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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1-08-05 14:14
'녹색 성장의 아버지'가 물폭탄을 못 막은 이유는?(이정필 상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5,879  
'녹색 성장의 아버지'가 물폭탄을 못 막은 이유는?
[초록發光] 자연재해와 녹색 정치

서울 서대문 로터리 인근 어느 낡은 건물 4층 옥탑에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사무실이 있다. 이번 물폭탄에 큰 수해를 입어 일주일가량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 비판하던 석탄 화력 발전소와 핵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한국전력공사 전기라도 막상 쓸 수 없으니 연구소 업무가 마비됐다. 컴퓨터 등 온갖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탓에 노트북을 들고 인근 북 카페로 피신할 수밖에 없는 이재민 신세가 됐다. 그러나 이 정도 피해는 이번 물난리의 참상과 견줘보면 별 거 아닐 게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천재((天災)의 배후에 있는 인재(人災)가 논란이 되고 있다. 후쿠시마 핵 발전 폭발 사고와 마찬가지로 허점투성이인 방재 대책이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공공 기관 간의 책임 떠넘기기와 사후약방문격인 재발 방지 약속을 믿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한번 위험이 발생한 곳에 또 위험이 발생하는 한국 사회. 인재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핵 발전이야 (단계적으로) 폐기하면 핵에 내재한 위험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에너지 믹스(mix)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지난한 대립과 갈등을 피할 수 없겠지만, 해결 방법은 있는 셈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발생하는 이상 기후는 이미 일상 기후가 될 정도로 기후 변화 자체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가장 보수적인 수치인 2도 상승이라는 기후 안정화의 목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따라서 온실 기체 배출을 감축해 기후 변화를 '완화'하는 일 못지않게 변화된 기후 시스템에 '적응'해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 성장'이 '삽질'임을 보여준 세 번째 증거가 바로 이번 폭우 사태에 대한 적응력 부재이다. 4대강 토목 공사와 핵 발전 확대 정책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실체였다면, 아열대 기후 부적응이 이번 사건을 더 키웠다. 과거와 같은 국토 관리와 도시 계획과 안전 대책이 일상화된 기후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건국 이후 최초로 '녹색'을 천명한 이명박 정부는 역설적이게도 산, 나무, 토양, 물로 상징되는 '녹색' 때문에 부자 동네가 초토화되는 비상 사태를 지켜봐야 했다. 그곳에도 노아의 방주는 없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는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2주 전에 한국의 '기후 변화 안정성 및 적응력 지수'를 발표했다. 한국은 기후 변화에 얼마민감한지를 나타내는 안정성 평가에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25위고, 얼마만큼 잘 대처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적응 능력은 20위다. '선진화'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각종 경제 지표에 비해 초라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다른 유사한 평가들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다.

이 기관들은 작년에 기후 변화의 영향이 지역별로 격차를 보이는 '국지화 현상'을 보여주는 16개 시·도 광역 별로 '기후 변화 영향 및 적응 역량 종합 순위'를 발표했다. 이번 수해 지역인 경기도와 서울의 순위를 보면, 경기도는 6번째로 기후 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5번째로 높은 적응 역량을 갖추고 있고, 서울은 15번째로 영향을 적게 받지만, 13번째로 적응 역량이 낮다.

이런 조사가 이번 사태에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 평가하기는 쉽지 않지만, 사실 이러 저러한 기후 변화 적응에 대한 연구·조사는 많은 편이다. 2009년 발표한 '녹색 성장 국가 전략 및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2010년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이 수립되고, 올해 말까지 광역 별로 세부 시행 계획을 마련하기로 되어 있다. 이번 일로 서울시는 '이상 기후 대비 체제'를 갖춘다고 한다.

ⓒ프레시안(손문상)
이대로만 보면 뭔가 잘 될 것 같다. 재난을 관리하기보다 우선 재난 관리를 시급히 관리할 시기인 건 사실이다. 그런데 다음 네 가지 문제를 떠올리면 낙관하긴 힘들다. 첫째, 사회적 논란이 되고 불요불급한 사업들은 강행하더니 정작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초래한 적응 사업은 늑장을 부렸다. 수해 복구가 채 끝나기도 전인 지난 27일 '녹색 성장의 아버지'라로 자화자찬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에 폭우 사태가 가을이 되면 또 다시 잊힐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제발 솔직하게 부끄러워하시길 바란다.

둘째, 2018년에 기후 변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환경 위성을 띄우는 것도 좋고, 적응 시범사업을 전국 10곳에서 실시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위성 사진이 없어서 물벼락을 맞은 것이 아니다. 또 10여 곳의 지자체는 이미 '기후 변화 대응 도시 시범 도시'이고, 송파·서초·강남구도 기후 변화 관련 조례를 제정하거나 종합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무용지물인 자전거 도로 등 전시 행정 탓에,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방기 탓에 안타까운 인명 피해를 낳았다.

셋째, '이상 기후 대비 체제'에 하수관거 재정비 등 필요한 사업이 분명 들어가 있다. 그러나 땅과 산을 파헤치고 '공구리' 치는 공사로는 또 다른 형태의 위험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생태계와 조화롭게 사는 것이어야지 조경석옹벽 같은 인공적 환경을 구축하는 방식이 지속가능할 리 없다.

넷째, 아무리 기후 변화에 적응이 중요하더라도 적응만 강조하면, 적응을 위한 인간 거주지의 요새화만 계속된다. 적응이 적응을 낳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기후 변화 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소극적 감축 목표와 친기업적 감축 할당으로 현 정부에게 거는 기대치가 낮지만 말이다.

이상의 네 가지 측면에서 현 정부 뿐 아니라 노무현 정부도, 김대중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생태 파괴적 국토 계획과 도시 계획은 이들의 가짜 녹색 정책으로 가능했다. 여름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내년과 내후년에도 여름은 온다. 기후 변화는 폭우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광우병, 구제역, 핵 발전 등의 논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 주변에는 경제 성장 지상주의와 사이비 지속 가능성이 판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 녹색 정치이다. 껍데기는 가라.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 초록발광 칼럼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80507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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