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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2-06-15 12:07
문재인, 핵발전소로 지구 정복? (이진우 상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5,884  


문재인, 핵발전소로 지구 정복?
[초록發光] 핵발전소 수출은 범죄다

얼마 전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일본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통합진보당의 종북 논란과 관련해 밝힌 입장이 화제다.

"누가 국가관을 심사할 수 있느냐. 국가관을 심사해서 제명하는 데는 반대한다."

다분히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의 국가관 발언을 겨냥한 듯 보인다. 나도 국가관을 심사하는 데 반대한다. 사상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국가관을 검증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촌스러운 거다. 대꾸할 가치도 없다. 그런데 대선 주자들의 세계관은 심사 좀 해야겠다. 핵발전소로 지구 정복. 뭐 이런 거 나오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웬 지구 정복?

같은 자리에서 문재인 고문은 핵발전소 축소를 언급했다. 대안은 재생 에너지밖에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새누리당이 대표적인 원자력공학자를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진출시킨 상황을 감안하면 야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가 핵 발전 축소를 언급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또 고리 핵발전소 가동 중단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조경태 의원도 대선 출마 선언과 함께 핵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고 천명했다.

대선 출마 선언을 앞둔 야권의 다른 대선 주자들 역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제야 그나마 제대로 된 에너지 정책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여당과의 정책적 차별로 대선 관전 포인트가 하나 더 늘었구나 하는 즐거움이 앞선다. 어? 그런데 이게 뭔가!



문재인 고문이 핵발전소 축소와 핵발전소 수출은 별개란다. 문재인 고문은 핵발전소를 축소해야 하는 이유로 "핵발전소가 안전하지 않고, 폐기 비용을 고려하면 저렴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그런데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은 걸 다른 국가에 수출하는 건 괜찮다는 게 과연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더 나아가 문재인 고문이 에너지 정책에 대한 뾰족한 생각 없이 그냥 자리에 맞춰 맞장구를 쳐준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탈핵이 필요한 이유나 상황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핵발전소 사고는 대표적인 월경성 문제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낙진은 7000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우리나라에도 찾아왔다. 영국의 유명 축구클럽의 선수였던 불가리아의 마르틴 페트로프는 얼마 전 급성 백혈병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인데 주치의는 체르노빌 사고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페트로프가 자란 지역은 체르노빌과 약 1000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이었다. 후쿠시마와 우리나라 동해안 사이의 거리와 일치한다.

우리나라에서 탈핵을 한다 해도 외국에서 핵발전소를 지어대면 그건 의미가 없는 일이다. 위험 요인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특히 동북아시아는 최악의 핵발전소 지대다. 2010년, 2011년 사이 한중일 3국에서 운영 중인 핵발전소는 총 88기에 이르고, 건설 중이거나 건설 계획으로 있는 핵발전소는 241기나 된다. 중국이 188기의 핵발전소 증설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문재인 고문의 핵발전소 수출이 아랍에미리트를 염두에 둔 것인지 향후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자기 목에 들이댄 칼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다면 핵발전소 수출이 별개라는 인식은 핵발전소를 수출 동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에서 핵발전소가 담당하고 있는 비중은 고작 2퍼센트 남짓에 불과하다. 핵발전소가 발전소로서 매력이 적다는 방증이다. 2011년에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핵발전소 수출 산업화 전략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 핵발전소 신규 건설 개수를 430개로 잡고, 이중 약 20퍼센트를 한국에서 수출하겠다는 계획을 잡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어처구니없는 환상에 불과하다.

핵발전소 수출에 대해서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은 이런 정부의 청사진을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는 의혹이 짙다. 정부 말대로라면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매월 2개 이상의 핵발전소가 지어져야 하고, 우리나라는 분기별로 하나씩 핵발전소를 수주해야한다는 소린데 이런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시나리오를 정말 믿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오히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에 대한 수요는 더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수출 동력으로 핵발전소를 생각한다는 건 심각한 착오다.

문재인 고문의 발언이 전해진 이후 대표적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과 녹색당에서 각각 논평을 냈다. 두 조직 모두 핵발전소 축소 입장에 대해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아쉽게도 거기에서 끝났다. 핵발전소 수출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거나 녹색당이 짧게 "핵발전소 수출을 별개라고 말한 것은 유감"이라고 말한 건 정말 유감이다.

이건 화를 내야할 문제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음식이 불량식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 가족에게는 안 먹여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팔겠다고 얘기했는데 화가 나지 않는단 말인가. 작년에 기후 변화 피해 사례를 조사하러 타이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화력발전소 건설 반대를 하고 있는 주민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타이에도 핵발전소 건설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이 이런저런 질문들을 적극적으로 던져댔다.

한국은 현재 미래 성장 동력으로 핵발전소 수출에 사활을 걸고 있고, 한국 정부는 핵발전소가 깨끗하고 안전하다며 홍보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돌아온 대답이 명쾌했다.

"그게 그렇게 좋은 거라면 딴 데 팔려고 하지 말고 그냥 당신들이나 가져라. 우린 필요 없다."

문재인 고문이 17일에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고 한다. 핵발전소 수출은 별개라는 말에 대해 확실히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핵발전소 수출이 필요하다고 건의한 담당자는 부디 해고하시길 바란다. 아니면 난 문재인 대권 후보의 세계관은 '핵발전소로 지구 정복'이라고 확 말해버릴 게다.

* 본 칼럼은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 기사 원문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61507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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