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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1-06-09 13:42
아메리카가 허락한 쓰레기장, 한국(이진우 상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5,959  

아메리카가 허락한 쓰레기장, 한국

 주한 미군의 고엽제 쇼가 점입가경이다. 경북 왜관에서 고엽제 약 50톤을 파묻은 사실이 드러난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부천에서도 화학물질을 대량 매립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1971년 비무장지대 고엽제 살포에는 민간인까지 동원했고, 거기다가 안전장비도 없이 손으로 살포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주한미군 주둔 역사가 1945년 처음 이 땅을 밟은 이후 66년에 이르고 현재도 전국에 산재한 미군부대가 70여개에 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충격을 감내해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세계화의 기수, 미군기지 환경오염

 각종 미군 범죄를 차치하더라도 미군부대가 주둔지에 저지른 환경오염 사건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이 네이팜탄 실험을 위해 사격장으로 활용했던 푸에르토리코의 비에케스 섬은 2003년 반환되면서 아무런 환경오염 정화 조치 없이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수십 년간 고농도의 화학물질 세례를 받은 섬에 야생동물이 얼마나 살아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구역지정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아예 사람의 접근을 막아 오염을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초등학생도 고개를 주억일만한 분석이 나왔고, 비에케스 섬이 무슨 화학물질에 의한 돌연변이 실험장이냐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비에케스 섬은 결국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출입이 제한되었다. 

필리핀에서는 더욱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1991년에 반환된 미군의 클라크 공군기지로 이주했던 주민 중 130여명이 암과 백혈병, 폐 질환 등 환경오염으로 인해 사망했다. 원인은 주둔 미군이 방사능 폐기물과 유독성 물질을 무단으로 매립해 지하수가 오염됐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2000년 주민들이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미군은 이들의 주장을 완벽하게 무시했다. 더 헤아리기 힘든 건 필리핀 정부 역시 안전한 정화 조치 없이 현재 클라크 미군기지 인근을 대규모 휴양지로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역시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2000년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부터 2001년 녹사평역 기름 유출 사건, 매향리 폭격장 중금속 오염 등 미군에 의한 환경오염 사건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 때문에 2001년 개정된 주둔군 지위협정(이하 ‘SOFA’)에는 환경오염에 관한 조항이 신설됐다. “대한민국 환경법령 및 기준을 존중한다”는 선언적 문구가 포함된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한국 정부는 향후 미군기지 오염 환경정화비용을 미국 측이 지불할 것처럼 홍보했지만, 같은 해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 양해각서’에는 미국은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이 어떤 위험이고, 어떤 수준인지에 관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이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공약에 불과한 것이다. 보수진영에서는 미국과 한국의 사이를 우방(友邦)을 넘어 맹방(盟邦)으로까지 표현하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주한미군의 태도는 사실상 점령군에 진배없다. “미군이 고엽제를 묻었을 리 없다.”는 고엽제 전우회의 사무총장의 발언은 너무 순진무구해 보일 정도다.

 

고엽제 250통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양.

경북 왜관에 파묻은 고엽제에는 다이옥신이 섞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이옥신은 1g 정도면 몸무게 50㎏인 성인 2만여 명을 사망시킬 수 있다. 이로 인해 다이옥신은‘악마의 선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왜관에 묻힌 50톤 정도면 다이옥신 약 1.5kg 정도가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단순히 계산해도 1.5kg이면 수백만에서 수천만 명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양이다. 게다가 다이옥신은 자연상에선 분해가 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반드시 안전한 폐기과정을 거쳐야 한다. 고엽제 매립을 방송했던 프로그램에서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 교수 피터 폭스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인근 지역의 지하수를 모두 뽑아내는 수밖에 없고 처리에도 5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관련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환경오염은 ‘실수’가 아니라 ‘범죄’기 때문이다. 1978년의 주한 미군이 당나라 군대가 아니라면, 분명 명령권자가 있을 것이고, 드럼통 250개 정도의 많은 양이면 분명 지휘관은 매우 높은 지위에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미국이 파묻은 고엽제의 양 정도면 거의 전쟁 범죄 수준이다.




 SOFA는 범죄를 야기하는 ‘깨진 유리창’

1969년 스탠포드의 한 교수가 두 대의 자동차를 길 가에 방치하고 한 대만 유리창을 약간 깬 상태로 두었는데, 1주일 뒤 다른 한 대는 멀쩡했지만 창문을 깨 둔 한 대는 고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망가진 것을 발견했다. 단지 창문이 깨졌다는 조건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범죄가 양산된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이라는 범죄 이론이 정립됐고, 지금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정책 중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에게 SOFA란 ‘깨진 유리창’이나 마찬가지다. 환경오염을 해도 된다는 잘못된 시그널이 금번 고엽제 매립사건을 비롯해 각종 환경오염 사건을 일으킨 주요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미군기지 오염과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때 파괴된 환경을 원상복원 및 보상할 의무가 없다’라고 명시한 SOFA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환경오염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염이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고엽제 매립사건은 반드시 SOFA의 개정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이 논점이 왜곡되는 순간 250개의 고엽제 드럼통은 역사의 뒤안길에 다시 매립되는 운명이 될 것이다.

미필적 고의? 운송 작업을 했던 트레일러까지 묻어버린 치밀함이 미필적 고의라면 한국은 아메리카의 쓰레기 하치장이 맞다. 창대하시라. 아메리카.


* 초록발광 칼럼은 프레시안에 동시게재됩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531152636&section=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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