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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2-05-17 15:25
배출권 거래제, 정치학이 필요하다!(김병윤 연구기획위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6,087  
삼성 저격수 박영선, 배출권 거래제에서는…
[초록發光] 배출권 거래제, 정치학이 필요하다!
 

지난 2일 국회는 '온실 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 따르면 2015년부터 기업들은 온실 기체 배출 목표량을 할당받은 후, 이를 탄소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다.

탄소 배출량 감축에 실패한 기업들은 시장에서 배출권을 구매해서 초과 배출분에 대해서 권리를 확보하지 않으면 과징금을 지불해야 한다. 일명 '캡앤트레이드(cap-and-trade)'라는 방식의 배출권 거래제는 한 국가의 주요 오염 유발자들이 배출할 수 있는 탄소의 총량을 설정한다는 면에서 총량 규제의 측면을 갖고 있지만 오염 유발자들이 자발적으로 감축한 만큼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근본적으로는 시장 기반 규제이다.

미국에서는 교토 의정서의 비준을 거부한 부시 행정부를 압박하기 위해서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배출권 거래제를 옹호했다는 점 때문에 배출권 거래제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대안으로 생각되곤 한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일부 환경 단체는 배출권 거래제가 총량 규제의 측면이 있고, 기업들이 반대하고 있으며, 다른 대안을 모색하기에는 전 지구적 기후 문제가 시급하다는 점을 들어 배출권 거래제의 도입을 진보적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배출권 거래제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그것이 함축하는 가정들을 생각해 보면 환경 규제에 대한 진보적인 입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배출권 거래제의 클리셰

흔히 배출권 거래제에 대한 논의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1969년 존 데일스가 '오염, 재산, 가격(Pollution, Property, and Prices: An Essay in Policy-Making and Economics)'에서 처음 아이디어를 냈고 1990년 미국의 산성비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청정대기법(Clean Air Act)에 도입되어 성공을 거두었다는 식이다.

그러나 배출권 거래제라는 하나의 경제학적인 정책 도구가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기후 정치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그리 흔하지 않다. 어떻게 하나의 경제학적 도구가 사회 문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치가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탁월함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정책 도구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행위자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네트워크 형성의 정치적, 사회적, 지적, 물질적 과정을 동시에 고려해서 파악해야 한다.

배출권 거래제는 총량 규제나 세금 방식의 환경 규제에 대한 반작용에서 시작되었다. 정부가 오염원들에게 배출량을 규제하려는 방식은 규제에 소요되는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실제 규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패 등의 문제를 내재하고 있었다. 1960년대에 들어 법경제학이 대두되면서 상황은 변화한다.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가 정부가 규제를 하는 것보다 소유권을 명확하게 해주면 시장이 발생해서 당사자 간의 거래를 통해서 명령-통제의 경우와 동일한 결과를 더 낮은 비용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전개했고 학계에서 지지를 확대해 나갔다.

상쇄 개념의 등장

미국에서 환경 정책이 제도화된 것은 이보다 늦었다. 1963년에 청정대기법이 만들어졌으며 1970년에야 미국 환경청(EPA)이 설립되었다. 청정대기법은 대기오염 수준을 적정하게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대기 질에 대한 표준을 제시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서 기업들의 유해 물질 배출량을 측정하고 통제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었다.

배출량 통제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기 전부터 기업들과의 대립이 예상되었고 환경청은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모색했어야만 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의 소송 체계는 정부의 규제 능력을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 단적으로 발암 물질인 벤젠을 규제하려는 산업안전보건청(OSHA)의 시도에 대해서 기업들은 규제가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을 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공적으로 무력화시킨 바 있다. 이후, 미국에서는 독성 화학 물질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방법인 위해성 평가(risk assessment)를 사전에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 제도화되었다.

기업의 이해관계를 수용하기 위해서 미국 환경청은 1972년에는 "거품 개념"을 제시했다. 이 개념은 기업에게 오염 물질 배출의 절대량을 줄일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유연성을 부여하고 기업들이 전략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제도의 효시였다. 예를 들어 하나의 기업이 두 개 이상의 사업장을 갖고 있을 때, 하나의 사업장은 오염 물질을 기준치 이상으로 배출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기준치 이하로 배출할 경우, 서로 상쇄(offset)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쇄 메커니즘은 1977년에 청정대기법에 포함되었다. 또 이런 유연한 규제는 점차 환경청의 표준적인 규제 방식이 되었다. 어떤 연구자에 따르면 "상쇄 정책은 기회의 창을 열어주었다"며 "환경청의 개혁가들이 적어도 인센티브와 유사한 대안적인 통제를 모색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초기부터 시장을 활용한 규제는 더 효율적이고 규제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정치적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었다.

산성비 프로그램의 등장

널리 알려진 대로 미국 산성비 프로그램(US Acid Rain Program)은 배출권 거래제가 실제로 작동하는 프로그램으로 제시된 중요한 사례였다. 산성비 프로그램은 환경에 대한 규제가 더 시장 지향적으로 전환되는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정책이나 혁신이 그러하듯 이러한 시장주의적인 대안이 처음부터 쉽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초반, 레이건 행정부가 기업 친화적인 정책들을 내놓고 있을 때, 산성비에 대한 대안들은 반시장, 반기업적으로 여겨졌고 아무리 시장주의적인 방식의 유연한 정책이라도 의회나 행정부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런 상황은 1987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의 <우리 공동의 미래>가 출판되면서 국제 환경 문제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고,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더불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비당파적인 환경 분야의 정책 그룹을 자처했던 '프로젝트88'은 기업, 환경 단체, 정부, 학계의 자문을 받아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시장의 힘을 활용하자(Harnessing market forces to protect the environment)'라는 보고서를 선거 이전에 발표하면서 환경 문제를 정치적인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적인 문제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특히, '프로젝트88'은 기업가들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면서 기업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대선 이후에 '프로젝트88'은 '캡앤트레이드(cap-and-trade)' 시스템으로 배출권 거래제를 구체화했다. 산성비의 원인으로는 석탄 등에 포함되어 있는 황에서 야기되는 이황화탄소가 지적되었고 이를 감축하기 위한 탈황 설비를 구축하는 방안이 주된 대안으로 여겨졌다. 부시 행정부는 '프로젝트88'의 견해를 받아들였고, 1993년에 법안이 통과되었으며 1994년에는 이황화탄소에 대한 시장이 형성되었다.

매끈한 현실을 가정한 경제 이론에서 시작된 배출권 거래제는 복잡다단한 실제 현실로 진입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배출권을 어떻게 할당할 것인가라는 배분의 문제와 오염시킬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는 배출권 거래제의 윤리적, 정치적 함의였다. 소수 전문가의 논의 대상이었던 배출권 거래제가 보다 넓은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예를 들어 동부의 여러 주들에서는 황 함유량이 높은 석탄을 포기하는 대신 탈황 설비를 설치하는 경우나 황 함유량이 높은 탄광에서 일하다가 실직한 노동자들을 보조하는 경우에 배출권을 추가로 부여했다. 이런 추가적인 보완은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되었지만 처음에 약속했던 경제학적인 엄밀함과는 거리가 먼 자의적인 배출 총량 및 배출권 할당 등의 문제로 비판받았다.

배출권 거래제의 확산

1990년대 들어 배출권 거래제는 미국 환경 정책의 도구로 널리 수용되었다. 1994년 미국 환경청은 전국 대기 질 표준을 달성하기 위해 시장 기반 규제를 활용할 것을 각 주정부에 명시적으로 요구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질소 화합물과 이황화탄소를 감축하기 위한 정책(Regional Clean Air Incentives Market, RECLAIM), 미국 북동부 지역의 아홉 개 주가 참여했던 질소 화합물을 규제하기 위한 프로그램, 시카고 지역에서 실행되었던 휘발성유기화합물 거래 제도 등이 있다.

산성비 프로그램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생태적, 경제적인 측면에서 모두 성공이었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이런 성공은 단지 배출권 거래제라는 도구 그 자체의 우수성으로 돌릴 수 없는 예상하지 않았던 요인들에서 기인한다. 우선, 1980년대의 철도 민영화로 인해 철도 요금이 상당히 감축하면서 예측했던 것보다 황 함유량이 적은 석탄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로 인해 탈황 시설에 대한 대안으로 황 함유량이 낮은 석탄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 배출권 거래제와 같은 시장주의적인 정책 도구가 도입되면서 이런 생각들이 "오염시킬 권리"를 준다는 식의 논쟁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워졌다.

유럽으로 넘어간 배출권 거래제

흥미롭게도 배출권 거래제를 전 지구적 기후 정책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게 된 데에는 초국적 기업들의 노력이 있었다. BP와 셸 같은 초국적 정유 회사들이 배출권 거래제를 수용하는 데에 적극적이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동의하면서 점차 정착되었으며 덴마크와 영국에서는 국가적 수준의 이산화탄소에 대한 배출권 거래제를 실시하면서 배출권 거래제는 점차 기후 정책의 핵심적인 도구가 되었다.

유럽은 처음에는 배출권 거래제에 부정적이었다. 영국과 노르웨이에서는 배출권 거래제가 1990년대 후반에 제안되었지만 부정적인 여론에 밀려 입법화되는 데에 실패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오염 유발자를 면책해주는 데에 따르는 윤리적, 정치적 문제 때문이었다. 유럽에서는 1990년대까지도 명령-통제식 규제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배출권 거래제에 대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을 때에 유럽연합(EU)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배출권 거래제를 수용했다. 곧 이 제도는 유럽연합 차원의 정책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배출권 거래제에 이해관계를 갖는 회계사, 법률가, 컨설팅기업, 학자들의 네트워크가 생겨나면서 배출권 거래제에 대한 논의는 점차 심화되어 갔다.

대표적으로는 컨설팅기업, 은행, 중개인, 거래소, 위험 관리 전문 기업 등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국제 배출권 거래 협회(The international Emission Trading Association)가 결성되어서 배출권 거래제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려는 범세계적인 로비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제는 단지 배출권 거래제는 환경 정책의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서비스 경제"의 핵심적인 요소로 광고되기에 이르렀다.

1999년, 덴마크에서 세계 최초로 도입된 배출권 거래제는 전력 산업의 민영화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으며, 영국에서는 초국적 기업들이 탄소세에 대항하기 위해서 '배출권 그룹(Emission Trading Group)'을 결성해 배출권 거래제와 같은 자발적인 규제를 옹호하기도 했다. 이들은 영국이 배출권 거래제에서 앞서기만 하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영국이 앞설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결국 영국은 2002년에 '배출권 그룹'이 제시한 제도를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유럽연합에서 2001년 제시한 EU-ETS(emission trading scheme)는 배출권 거래제를 가장 유력한 기후 정책의 하나로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삼성 저격수 박영선, 배출권 거래제에서는?

▲ 박영선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의 상황은 논의의 부족과 선입견의 과잉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한국의 기업들은 배출권 거래제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준비를 하고 있을지라도 표면적으로는 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배출권 거래제의 도입 여부를 둘러싼 논쟁 구도에서 일부 환경 단체들은 배출권 거래제를 옹호하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이런 가운데, 탄소세나 배출권을 기업이 아니라 개인에게 할당하자는 다른 대안들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가 배출권 거래제를 지지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에 반대하는 정치인도 있다.

5월 2일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민주통합당 박영선 의원의 발언은 이를 잘 보여준다. 평소 강한 재벌 개혁을 주장했던 박영선 의원은 정작 배출권 거래제를 놓고는 기업 편에서 목소리를 냈다.

박영선 의원은 "업계의 합의를 끌어내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전제하고 나서, 배출권 거래제에 반대하는 이유를 "그 당시에 대통령께서 코펜하겐인가 어디 가신다고 거기에 공적 세우려고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무조정실에서 책임지고 이것을 어떻게 하겠다고 그러면서 나중에 사후 보고를 하시겠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며 이명박 정부의 "한 건 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제가 제 손으로, 법사위 2소위 위원장으로서 그때 하도 대통령이 코펜하겐 가신다고 생색 좀 내게 해달라고 그래서 문제가 있는 것 알면서 두들겨 드린 법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박영선 의원은 "이산화탄소를 줄이면 그만큼 제조업 타격이 오고 수출에 문제가 생기거든요"라며 기업 측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 박 의원의 에너지 및 기후 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은 알기 어렵지만 적어도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기업 편이었다.

배출권 거래제의 정치학

앞서 살펴본 배출권 거래제의 역사는 배출권 거래제를 단순한 경제 이론의 응용으로만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배출권 거래제가 실현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집단들이 형성될 수밖에 없으며 이들의 이해관계가 관철되는 과정이 배출권 거래제의 역사였으며 그렇게 형성된 현재의 배출권 거래제는 박영선 의원의 '현실적인' 판단과 달리 국제적 수준, 또는 중기적 관점에서는 한국 기업들의 이해와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으며 한국의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상당수의 대기업들은 이미 배출권 거래제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

배출권 거래제가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국에서 관련 제도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새로운 정치의 영역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환경 운동, 기업, 정부의 역할과 환경 규제에 대한 태도들이 재편될 수 있다. 쉽게 눈에 들어오는 배출권 거래제의 경제학은 배출권 거래제를 실현하는 데에 정당성의 기제로 작동하지만 실제 집행 과정은 경제학에서 가정했던 것 같은 그런 매끈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로 인해 자의적인 요소들이 포함되며 정치학의 대상이다.

해럴드 라스웰의 정치에 대한 정의는 배출권 거래제의 정치학을 바라볼 때에도 적용된다.

"정치는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가지는가의 문제다(Politics is who gets what, when, an how)."

참고 문헌

Jan-Peter Voss (2007), "
Innovation processes in governance: the development of 'emissions trading' as a new policy instrument," Science and Public Policy 34(5), pp.329-43.


/ 김병윤(서강대학교 기술경영연구소 연구교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 초록발광 칼럼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51706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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