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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2-08-16 14:12
전력 위기, 어떻게 극복할까(박진희 소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5,206  
원전 없이는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초록發光] 전력 위기, 어떻게 극복할까


일상에서 거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전기가 어느새 한국 사회가 직면한 큰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 전기 공급의 40퍼센트 가까이를 담당하고 있는 핵발전소들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로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을 둘러싼 갈등은 사회의 핵심 갈등 사안이 되고 있다.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해결을 시도하게 끔까지 몰아간 밀양의 고압 송전로 건설을 둘러싼 갈등도 여전히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작년(2011년)부터는 전력 대란 위기가 현실화되면서 정전 대비 위기 대응 훈련도 시행되기 시작했다. 전쟁 위험에 대비하는 민방위 훈련과 마찬가지의 전국적인 훈련이 전기 때문에 제도화되었다. 전기 생산과 송전, 이와 연관된 전력 대란 위기라는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기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전기 문제 해결 노력은 기술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전력 대란의 문제를 2014년에 신규 발전소가 가동되면 해결될 수 있는 전력 설비 확대 문제로 축소하고 그 시점까지 위기 대응 훈련이라는 임시적인 대응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로 제기되고 있는 핵 발전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내진 설계 강화, 수소 제어 설비 보강 등 안전 기술 설비 강화로 대처하고자 한다.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대량의 전기를 송전해야 할 필요 때문에 가설되고 있는 초고압 송전로 건설은 전력 공급을 위해서는 반드시 설치되어야 할 인프라임을 내세워 지역 주민들의 반대를 일방적으로 잠재우려하고 있다. 이런 정부의 기술적 대응은 이들 문제를 대하는 시민 사회의 인식과 크게 어긋나고 있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전 설비의 강화로 핵발전소에 대한 시민들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을까?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시민들은 그동안 편리함 속에서 잊고 있던 전기 생산 과정에서의 불평등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값싼 전기를 가능하게 해 준 핵발전소가 우리 후손들에게 무한히 지속될 수 있는 방사능의 공포를 물려 줄 수 있음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세대 간 부정의를 조장할 수 있는 값싼 핵 발전 전기를 계속 써야할 것인가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비싸지만 불평등이 덜한 태양광, 풍력 발전 전기를 쓰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경상남도, 전라남도 해안에 건설되어 있는 핵 발전 전기 대부분이 수도권에서 사용되고 있는 현재의 전기 생산-소비 시스템이 고리, 월성 지역 주민들에게 사고 위험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음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런 불평등의 또 다른 반영이 고압 송전로에서도 드러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밀양에 건설되는 고압 송전로는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 송전이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핵 발전 전기에 함축된 위험의 불균등한 분배 문제가 제기되자 다른 대안 기술들에 주목하는 시민들도 나타났다. 아직 경제적이지는 않지만 사회에 재난적인 위험을 초래하지도 않고 지역 생산도 가능하여 위험의 불평등 분배도 강요하지 않는 재생 에너지 기술 대안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값싼 핵 발전 전기와 이를 조장하는 낮은 전기 요금 체제가 만들어낸 우리의 과도한 전기 소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민들도 등장했다. 정부 정책에 의해 구조화되기도 하였지만 핵발전소에서 만들어내는 대량의 전기를 값싸다는 이유생각 없이 소비하던 시민들 중에 절전 소비 운동에 나서는 이들도 생겨났다. 전기 소비를 줄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핵발전소를 줄이는 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전기 소비에서도 윤리적 소비가 등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비의 불편함을 사회적 가치에 따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시민 사회가 보여주는 단상들은 전기나 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생산가와 기술적 효율성만을 내세우며 핵 발전 확대만을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정부의 전력 정책은 기술에 내재된 사회적 불평등에 주목하기 시작한 시민 사회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이 아니라 경제 민주화가 우리 사회의 주요한 화두가 되어버린 현재, 산업에 필요한 값싼 전기 생산을 이유로 사회에 불평등을 강요하는 핵 발전 중심 정책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시민 사회는 정부와 어떤 에너지원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안전과 사회적 가치를 우선시하여 수명 연장 논란이 되고 있는 핵발전소 폐지를 결정하고 줄어든 전기 공급을 대신하여 정부에서 시민들에게 절전을 요구한다면 이에 호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우리 시민 사회의 현재이다.

ⓒ연합뉴스

전기, 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독일 사회이다. 2011년 6월 독일은 2022년에 모든 원전 가동을 중지하고 이들 전력을 비롯하여 석탄, 석유 전력 일부까지도 재생 에너지로 대체한다는 '에너지 전환'을 선언한 바 있다.

우리와 유사한 제조업 중심의 수출 국가로서 2022년에 재생 에너지 중심의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을 갖춘다는 것은 재생 에너지 전력 생산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독일이라도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경제성이 여전히 낮은 태양광 등의 설비를 확대하자면 전기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고, 규제 강화를 통해 절대적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도 필수적이다.

더구나 해상 풍력 단지 조성, 태양광 발전 설비 확충 등 재생 에너지 설비 확장과 더불어 송전망의 구축은 시스템 전환을 위해 반드시 선결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송전망 구축은 345킬로볼트 고압 송전 확장을 포함하고 있어 송전로가 지나는 지역 주민과의 갈등이 불가피한 사업이다. 이와 같은 여러 문제들이 하나라도 정체 상태를 빗게 되면 독일의 에너지 전환은 선언에 그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독일 정부는 에너지 전환을 선언한 직후인 2011년 7월부터 이들 전환 정책에 대한 '시민 대화'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8개 주요 도시에서 '시민 회의'를 개최하여 전기 요금 인상에 대한 수용 여부, 에너지 효율화 방안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 기타 정부에 건의하고 싶은 정책들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도시 이외에 시민 단체대학 연구소들에서 스물두 차례의 시민 워크숍을 조직하도록 하여 에너지 전환 정책 수립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행동 없이는 에너지 전환은 가능하지 않고 에너지 문제는 시민들의 삶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독일 정부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환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시민들이 참여하도록 하여 나의 정책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기술 정책에서도 이와 같은 독일 정부의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즉, 사회적 갈등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송전망 구축도 이와 같은 과정을 밝고 있다. 독일 정부는 작년부터 송전망 구축과 연관된 모든 정보공유하고, 이들 계획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도 직접 받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 운영하기 시작했다.

송전망 사업자들에게는 매년 송전망 계획 보고서를 계획 확정 이전에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도록 하고, 이들 사이트를 통해 들어오는 시민 의견을 반영하여 계획을 최종 확정하는 것을 의무화하였다. 송전로 지역 주민들은 계획 이후에 공청회를 통해 송전 계획을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계획 과정부터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부의 이런 노력으로 독일 시민들은 에너지 전환의 주체로서 거듭나고 있다.

에너지, 전기의 기술적 문제, 사회적 갈등은 더 이상 정부 행정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에너지 기술에 대한 시민들의 가치 판단이 광범위하게 논의될 수 있고, 또한 이를 근거로 우리의 에너지 시스템을 시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장이 마련될 때 더 잘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인 것이다.


/ 박진희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 초록발광 칼럼은 프레시안에 동시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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