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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2-04-16 13:21
4·11 후폭풍, 진짜 주인공은 박근혜가 아니다!(한재각 부소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7,094  

4·11 후폭풍, 진짜 주인공은 박근혜가 아니다!

[초록發光] 배달 사고가 난 후쿠시마 경고

패배다. 지나친 기대에 따른 실망이며 지난 선거 때보다 나아졌고, 오히려 국민들이 야권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것이라는 낙관적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넘어야 할 수많은 산을 앞두고, 힘을 잃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는 격려와 자기 다짐에 가깝다. 그렇다고 패배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의 괴력 앞에 혀만 두르고 있을 일이 아니다. 왜 패배했는지를 냉철히 따져 물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운명을 가를 대선을 앞두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많은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정권 심판과 야권 연대에만 매달려 자기 쇄신도 없고 새로운 비전과 정책도 제시한 것이 없었다. 상호 비방과 막말만 있었을 뿐이다. 그 결과는 낮은 투표율이다. 냉소적인 시민들을 일으켜 세워, 투표장으로 불러내고 세상을 바꾸는 투표를 행사하도록 이끌지 못했다는 것이다. 강간 미수범이나 논문 표절자들까지 당선시켜줬다며 유권자를 욕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며, 동의할 수 있는 평가다.

입만 열면 정권 심판과 교체를 떠들어 왔지만 스스로 지지받은 준비가 되지 않았던 구태의연한 민주통합당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 또 정책 이슈를 선도하고 민주통합당을 견인해야 했지만 선거 승리에만 매몰된 통합진보당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이쯤에서 멈추자. 맞은 매가 이미 충분했다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한참 남았겠지만, 다른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는 말이다. 달리 이야기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왜 패배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패배했는지 그리고 누가 패배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모두들 안타깝다는 인사말을 아끼지 않는 진보신당과 녹색당의 패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허용해주지 않은 청소 노동자와 탈핵 운동가의 국회 입성 실패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야기해야만 한다.

가장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일하며 불의에 맞서 싸워 온 청소 노동자, 김순자는 무엇이 정의인지 당당히 이야기했다. 왜 청소 노동자의 급여와 기업 CEO의 급여가 수십 배, 수백 배의 차이가 나야 하는지 물었다. 당연히 의문시되어야 했지만 이제껏 금기시되어 왔던 질문을 망설임 없이 꺼내들면서, 우리 사회를 일깨웠다. 그러나 그녀는 국회가 아니라 다시 일터로 돌아가고 말았다. '배제된 자들의 서사'를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안타깝다고만 이야기할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무엇을 걷어찼는지 명확히 짚어야만 한다.

솔직히 청소 노동자와 함께 꼭 국회에 입성할 수 있기를 바랐던 또 한명의 후보가 있었다. 탈핵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나선 녹색당의 비례 대표 1번 이유진. 그녀의 좌절은 후쿠시마의 경고가 충분히 많은 수의 시민들에게 배달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핵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표 행위가 조직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잦은 고장에도 불구하고 30년의 수명을 넘겨서까지 운전되고 있는 낡은 고리 1호기를 멈춰 세우는 일도,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핵발전소 추가 건설과 수출 정책을 막아서는 탈핵·생명의 정치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는 고리 1호기 인근에 거주하는 360만 명의 생명을 구할 기회를 잃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패배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지 못한 것에만 있지 않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의 뿌리를 캐며 핵 공포로부터 벗어날 단초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 더 뼈아픈 것이며, 더 중대한 패배다. 무엇에 패배했는지 모른 채, 무작정 승리의 방안을 찾아 나서는 것이 우리에게 더욱 큰 패배를 안겨다 줄 것이다.

후쿠시마의 교훈이 배달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실 대규모 배달 사고가 있었다. 후쿠시마 핵 사고를 지켜보면서 한국도 핵 발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광범위한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핵 발전의 대안이 부재한다거나, 특히 아랍에미리트 수출 계약 이후 국익과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그간의 여론이 반전되기 시작하였다.

핵 발전의 위험을 경고하고 대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광범위한 사회 운동의 연대가 형성되면서, 각성된 시민들이 조직되고 동료 시민들을 규합시켜 나갔다. 3월 10일 후쿠시마 1주년을 맞이해서 개최된 대규모 탈핵 집회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이것을 정치적으로 대변하고 기존 정당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낼 정치인 혹은 정당이 필요했다.

탈핵을 기치로 내건 녹색당이 창당하였고, 진보신당과 통합진보당이 탈핵 정책을 천명하면서 이에 호응했다. 민주통합당도 핵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개정 강령을 채택하기까지 했다. 바야흐로 선거 공간을 통해서 각 정당들이 후쿠시마의 교훈들을―비록 다양한 수준과 방식이겠지만―시민들에게 배달할 때가 왔다. 그러나 급격히 정책 선거의 공간이 줄어들었고, 그 이유에는 야권 연대도 한 몫 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 연대 합의문에서 통합진보당의 2040년 탈핵 시나리오가 사라졌다. 그리고 민주통합당은 녹색당이 지역 후보를 낸 경상북도 영덕·울진·봉화·영양 지역구에 찬핵 인사를 공천했다. 배달할 물건을 다 만들어 놓고도 배달하지 않았거나 엉뚱한 물건을 배달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비례대표 1번으로 여성 핵과학자를 공천했을 때, 그것을 여당의 핵정책을 비판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지 않았다. 그녀도 고리 1호기의 무리한 수명 연장 결정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어느 당도 이점을 쟁점으로 만들지 못했다. 통합진보당 대표 이정희의 부정 선거 논란과 민주통합당 후보 김용민의 막말 파동에 대응하기에 급급했을 뿐이다.

다행히 통합진보당은 비례 후보로 환경운동가 김제남을 선출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대규모 배달 사고를 막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신생 정당 녹색당과 원외 정당 진보신당으로는 대규모 배달 사고를 막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마나 정당 투표에서 녹색당을 지지한 10만 명의 시민들만이 온전히 탈핵 주장을 표로 의견을 드러내고 결집할 수 있었을 뿐이다.

10만 명. 한국의 탈핵 운동이 집결시킬 수 있는 표의 규모를 보여주는 숫자다. 새로 시작한 녹색당원들에게는 이마저도 소중한 자산이기는 하지만, 당장 고리 1호기를 중지시키고 신규 핵발전소를 취소시켜야 할 절박한 이들에게는 안타깝고 어쩌면 치명적인 숫자일지도 모른다. 찬핵론자들이 보기에는 반핵 운동이 후쿠시마로 호들갑을 떨었지만, 결국 반핵 운동의 지지자들의 규모는 투표자의 0.48퍼센트에 불과한 소수일 뿐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야권 연대에만 매달리고 정책 선거를 포기하면서 국민들의 안전보다는 국정 운영의 안정성을 먼저 고려한 민주통합당과 그 파트너인 통합진보당의 대규모 배달 사고 때문이 크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탈핵운동 진영과 녹색당(그리고 진보신당)에게 마주 선 장벽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셈이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 기사원문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41512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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