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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0-12-16 12:43
기후변화와 저들의 '통큰' 탐욕 (이진우 상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6,547  

기후변화와 저들의 ‘통큰’ 탐욕.

- 이진우(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2010년 말, 두 가지 소식에 가슴이 아린다. 첫 번째 소식은 칸쿤에서 열린 기후변화총회에서 각국 협상단이 결국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실효적 합의를 내놓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2009년 코펜하겐 총회가 완벽한 실패로 끝남에 따라 인류는 미증유의 혼돈 상태에 빠지게 됐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피해 전망치는 나날이 갱신되는데, 각국은 누가 얼마나 온실가스를 감축할 것인가에 대해 제대로 된 목표조차 수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류는 2010년 러시아의 폭염, 파키스탄의 홍수, 중국의 가뭄 등 전례 없는 기후변화 피해를 겪었기 때문에 칸쿤에서 들려온 소식은 더욱 음울하다.


 칸쿤 합의에 따르면 세계 각국은 전세계 온도상승을 2℃로 제어하고, 향후 1.5℃로 목표치를 낮추는 방법을 연구하기로 했다. 또한 연간 1,000억 원의 기금을 조성해서 개발도상국들을 지원하기로 했고, 선진국들이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5~40%를 감축해야 한다는 IPCC 보고서에 “주목(Also recognizing)”하기로 한 것 역시 주요 골자다. 각국의 목표치 합의는 또 다시 내년으로 미뤄졌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은 유감스럽게도 2007년 합의된 ‘발리행동계획(Bali Action Plan)’이나 2009년의 ‘코펜하겐 협정(Copenhagen Accord)’에 모두 언급된 것들이다. 다시 말해 전혀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그 내용 또한 매우 의뭉스럽다. UNEP가 지난 11월에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에 비해 지구기온 상승폭을 2℃ 이하로 막으려면 2020년경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44Gt 이하가 되어야 하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54~60Gt(평균 56Gt), 코펜하겐 협정을 모든 국가가 적극적으로 준수한다고 하더라도 2020년 배출량은 49Gt이 되어 연간 약 7Gt의 갭이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된다. 이는 지구상의 모든 자동차 연소로 배출되는 양에 육박한다. 따라서 칸쿤 합의는 공동 목표와 실제 감축 수치가 맞지도 않는 코펜하겐 협정을 추인한 꼴이다.


 선진국의 개도국 지원금 역시 마찬가지다. 협상가들은 202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에 이르는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한 것이 “중대한 결정”이라고 강조했지만, 그 중대한 결정은 2009년 코펜하겐 협정에서도 등장한 것이다. 지원 규모 또한 선진국 GDP의 0.05%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이는 개도국들이 요구한 1.5%나 기후정의 NGO들이 주장한 6%에 근접하지도 못한 수치다. 거기에 누가 돈을 낼 것인지에 대한 건 제대로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대신 기금 운용 주체는 제3세계들이 강하게 거부했던 세계은행으로 기민하게 결정나버렸다. 선진국들의 책임은 지원기금이라는 미명하에 희석되고, 오히려 기금이 무기화되어 개도국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일부 언론들은 2009년의 ‘코펜하겐 협정’은 총회 공식 합의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에 193개국이 동의한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며 유엔주도의 기후변화협상이 희망을 찾았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그 언론들은 작년 코펜하겐 협정에도 “절반의 성공”이란 평가를 달았다. 1년간 진전된 논의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절반의 성공”이란 평가를 내린 안이한 인식에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우스갯소리로 언론이 평가한 것처럼 작년에 절반을 성공했고, 올해 역시 절반을 성공했다면 칸쿤 합의는 사실 완벽한 성공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토끼를 앞서지 못하는 아킬레스처럼 여전히 절반이 남아있는 것인지, 왜 매양 절반만 성공해도 “중요한 진전”이 되는 것인지. 칸쿤은 코펜하겐에 연이은 ‘완벽한 실패’로 보는 게 마땅하다. 칸쿤 합의는 헤게모니를 쥔 선진국들이 쏘아댄 총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국내에서도 칸쿤 합의 못잖은 암울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2010년 예산에서 902억 원 전액 삭감됐던 저소득층 에너지보조금이 ‘서민복지’를 주창한 한나라당의 주장과는 달리 2011년 예산안에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2008년 1,392억 원이었던 저소득층 에너지보조금이 현 정부 들어 1년 만에 반토막이 나더니 2년째 되던 해부터는 계속 0원인 상태인 것이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에겐 기상관측 사상 가장 혹독했다던 지난 겨울이 단지 추억에 불과한 모양이다. 저소득층 에너지 보조금은 단순히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저소득층은 가뜩이나 비싼 에너지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난방을 하지 않거나 최소한의 난방만으로 겨울을 지내기 일쑤다. 이로 인해 매년 동사 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고, 추운 집에서 살을 에리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극빈층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표면적으로라도 에너지복지법을 입법예고했던 정부가 저소득층 에너지 보조금을 전혀 책정하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08년 녹색성장을 국정운영의 화두로 제시한 뒤 정부는 기후변화대응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역설해왔다. 녹색 성장의 주된 내용이 4대강 살리기 사업과 핵발전소 증설이어서 국내적으로는 녹색덧칠(greenwash)라는 비아냥을 받으며 거센 반대에 휩싸여 있지만, 외교적으로는 불행하게도 녹색성장이 시대적 흐름인양 인정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정부에게 온실가스 감축을 하고 있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대기업에게는 감축요구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눈칫밥을 먹고, 아무런 저항도 못하는 저소득층의 난방비를 줄여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것인가. 고작 고속도로  4~5km 지을 돈밖에 안 되는 한줌 보조금을 갈취하는 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얘기하는 녹색성장이고, 서민복지란 말인가.


 며칠 차로 칸쿤과 여의도에서 전해진 소식은 기후변화가 환경의 문제가 아닌 정의의 문제라는 점을 뼈아프게 되새김시킨다. 날씨마저 을씨년스러워졌다. 우리는 언제까지 저들의 주머니를 채워주기 위해 생존권조차 양보해야 하는 것일까. 


 * 본 칼럼은 인터넷 미디어 '레디앙'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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