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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1-04-07 11:23
핵발전, 우리시대의 스톡홀름 신드롬(이진우 상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6,188  
   우리시대의 스톡홀름 신드롬.hwp (19.5K) [19] DATE : 2011-04-07 11:23:51

핵발전, 우리시대의 스톡홀름 신드롬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진우 상임연구원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크레디트반켄(Kreditbanken) 은행에 강도가 들었다. 빠른 시간 내에 도주하는 데 실패한 은행강도들은 4명의 인질을 잡고 6일간 인질극을 벌였다. 여기까지는 여느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인질들은 자신들을 억류하고 협박했던 은행강도들의 폭력을 잊고, 그들과 정서적으로 교감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인질들은 은행강도를 제압하려던 경찰들에게 비협조적인 자세를 취하고, 사건 종료 후에도 그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한 여성 인질은 은행강도에게 애정의 감정을 갖게 되면서 약혼자와 파혼하기까지 이르렀다. 심리학자인 닐스 베예로트는 방송 중에 인질들이 생존권을 쥐고 있던 강자의 논리에 동화되면서 그들에게 충성하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와 그 이후의 국내 핵발전 논란을 보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예의 스톡홀름 신드롬이 생각난다. 돌이키기 힘든 상처를 안긴 핵발전의 근본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안전한가 안전하지 않은 것인가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발전에 관한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졌다던 일본이 바닷물이 들이닥친 것만으로 통제 불능 사태에 이른 것만으로도 안전 신화는 깨졌다. 인류가 가진 기술로는 핵발전의 구조적 위험요소를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 지금, 우리는 이제 질문을 다르게 던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금번 사태의 본질은 핵발전이 구조적으로 재앙수준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언제든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핵발전이 아닌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 방점을 찍어야 하고, 그건 핵발전을 버릴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논란이 아니고 그 이상의 것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라는 의미다.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는 전력수요량을 점검하여 수요량을 줄이고, 점차 에너지원을 전환하는 게 급선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사회적 부담이 적은 재생가능에너지원들은 아직 경제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기술발전 역시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전력량이 부족할까봐 또 다른 핵발전소를 만들자는 것은 필수적인 에너지 공급과 과잉 수요를 혼동케 하는 견강부회(牽强附會)에 불과하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오히려 안전 신화가 아닌 경제성과 효율성을 무기로 내세운 전력공급의 신화다. 논의는 거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현대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현존 에너지원 중 가장 효율성이 높은 핵발전은 필수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거기에다가 온실가스 배출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녹색’란 덧칠을 했더니 만사형통이다. 그 전략이 제대로 먹힌 듯하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방사성 물질이 날아드는 것을 걱정하면서도 대안은 있느냐고 따져 묻듯 머뭇거리는 걸 보니 말이다.

  핵발전이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성이 높은 에너지원이라는 건 “만들어진 신”이다. 발전과정에서의 경제성은 높을지 모르지만, 여기에는 화력발전소에 비해 수 배에 이르는 건설비용이나 이에 따른 대출이자, 폐기물 처리비용, 폐로 비용 등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들이 대출이자만 감안해도 핵발전의 경제성이 화력발전보다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쏟아낸 바 있다.

  핵발전이 녹색에너지라는 것도 허구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각 수단별로 온실가스 감축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봤을 때 핵발전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예상했다. 에너지효율을 통한 수요관리가 50~60%를 차지하고, 재생가능에너지가 20% 정도를 차지한다. 보수적인 국제기구에서조차 핵발전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은 힘들다고 강변한 것이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핵발전의 원료인 우라늄 원료 역시 한정자원인데다가 핵발전으로 줄일 수 있는 온실가스 양이 다른 기술적 대처에 비해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전세계적으로 사용후 핵연료를 처리하는 기술을 보유한 국가가 없고, 방사능 반감기도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이는 또 다른 환경파괴이자 세대 간 심각한 불평등을 낳는다.

  그렇다면 제일 중요한 에너지 공급량 문제는 어떠한가? 정부가 핵발전 확대를 주장하며 내놓은 에너지 수요 전망은 이미 지나치게 과대포장되었다는 지적이 수차례 쏟아졌다. 그간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경제성장을 이유로 에너지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주된 기조였고, 이로 인해 수요관리 정책은 항상 뒷전으로 처졌다. 전력가격을 다른 에너지원보다 훨씬 싸게 책정해 소비를 부추기고, 저소득층에게는 난방대책이라며 전기매트와 온열매트를 지급해주는 게 지금의 정부 정책이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전력 피크를 운운하며 핵발전을 조속히 확대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건 누가 봐도 난센스다. 에너지 문제나 기후변화 문제를 접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에너지집약적인 현대 문명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유한한 자원을 대책 없이 쏟아 부어야만 유지될 수 있는 문명이라면 그건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할 사안이다. 잘못된 문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우선 해결되어야만 한다. 아무리 개인적인 노력이 선행된다고 해도 구조적인 전환이 병행되지 않으면 언제건 문제는 다시 발생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집약적인 현대 문명의 중심에는 수요를 조장하는 잘못된 에너지체계가 있고 그 핵심에는 핵발전을 기본 전제로 만드는 심리 혹은 의도가 자리 잡고 있다. 공급이 아닌 수요관리와 재생가능에너지에 방점을 찍은 수많은 시나리오가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검토는커녕 논의조차 불가한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미 핵발전이라는 인질범들에게 동화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심리학자들은 스톡홀름 인질극 사건 이후 인질들이 인질범들에게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3단계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인질범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 것에 고마워하며 그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갖기 시작한다. 두 번째, 자신들을 구출하려 하지만 오히려 위험을 초래하는 경찰들에게 강한 반감을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인질들이 인질범들과 운명공동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것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이는 우리가 핵발전을 대하는 태도와 무서우리만큼 일치한다. 우리는 핵발전이 예전에 어떤 사고를 냈던, 우리의 땅에 어떤 괴물을 만들어놓던 상관없이 핵발전이 현재의 안정적인 풍요를 보장해준다고 믿고 있다. 핵발전의 위험성을 주장하며 에너지 수요를 관리하고 에너지원을 전환하자는 주장에 현실론을 거론하며 지나친 극단주의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머잖아 우리는 핵발전 외엔 대안이 없고, 전체 발전량의 60%에 이르는 핵발전이 우리가 꿈꾸던 ‘또 다른 세상’이라고 인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에너지정책의 전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진보 매체들의 기사에 “그럼 대안은 있냐?”며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은 정말 쓰다. 지금의 과잉 수요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암묵적으로 전제가 된 질문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이 일본을 어떻게 초토화시켰는지 보았으면서도, 유럽이 앞 다퉈 핵발전 정책을 재고하는 걸 보고 있으면서도 왜 유독 우리 사회만 여전히 안전한가 아닌가만 걱정하고 있는지.

  수천 년간 척박한 사막이었던 가비오따쓰를 열대우림으로 일궈낸 파올로 루가리는 이렇게 갈파했다. “사막이란 상상력이 고갈된 상태”이며, 우리에게 “진정한 위기란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상상력의 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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