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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1-05-11 18:07
고리 1호기를 역사로 만들자(엄은희 연구기획위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5,714  

"핵발전소 폭탄 돌리기, 고리 1호기를 어찌하리오"
[초록發光] 고리 1호기를 역사로 만들자

먹고사는 일을 찾아 부산으로 내려온 지 두 달이 지났다. 여행 삼아 방문해 본 것이 두어 차례 일뿐 전혀 연고가 없던 곳에서 생활을 시작한 후 좋은 점들을 떠올려봤더니, 그 중 두 가지가 자랑할 만하다.

첫째는 공기가 서울과는 비교가 안 되게 좋았다. 주관적인 관찰의 결과이지만, 바닷가라 그런지 대기의 순환이 상당히 역동적이다. 며칠 전 한반도를 뒤덮었던 황사의 영향은 부산도 매한가지였으나, 두 달 동안 잘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신선한 공기를 즐겼고 그에 따른 구름의 변화무쌍함을 많이 경험하였다.

두 번째는 내가 사랑하는 회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회를 먹는 일이-그러함에도 용감하게 잘도 먹고 있지만-점점 찜찜해 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후쿠시마 사고 때문이다. 그리고 한 달 뒤, 부산시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 1호기 핵발전소가 고장으로 가동이 중단이 되었다.

후쿠시마로부터 절대 거리야 한반도 전체가 비슷하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였지만, 심정적으로 일본에 더 가까운 부산에 거주한다는 것 때문에 불안감이 괜히 더 가중되었더랬다. 하지만 이번엔 기장이라니, 이건 이제 내 삶 터가 된 부산광역시의 일부가 아닌가.

급작스럽게 내 문제로 다가온 한국의 핵발전소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전국에 핵발전소가 얼마나 있는지, "한국 핵발전소는 안전하다"는 주장을 정말로 믿어도 되는지.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2005년 황우석 사건 때는 줄기세포 전문가가 되었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는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이란 어려운 병명을 학습해야 했으며, 이제는 핵발전소에서 대해서도 새로운 국민적 학습을 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늘 그렇듯, 정부는 안전하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동원된 전문가들의 수식이 동원된 안전 진단 설명은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에 충분치 못했다. 6개월이 500년 조선 왕조와 같다는 역동적인 대한민국에서 핵발전소에 대한 불안도 일상의 고단함과 당장의 책무들 사이에서 사그라져 갈 것인가?

이번 핵발전소 관련 사안은 그렇게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고리 1호기 사고 직후, 한국수력원자력 측에서는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 방사능 누출도 없다"며 3일 뒤 재가동을 공지했다. 하지만 수명 연장 후 지진 해일(쓰나미) 앞에 속수무책 폭발해 버린 후쿠시마의 전례 때문인지, 곳곳에서 시민들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다.

사고 직후 부산시 북구를 시작으로 연제구, 남구, 수영구의 구의회에서 "고리 1호기 폐쇄를 위한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해운대구의 한 구의원은 부산시청 앞에서 12일간 단식을 하며 고리 1호기의 폐쇄의 목소리를 보탰다. 또한 부산변호사회는 고리 1호기 핵발전소의 가동 중지 가처분 신청서를 부산지법에 제출한 상태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모여 "고리 1호기의 폐쇄"를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 중이다.

이번에 문제를 일으켰던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에 가동을 시작한 한국 최초의 핵발전소이다. 현재 나이 33살. 인간의 나이에서 33살은 한참 때이지만, 아쉽게도 고리 1호기는 이미 노쇠할 대로 노쇠한 상태이다. 설계 당시 운전 수명이 30년이었으니 2008년에 가동이 중단되고 폐쇄 수순에 들어가야 했으나, 2007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안전성 심사 결과에 따라 2008년 이후 10년 간 연장 운영이 결정됐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소개된 지역의 범위가 반경 30킬로미터에 달한다. 고리 1호기를 중심으로 반경 30킬로미터를 그려보니, 부산광역시청과 울산시청이 다 들어온다. 이 범위 안에는 사는 사람들의 수가 320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주민들의 불안과 지역 정치 차원의 폐쇄 요구에도 불구하고, 고리 1호기는 지난 5월 9일부터 또 다시 100% 풀가동에 들어갔다. 여름철 전력 수요를 예상하면 전력 생산은 현재적 필요의 영역에 존재하고,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의 위험은 미래의 가능성의 영역에 존재한다는 전문가들의 설명과 정부 측의 논리가 그대로 관철된 것이다.

생명 연장의 꿈을 위한 기술적 노력이 치열하지만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날은 끝이 있다. 하물며 사람의 기술로 만든 기계와 시설에도 당연히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나 역시 고리 1호기의 안전성을 정부 측의 설명대로 "믿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에서 살아가는 나의 일상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과 체계적인 점검으로 가능성의 영역에 존재하는 사고가 절대로 이 땅에서 발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이것도 길어야 7년이다. 어찌어찌해서 7년 동안 큰 고장 없이 쓰더라도 고리 1호기는 7년 후 2018년이 되면 폐쇄가 예정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는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 즉 핵발전소 철거 혹은 영구 보존의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한국수력원자력과 정부에서 고리 1호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수명 연장' 한 가지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그 순간 현 단계 인류의 기술 수준으로 처리가 불가능한 "끌 수 없는 불"의 실체가 드러나게 될 것이며, 지금까지 핵 발전의 경제성을 주장하던 계산에서 누락되었던 천문학적 폐쇄 후 관리 비용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온갖 상처를 임시 처방하며, 처리하기 어려운 핵폐기물을 더 많이 양산하게 될 핵발전소의 연장 가동은 멀리 있는 미래 세대가 아니라 바로 7년 후의 우리에게도 폭탄을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010년에 갑작스럽게 한국인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 '정의'와 '공정함'의 렌즈로 이 문제를 바라보자. 환경운동에는 '환경 정의'라는 개념이 있다. 전통적인 사회 정의가 사회적으로 생산된 이익의 공정한 분배에 관심을 가졌다면, 환경 정의는 환경 위험의 '사회적 부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다.

인간사가 이상적으로 정의롭다면 이익의 공정한 분배가 지켜져야겠지만, 이익은 기득권층이 더 많이 취하게 되고 위험과 부담은 소외된 계층이 더 많이 져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환경 정의 운동도 환경 위험 시설이 유색인종의 거주지에 집중되는 것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되었다. 경제 활동의 편익을 누리는 사람들과 결과적인 환경적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사람들이 계급적으로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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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펼쳐 한국의 핵발전소의 위치를 짚어보면, 한국 핵발전소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있음을 볼 수 있다. 핵발전소가 생산한 전기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핵발전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일부 지역의 사람들이 상당히 불공정하게 감당하고 있다. 특히 인구의 과반수가 살고 있는 수도권 지역엔 핵발전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익을 나누는 것과 달리 부담과 위험을 공정하게 분배하자는 주장을 사회적으로 펼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간혹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특수하게 믿고 계신 분들 중에서 관악산에 핵 폐기장을 짓자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기도 했지만, "추가적인 전기 수요가 필요하다면, 수도권 네 동네에 핵발전소 지어라" 하며 지역 간 대결 구도로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환경 정의를 떠받치는 세 가지 기본 원리에는 그래서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 외에도,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와 실질적 정의(substantive justice)가 있다. 절차적 정의는 환경 정책의 결정과 이행 과정에 민주적 참여, 특히 환경 위험을 과도하게 부담해온 사회적 집단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실질적 정의는 사회적ㆍ생물학적 차이에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이 환경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절차적 정의의 측면에서 봤을 때, 핵발전소의 문제는 이 시설이 위치한 단위 행정 구역의 문제일 수만은 없다. 위험과 동거하는 대가로 얼마간의 재정 지원과 보상이란 사탕에 길들여진 기장군의회는 부산의 다른 구들의 움직임과는 반대로 폐쇄가 아니라 오히려 "안정성 강화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사고 이후 고리 1호기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안전운전도 방해받고 주민들도 불안해 하니, 중앙 정부가 알아서 안전 대책을 내놓고 지원을 더 내놓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후쿠시마에서도 봤듯, 만약의 경우 기장군이든 부산 시내든 울산이든 위험의 여파는 다르지 않다. 의견 수렴과 참여의 범위가 기장군 외에도 부산과 울산을 포함하는 더 큰 범위로 확대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실질적 정의가 달성되는 것이 더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핵발전소와 핵 폐기장을 지역이 서로 떠넘기려는 NIMBY의 문제로 틀 지우는 것은 핵 발전의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무지한 계산의 결과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동 세대의 우리 모두가 미래의 가능성의 영역에 있을지라도 인간의 능력의 한계치 너머에 있는 치명적인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더 이상 더 많은 원전을 새로 짓고 그것에 쏟아 부은 매몰비용을 근거로 우리의, 우리 미래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 나의 주장은 간단하다. "설계 수명이 만료된 고리 1호기를 역사로 만들자." 그리고 진지하게 탈핵의 방향을 향한 사회적 토론을 시작하자. 이제 숨겨왔던 비용과 능력 부족을 고백하면서 이제는 폭탄 돌리기를 멈추고 타들어가는 심지를 잘라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엄은희 부산대학교 HK교수

* 초록발광 칼럼은 프레시안에 동시게재됩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511085131&section=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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