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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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21-03-19 09:55
탄소중립이행법과 정의로운 전환의 주류화 /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75  
국회가 본격적으로 <탄소중립이행법> 제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1대 국회에 발의된 기후위기대응법안은 탈탄소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그린뉴딜정책 특별법안(심상정 의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사회 이행 기본법안(이소영 의원), 기후위기대응법안(안호영 의원), 기후위기대응 기본법안(유의동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들 법안을 통합하여 탄소중립이행법으로 정리될 것이라고 한다.

기후위기라는 시대 규정 이상으로 관심을 끄는 것이 바로 정의로운 전환이다. 최근 기후정의와 유사한 의미로 수용되고 있지만, 맥락에 따라서 이행 과정의 전략과 정책이라는 중범위 수준에서 정의로운 전환 개념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전환전략과 전환정책이 그것이다. 정의와 원칙, 기구와 기금, 지원과 참여 등의 제도적 장치가 정의로운 전환의 법적 근거로 탄소중립이행법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충남 정의로운 전환 기금과 국회 탄소중립이행법

지난 2월, <충청남도 정의로운 전환 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가 통과된 바 있다. “에너지전환 대상지역의 발전사업자, 노동자, 소상공인, 지역주민 등이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입는 사회·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들이 에너지전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지원하는 정책”을 위해 관련 기금을 설치해 운용한다는 것이다.

조례에 따르면, ① 정의로운 전환에 관한 사회적 대화 프로그램 운영, ② 에너지전환으로 인한 지역영향 분석, ③ 정의로운 전환에 따른 고용승계, 재취업훈련, 취업알선, 전업지원금 등 고용안정 및 일자리 전환과 관련한 사업, ④ 에너지전환 대상지역의 기업유치, 소상공인지원, 주민복지 등을 위한 사업, ⑤ 에너지전환 대상지역의 발전설비 및 부지의 해체, 복원, 활용을 위한 주민 프로그램 등 개발 지원 등에 기금이 사용된다.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상위법들과 개념 정의와 접근 방식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노총(ITUC) 등이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면, 여전히 취약한 부분을 진정성을 갖고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조례는 많은 이들을 호명하고, 이들에게 참여를 보장하고 정책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 소상공인, 지역주민 등의 인정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으로 인정되느냐이다. 이 쟁점은 기금 조례나 운용심의위원회로 제한될 수 없으며,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영역의 전환투쟁을 통과하면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이 판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 더 늦기 전에 찾아야 한다.

일부 회원국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의 ‘그린딜 정의로운 전환’이 탄소집약적 지방정부의 상향식 행동을 촉발하는 영토적 정치전략(rescaling)을 취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했다면, 한국은 이와 반대로 시민사회와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와 국회에 압력을 행사해 탄소중립과 정의로운 전환을 추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충남은, 비록 여러 전환세력들의 개입 덕분에 가능했지만, 정의로운 전환을 법제도화하는 동력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충남이 스스로 초래하고 있는 전환의 행정화는 중앙 무대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환’은 공통의 언어가 되어 대화의 품격을 조금은 올릴 것이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가 합심할 탄소중립이행법은 기후위기비상행동의 <기후정의기본법>과 내용에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성장 지향적 녹색 자본주의의의 지향이냐 극복이냐, 이 사이에 섬이 있다. 기후촛불도 없고 적록동맹도 규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집권당 내에서조차 전당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탄소중립-그린뉴딜은 속도를 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가열차게 추진하고 있는 ‘산업분야 탄소중립 확산 시리즈’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반도체·디스플레이, 비철금속, 정유, 전자․전기․전지 업계 등 거의 모든 산업을 분야별 탄소중립 위원회 및 협의회로 집결시키고 있다. 그리고 ‘탄소중립 산업 대전환 추진전략’과 ‘탄소중립 산업구조 전환 특별법’으로 뒷받침될 것 같다.

국제노총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시위하는 모습(사진=살림이야기)

산업분야 탄소중립 확산과 정으로운 전환 확산

이런 흐름에서 정의로운 전환은 어디 있을 걸까? 정부의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은 전환과정에서 발생할 사회적 갈등관리 차원에서 일자리 전환과 생계지원 등 ‘공정한 전환’을 위한 이행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본과의 산업전환 협약에 비해 노동과 시민사회와의 대화 추진 노력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가 구상 중인 ‘한국형 지역에너지산업 전환 지원사업’이 공정한 전환의 대표 정책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패키지 프로그램 개발부터 공론화가 폭넓게 이루어저야 한다. 아직까지 산업, 노동, 사회 등 체제 전반에 걸친 탄소중립이 정부의 우선순위에서는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민관 거버넌스가 으뜸인 것 같다. 그곳에서 정의로운 전환의 존재감은 없다.

탄소중립 프로그램 기획과 실행 과정에서 산업과 기업의 대응이 정의로운 전환 주류화에 필요하긴 하다. 다른 이유에서 말이다. 월드 벤치마킹 얼라이언스(World Benchmarking Alliance; WBA)는 기업인권벤치마크(Corporate Human Rights Benchmarking; CHRB) 등 주요 기업의 지속가능한 책무성 메커니즘을 조사․평가하는 비영리 국제기구이다. 최근에는 기후에너지벤치마크(Climate and Energy Benchmarking; CEB)를 통해 450개 다배출 기업의 탈탄소 에너지전환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의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 개발 등 구체 방법론(Just Transition Benchmark Assessment) 작업에 착수했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2017)이 기후 측면(감축목표, 지속가능발전 목표), 사회-환경 측면(괜찮은 일지리․취약성, 형평성, 젠더), 정치적 측면(참여, 거버넌스, 인권)을 평가 목록으로 작성한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지표’가 국가 단위를 대상으로 한다면, 탄소배출의 경제주체인 기업을 직접 평가하는 WBA의 시도도 참고할 만하다.

WBA의 정의로운 전환 지표가 나오기 전에도 우리는 주요 기업들의 탈탄소 에너지전환의 성과와 그 사회적 성격을 비판적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30개 자동차 기업에 대한 CHRB와 CEB 평가 결과를 보면 이렇다. 전반적으로 전주기 공급 사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노동권 및 인권에 대한 정보가 특히 부족하다. 탈탄소와 에너지전환과 인권이 별개로 취급되고 있다. 탈탄소 에너지전환에서 다소 후한 평가를 받더라도 노동권과 인권 보장은 매우 낮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테슬라의 경우가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현대자동차 역시 CEB에 비해 CHRB 지수는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기업경영과 노동현장․지역사회에서 정의로운 전환이 중요하고, 탈탄소 에너지전환 평가에서 사회적 영향분석과 대책마련이 시급히 요구된다.

우리 정부의 산업분야 탄소중립 접근이 ‘정의로운 전환 확산 시리즈’로 질적 도약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의 전환 주도만큼이나 기업의 전환 책임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탈탄소․탄소중립의 정의로운 전환의 대안 사업이나 프로그램의 원칙과 그 내용에 대한 검토는 턱없이 부족하다. 단계적으로 해체할 탄소-화석-위험 복합체들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에너지를 비롯한 그린뉴딜 사업에서 새로 도입할 규범, 기술, 시장, 제도를 꾸준히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역 주도의 분산에너지 활성화와 정의로운 전환관리

지난 3월 11일,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는 발전사업자와 전기판매사업자의 겸업 금지에 대한 규제특례를 허용했다. 협동조합 및 조합원의 참여로 재생에너지 생산·보급 확대를 위한 ‘소규모 태양광 전력거래 플랫폼 서비스’ 실증특례가 한시적으로 승인된 것이다. 네덜란드의 ‘에너지전환 특례실험’의 일종으로 일단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훨씬 큰 규모의 전환실험도 예정돼 있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로드맵’의 일부 내용을 담아 먼저 발표했다는 ‘지역 주도의 분산에너지 활성화 대책(2021.3.3)’은 제주도를 대상으로 훨씬 큰 규모에서 유사한 실험을 추진할 요량이다.

① 지역 주도의 에너지 시스템 실현: 맞춤형 마이크로그리드 실증, 자역의 에너지 역량 강화(지역에너지센터), 분산에너지 특구 지정을 통한 성공사례 창출, ② 분산형 에너지 인프라 구축: 계통안정화 ESS 구축, 재생에너지 통합관제시스템 구축, 신규 유연성자원 개발(섹터 커플링), ③ 재생에너지 출력 제어 최소화 방안으로 요약된다. 과거에 비해 기술적 실증과 함께 제도적 실증을 병행한다는 점은 괜찮지만, 사용자 참여와 에너지 분권․자치 등 제주 에너지권역의 사회기술시스템 전환이 입체적으로 기획되고 추진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아직까지 기술, 제도, 사회, 조직을 종합적으로 다룬다는 인상을 주지 않아서다. 지식과 정보의 활용도 중요하지만 지성과 지혜가 발휘되는 ‘정의로운 전환관리’가 필요하다.

‘카본 프리 아일랜드’가 지역에너지전환의 실험대라고 한다면, 한국전력공사가 전환기업이 될 기회도 있다. 2020년, WBA의 50개 전력회사 대상 CEB 조사 결과에 따르면, 덴마크 오스테드가 1위, 한전은 39위에 올랐다. 한전은 석탄발전 등 화석연료에 고착되어 있어 에너지전환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평가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전기사업법 재정을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에너지공공성과 에너지전환을 모두 충족시키는 지역 공유적 에너지시스템에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 비록 시장형 공기업이지만, 공기업답게 탈탄소 에너지전환에 필수적인 전력계통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제주 전환실험에서 제주에너지공사 등과 협력하면 될 일이다.

제주에너지공사 등 지역 에너지 유틸리티가 전환기업의 다중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재생에너지 공급을 촉진하는 자원공급자, 재생에너지 정책을 옹호하는 인플루언서, 에너지전환 생태계에서 다른 세력과 협력하는 동맹, 재생에너지 사업을 매개하는 중개자, 투자자들의 재생에너지 사업의 경제성 확보를 돕는 조력자, 소비자들의 분산에너지자원에 신규 망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가가치 창출조력자 그리고 소비자 소유 분산에너지자원를 조정하여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통합자의 잠재력을 두루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에 무감각한 지역 에너지 유틸리티들의 각성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정의로운 전환이 2007년에 국내에 소개되었으니 긴 세월을 보냈다. 이제 시작이지만, 어쩌면 2021년 올해가 정의로운 전환이 주류화되는 해로 기록될지 모른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것들이 그렇듯 주류화는 보수화와 함께 작동하기 때문에 정의로운 전환의 급진화에 계속해서 주목해야 한다. 주류화와 급진화라는 쌍수호박(雙手互搏)이 필요하다고나 할까. 정의로운 전환의 비전을 이미 구성된 정체성 테두리에서 규정할 경우, 체제 재생산이나 대안 없음 상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탈정체화․탈동일시와 함께 새로운 역량으로서의 주체화 공간을 열 수 있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의 확장과 심화는 험난하지만 가야 할 길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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