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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21-04-26 12:57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서 정말 중요한 건? /김현우 연구기획위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3,080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오염수 방류 문제로 공식 언론 매체뿐 아니라, 소셜미디어에서도 논쟁이 뜨겁다. 단지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뿐 아니라, 민족주의적 코드까지 결합하는 모양새다. 이러면서 기존에 찬핵과 반핵 또는 보수와 진보로 분류되던 단순한 진영 구분을 넘나드는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찬핵 진영(일본에서는 '추진파'라고 부른다)에서의 의견이 갈리는 것도 흥미롭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핵종 제거장치(ALPS)로도 모든 방사능 물질이 걸러지는 것은 아니며 일본 당국에서 누락하고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라며 방류에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내고 있다. 이에 반해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나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트리튬(삼중수소)이 특별히 더 위험한 방사능 물질이 아니라거나, 바닷물에 희석되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은 거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트리튬이 방출하는 베타선은 세포벽도 통과 못할 정도로 약하기 때문에 암 유발 가능성이 없다는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의 주장은 가짜뉴스에 가깝다.) 어쨌든 찬핵 진영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문제가 없어야 국내 핵발전 시설도 문제가 없다는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오염수 방류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들도 여럿이다. 한국 환경운동과 탈핵운동의 입장이야 크게 달라질 게 없지만, 방류에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이들을 '토착 왜구'처럼 표현하는 강한 발언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정치권에서는 반일 감정에 편승하거나 적어도 거스르지 않으려는 태도가 강한데, 국제법원 제소나 동아시아 주변국 협력, 미국과의 관계 같은 세부 쟁점으로 가면 누구에게나 이번 오염수 방류 문제에 관한 답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건강상에 정말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지를 따지는 것은 솔직히 말해 어렵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희석해서 30년간 천천히 방류하겠다고 한다. 2년 뒤에 일본이 방류를 시작한다고 해서 한국의 동해안이나 제주에서 측정하는 방사능 수치가 가시적으로 상승할지는 알 수 없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인 2011년 4월에 도쿄전력이 이미 오염수 1만 톤 이상을 주변국 협의 없이 방류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이후에도 몇 차례 의도치 않은 누출이 있었다는 것도 이미 알려졌다. 이런 경우들에는 핵종 제거장치도 없어서 트리튬 뿐 아니라 스트론튬 같은 물질이 포함된 고농도 오염수였다. 뿐만 아니라 최근 일본 신문은 1977년부터 2007년까지 후쿠시마 오염수 보다 3배 이상의 트리튬이 포함된 오염수가 도카이 재처리 시설에서 이바라키현 앞바다로 방류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모두가 사실일 것이다. 일본은 이미 이런 '악행'들을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방사능 수치의 상승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후쿠시마에서 나름 처리된 오염수를 추가 방류해도 그야말로 '물에 물타기' 정도가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한국 연근해에서 잡히는 명태나 대구에서 세슘 검출이 늘어났다고 해서 그것을 후쿠시마라는 원인으로 연결하거나, 국내 암 발병률 상승으로 연결하는 것도 여전히 어렵고, 법률적으로 인정받기는 더욱 어렵다. 확률과 수치의 문제라는 게 그렇다.

사실 들여다보면, 방사능 피폭과 관련된 피해의 너무도 명백한 증거 또는 적어도 심증이 있는 경우에조차 그랬다. 히로세 다카시 선생의 책 <누가 존 웨인을 죽였는가>(푸른미디어 펴냄)로 알려진 사례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미 육군이 핵 실험을 한 장소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영화 <정복자>의 촬영이 시행됐다. 배우와 제작진 220여 명 중 주연 존 웨인과 수전 헤이워드를 포함한 91명이 암에 걸렸고, 그중 절반 이상이 자기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핵 실험과 이들 발병 사이의 연관 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 존 웨인이 걸린 폐암과 위암은 그가 즐겨 피운 담배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피폭 때문이었는가? 법원이라면 어떻게 판단했을까?

한국에서는 지난해에 월성 핵발전소 안팎에서 높은 농도의 트리튬이 검출되어서 논란이 되었지만,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월성 핵발전소 주민들은 유난히 높은 암 발병률을 경험했다. 고리와 월성 등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이런 피해들을 호소하며 집단 소송에 나섰다. 2012년 주영수 한림대 교수가 수행한 연구는 핵발전소 5킬로미터 이내에 사는 여성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3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지역에 비해 2.5배 높다는 보고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몸이 증언하고 있음에도 법률 소송은 쉬이 끝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확연한 통계 수치조차 언론은, 그리고 한국 국민 다수는 알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후쿠시마 오염수는 수치와 확률상으로도 매우 불확실한 위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월성 핵발전소 부지에서 측정된 트리튬 수치가 바나나 6개나 멸치 1그램을 먹었을 때의 피폭량 밖에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올 수 있었다. 이 역시 바나나의 칼륨과 트리튬이 인체에 미치는 성질의 차이를 간과한 가짜뉴스에 해당하지만, 확률과 수치로 인과 관계만을 따지면 모든 문제는 그야말로 물타기가 되고 만다. 그리고 확률과 수치만의 논리로는 일본 정부의 방류 방침도 유효하게 비판하기도 어렵고 유효한 변화를 끌어내기도 어렵다.

수치가 의미 없다는 게 아니다. 핵발전소와 핵무기 이용이나 실험이 지속될수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방사능 물질 누출이 많아질수록, 당장은 인지할 수 없더라도 신체가 가장 연약하고 취약한 생명체들에 통계적으로 많은 암과 백혈병 발병이 확인될 것이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 안에, 그리고 구체적인 존재들에서 나타날 수치가 제한되어 있음도 분명하다.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핵에너지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고, 그런 맥락 속에서 후쿠시마 오염수란 무엇인가를 말하는 일이다.

핵에너지는 인간의 지식과 힘으로 충분히 통제가 불가능하며, 불확실하지만 매우 장기적으로 미치는 위험이라는 본성을 갖는다. 그래서 핵무기, 핵발전, 멜트다운, 주민과 종사자 피폭, 고압송전선로, 비밀주의, 민주주의 훼손과 억압이라는 여러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에겐 한동안 저렴하고 편리한 전기를 제공했지만, 사고와 발병이 아니라 하더라도 항상적인 위험, 두려움, 그리고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였다. 일본 정부가 말하는 '풍평 피해'조차도, 근거 없는 억울한 피해가 아니라 그런 잠재적인 위험에 대한 대중의 근거 있는 반응일 것이다. 당장의 피해가 없다, 당장 확인할 수 있는 수치가 없다, 그런 숫자의 방어막 뒤에 숨는 사람들에게는 핵에너지의 이 같은 여러 모습들, 그리고 그 본성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몸이 증언하는 피해와 위협마저 숫자들은 오히려 못 보게 만든다. 핵폐기물도 그들이 살아가는 시간 동안은 수치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물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막야야 한다. 일본 정부가 예고한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회도 충분히 있을 것이다. 일본 반핵 시민단체들의 주장처럼, 육상에 보관시설을 증설하고 트리튬의 반감기를 넘어서 30년 이상 보관하여 방사능 수치를 상당히 낮춘 다음 처리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많은 돈이 들고 신경이 쓰인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가 그것을 안 하려 하니, 비판과 저지의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늦추거나 막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일본만의 일이거나 방사능 오염수와 기체 방출의 유일한 진원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을 막아내더라도 그것은 문제의 종결이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모든 핵발전국에 대한 문제 제기의 시작이어야 한다. 따라서 지금 토착 왜구 논쟁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핵발전소, 한국의 배출, 한국의 폐기물을 어떻게 할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비용과 고통을 나누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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