노회찬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입법 취지는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크게 위협하는 ‘기업범죄’를 사전에 예방하는 데 있다. 그러나 법안은 경제권력, 행정권력, 입법권력의 협력 속에서 후퇴를 거듭했다.

집권 정치세력과 기득권 집단의 사회보호의 진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딱 그 정도의 의지와 실력으로 안전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안전은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고, 결과는 부정의하다. 고로 ‘중대하자법’이다.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는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위기와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해당 법률이 다를지언정 재해의 발생-전개 동학에서 모든 것은 서로 촘촘히 연결돼 있다. 각종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의 규모, 범위, 속도는 실존적 위기(x-risk)를 낳고 있다. 특히 기후위기라는 중대재해는 생존의 토대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생태적, 사회적, 경제적 지속불가능성은 복합위기를 발생시켰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켰으며, 더 심화시키고 있다.

2021년 신기후체제에 들어선 우리는 야만이냐 전환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임박한 파국, 어떻게 싸울 것인가.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국가는 계급적 당파성을 감출 수 없다.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게 할 뿐, 사실 국가의 중립은 없다. 탄소중립 역시 마찬가지다. 기후위기의 원인과 결과, 그 해결 방법은 적대와 모순으로 가득하다. 국가적, 국제적 배출제로의 기준과 방식의 허상도 문제지만, 기업의 기후위기 책임, 즉 ‘기후범죄’의 묵인이나 국가의 공조가 더 큰 문제다.

앞으로 제정할 ‘기후위기대응법’에는 감축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과 배상의 원칙이 포함돼야 한다. 그리고 조세와 가격 제도 등은 이 원칙을 실현하는 도구로 작동하면 된다. 중대한 위기라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런 위기의식을 법률에 담으면 될 일이다. 이것이 바로 탄소중립의 우상화를 방지하는 방법이며, 정의로운 전환을 계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대책인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후소송’의 피고는 기업과 정부를 가리지 않는다. 국내 ‘청소년기후행동’도 작년에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국회)과 202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폐기(정부)에 대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청소년의 생명권과 환경권 등 헌법상 기본권 침해 이유를 들었다.

헌법기관들이 더이상 기후범죄 혐의를 받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의 국회 통과를 지켜보면서 탄소중립과 그린뉴딜 관련 법률이 제대로 제정될지 의문이 든다.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의 기본 원칙과 방향 그리고 이를 구현할 핵심 정책들이 온전히 담길지 걱정이 앞선다. ‘중대하자법 2호’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국가와 시장에 기후위기 대응 탈탄소화의 엄중한 책무를 요구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통 방식의 쉬운 개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문제 발생→사회적 저항→여론 형성→정치적 압박→정책 도입과 실행→제도 보완→행복한 결말, 이런 도식은 기후 안정화와 체제 전환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이미 때를 놓쳐 일종의 속도전과 총력전이 중요한 시기가 됐다.

비상사태라고 해서 현실에 필요한 조치들이 다 취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중립은 없다. 따라서 사회적, 자연적 재난 상황을 활용해 지배 체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쇼크 독트린’이나 ‘재난 자본주의’ 등 ‘파시즘 X’를 경계해야 한다. 권력 유지, 한몫 잡기, 치안 강화, 사회 통제 등은 자유민주주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데렉 월(Derek Wall)이 <기후파업>(Climate Strike, Merlin Press, 2020)에서 제기한 이중 권력(dual power)과 바탕 만들기(base building)라는 실천 전략은 새로운 전략이 아니지만, ‘기후정의 X’가 착목할 지점이다. 나아가 정의로운 전환의 비전을 주어진 구성된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탈정체화를 통해 새로운 역량으로서의 주체화 공간에서 열 수 있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의 확장과 심화는 능동적 주체의 형성과 세력화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와 지자체에서 등장하는 전환 정책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노동과 사회의 정치경제적 주도성을 인정하지 않고, 행정관리적 대상의 위치만 부여한다. 유행이 되고 상식이 되면, 한때 신박한 개념이 보수화와 형해화되는 처지에 놓이곤 하지만, 초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본래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다.

‘탄소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기후위기대응법의 기후범죄 기준을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이 사망자 몇 명, 부상자 몇 명, 질병자 몇 명 따위로 설정해서는 곤란하다.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나 어울릴 법한 생명 가치의 정량적 표현들이 상위법령에 버젓이 들어가 있다. 기후범죄를 방지하고 기후정의를 실현할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필요하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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