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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1-04-05 11:42
日 농부가 자살한 진짜 이유는? '일본은 끝났다!'(이근행 이사)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7,506  

日 농부가 자살한 진짜 이유는? '일본은 끝났다!'

[초록發光] 원자력 발전소와 먹을거리

1995년 1월 17일 새벽, 일본 고베와 한신 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집과 고가도로가 무너지고 수도 가스 도로 등 도시 시스템은 마비되었다.

고베에서 80㎞ 떨어진 이치지마초(市島町)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농부 다카하기 씨는 이 소식을 듣고 주변의 농부들과 주먹밥을 만들고 쌀과 물을 준비해 몇 대의 트럭에 나누어 싣고 도로가 끊어진 곳을 돌아돌아 폐허가 된 고베 시내의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지난 몇 년간 생산자 소비자 직거래 제휴 활동을 하며 익숙한 길이었기에 소비자들 집과 이웃들을 찾아 갈 수 있었다. 이렇게 매일매일 물과 식량을 실어 날랐다.

다카하기 씨는 몇해 전 태풍으로 계사가 무너져 기르던 닭들이 깔려 손을 쓸 수 없는 재난을 당했을 때 기억이 어른거렸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도시의 소비자들이 달려와, 보통 때는 하이힐 신고 다니던 아주머니들이 긴 장화로 갈아 신고, 질퍽한 계분으로 가득 찬 양계장에 들어가서 살아 있는 닭들을 구해내어 절반 정도를 살릴 수 있었다.

작년 초 효고 현의 유기 농업 현장과 고베 지역의 산소제휴(産消提携) 활동을 둘러보러 갔을 때 들은 이야기이다. 지진 당시 도시가 기능을 회복하려면 수십 년은 걸릴 것이라 했지만 전 세계의 인도적 지원과 수많은 자원봉사의 물결은 불과 수 년 만에 고베를 부활케 했고, 지진이라는 재난을 성찰하고 대비하는 도시로 거듭났다.

한신 대지진은 외부 의존적인 도시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가에 대한 성찰로도 이어져 가까운 지역에서 안정된 먹을거리를 확보하는 것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고, 이후 도시 농업의 주요한 기능의 하나로 방재 기능과 교육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더 혹독한 위기를 겪은 쿠바의 도시 농업, 유기 농업 전환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우리 사회에도 전해지게 되었고, 시민 농원을 육성하고 도시 농업을 지원하는 방안들도 활발해졌다. 1970년 모유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된 충격으로부터 유기 농업으로의 전환, 생산자-소비자 제휴와 관계의 회복 활동에 나서게 된 것처럼 재난과 시련으로부터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발휘해온 것이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훨씬 강력한 지진이 일본 동북 지방 바다에서 발생하였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충격보다 더 엄청난 지진 해일(쓰나미)이 덮쳤다. 그 규모와 참혹함에 모두들 넋이 나갔다. 과거사와 독도 문제 등으로 마음이 편치 않은 한국인들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은 이번에도 "힘내라"며 위로와 지원을 보냈다. 불가항력의 천재지변을 겪는 일본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자연에 대한 경외가 공감되는 듯 했다.

그러나 지진 해일로 냉각 계통이 멈춰버린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들이 차례로 수소 폭발을 일으키고 균열되어 방사성 물질이 동쪽으로는 태평양을 건너고, 한반도로도 퍼지고 있다. 며칠이 지나도록 속수무책으로 원자로를 안정화시키지 못하고 바닷물만 퍼붓고 있는 일본 정부와 원자력 산업계에 '믿고 맡겨놓을 수 없다'는 불신과 비난이 비등하고 있다. 이미 식수와 바다까지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고 불안이 깊어지며 도쿄는 물론 중국과 한국에서도 생수가 동이 나고 천일염을 비롯한 소금 사재기가 극성이다.

방사성 물질이 누출된 지 1주일 만에 후쿠시마 인근 지역 식수와 우유에 이어 시금치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자, 일본 정부는 섭취 제한에 이어 출하 제한, 수출 금지 조처를 취하고, 세계 각국은 일본산 육류, 해산물, 채소, 유제품 수입을 잠정 중단하고 검사를 강화했다. 한국 정부가 원전 수주에 열을 올리고 있는 멀리 아랍에미리트(UAE)에서도 3월 24일 일본 신선 식품에 대한 수입을 금지하고 다른 식료품에 대해서도 전수 검사를 한다고 발표했다. 홍콩의 한 일식 레스토랑에서는, 조리전의 선어나 손님이 주문한 요리에 방사능 측정기를 대고 수치를 보여주며 안심시키는 서비스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정부도 오염 지역 식품 수입 중단 등 대책을 강구한다 했으나 3월 30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일본 경유 수입 식품 14건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일본이 출하 정지 대상으로 지정한 지역과 품목뿐 아니라 남쪽의 효고 현이나 북쪽의 홋카이도에서 들어온 품목도 있었다. 정부는 미량이라 괜찮다고 하지만 이미 인근 지역뿐 아니라 광범위한 지역으로 오염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물과 먹을거리마저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는 사태에 이르니 지진과 지진 해일로 인한 재난 수습과 피해 복구는 뉴스에서 조차 사라졌다.

규모뿐 아니라 천재지변에서 인간 활동에 따른 재난으로 그 성격이 바뀌며 사람들의 심리 상태마저 혼돈의 공포로 치닫고 있다. 3월 24일 후쿠시마에서 날아온 소식은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주변에서 재배되는 농산물과 유제품에 출하 금지 조치를 내린 다음날 이 지역에서 지난 30년간 유기 재배로 채소를 길러온 농부가 목을 매 자살한 것이다. 땅을 살려 양배추 유기 재배를 성공하고 유일하게 현 내 초등학교에 공급해온 그는 "아이들이 먹을 것이기 때문에 더 신경 써야 한다"며 전날까지도 영농 일지를 썼다고 한다.

무엇이 이런 농부의 자부심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일까? 희망과 용기마저 북돋우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섬뜩한 두려움이 인다.

 
▲ 유기 농업으로 재배한 먹을거리를 아이들에게 공급하던 한 농민의 자살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학교 급식에 공급된 지역 먹을거리를 먹는 일본의 학생들. ⓒ프레시안

1986년 4월 26일 새벽에 폭발한 체르노빌 원전은 히로시마 원폭의 400배에 이르는 방사성 물질을 뿜어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반경 30㎞ 이내 지역은 폐쇄되어 통제되고 있으며 해체 작업도 계속되고 있다. 주변 지역 2000여 명의 아이들은 갑상선암에 걸렸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방사성 낙진의 80%가 떨어진 벨라루스의 암 발생률은 영국의 50배에 달하고 전 국토의 4분의 1이 출입 금지 구역이 되었다.

반감기가 30년에 이르는 세슘 등 방사성 물질들은 지금도 유럽의 대기를 떠돌고 땅과 물에 내려앉아 있다가 생물에 농축되고 있다. 지난 주 국내 농가의 수출용 버섯에 대해 유럽의 바이어가 방사능 안전성 검사를 주문한 일이 있었다. 유럽에서는 이미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건으로 인하여 유제품 등에서 심각한 방사선 물질 오염 피해를 경험했고,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버섯이 벨라루스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여전히 나오고 있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한반도도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것이다.

이번 지진과 지진 해일은 재난에 대처하는 마음가짐과 방재에 힘써온 일본인들에게도 감당키 힘든 엄청난 재난이었다. 초기에 일본인 특유의 질서정연함과 시스템에 대한 순응은 그 고통을 기꺼이 함께 나누려는 나라 안팎의 온정과 함께 위안과 용기로 승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연이은 폭발과 방사성 물질의 누출, 이로 인한 두려움은 생명에 대한 존엄과 생존에의 용기를 절망의 공포로 억누르고, 비루한 사재기의 생존욕만 부추기고 있다.

하늘의 재난에 우리 인간들은 생명의 존엄과 상생의 활기로 용기를 내어 살아갈 힘을 얻고, 또 다른 재해에 대비해왔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을 채우려다 벌어지는 재난에는 그 시스템의 잘못을 파악하고 누군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끊임없는 책임 회피와 인재(人災)의 반복을 피할 수 없다. 엄청난 지진 해일이라 할지라도 눈에 보이고 가늠할 수 있는 상황과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성 물질 누출과 같이 보이지도 않고 가늠도 할 수 없으며 내가 직접 개입할 여지도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는 전혀 다른 것이다. 감당해야 할, 감당할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왜 이걸 감당해야하지 의문스러운 두려움은 다른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우리 세대 욕망의 산물이다. 나는 그저 전기만 쓰면 되고 생산과 관리는 관료인 너희들이, 전문가인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고 무책임하게 맡겨놓은 블랙박스이다. 우리 세대가 전기를 실컷 쓰고 버릴 테니 다음 세대는 알아서 핵폐기물을 잘 관리하며 살 거라고 물려주는 흉악한 유산이다. 언제까지 얼마나 원자력발전에 기대어 땅의 진실을 믿는 농부의 존엄을 죽일 것인가?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것은 생명의 존귀함, 다양한 사회적, 역사적 경험을 통해 깨달은 상생의 지혜이지, 우리도 어쩌지 못하는 죽음의 재가 아니다. 우리가 이 지구에 사는 마지막 세대가 아니라면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 초록발광 칼럼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405080124&section=03&t1=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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