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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3-08-13 18:50
'설국열차'의 기술론 단상 (김현우 상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7,771  

<설국열차> 만화 원작의 한 모습

'설국열차'의 기술론 단상
[에정칼럼] 열차가 달리기 전에 해야 할 것들


논란 많은 영화 <설국열차>를 보았다. 많은 이들이 갖는 호오의 감정과 아쉬움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영화의 완성도나 정치적 메시지에 관한 것은 아니다. 옥의 티 찾기라고 할 것도 아닌데, 봉준호 감독이 그것도 SF 만화를 원작으로 은유를 시도한 것을 가지고 과학적으로 맞다 틀리다를 논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몇 가지 기술적 측면들은 따져 봄 직하다.

우선 전 지구적으로 평균 기온이 섭씨 영하 수십도 아래의 (원작 만화에서는 영하 90도 정도로 나온다) 초빙하기가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갑작스레 올 수는 없다. CW-7이라는 냉각제가 단순한 강설제인지 아니면 급속히 열을 빼앗아가는 기제를 가진 냉각제인지는 분명치 않다. 일단 성층권에 황화합물을 뿌려 태양에너지를 차단시키는 것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는 화산폭발이나 대규모 핵폭발 이후의 분진과 낙진 구름으로 인한 겨울과 비슷한 상태일 터인데, 그렇다면 추위가 삽시간 만에 쓰나미처럼 밀려오기보다는 몇 주, 몇 달에 걸쳐 진행될 것이다. 65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기에 공룡의 멸종을 가져온 운석 충돌과 그로 인한 빙하기 도래가 이와 유사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공룡은 멸종했지만 몸집이 작은 포유류의 조상이 살아남을 시간과 공간의 여유는 있었다. 그리고 그 빙하기도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은 지금보다 4도에서 6도 낮은 정도였다. 물론 이 만큼의 기온 차이도 생명체 절반 이상을 멸종시킬 정도로 엄청난 것이다.

그게 아니라 다른 무언가 강력한 냉각제가 있을지 상상해볼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냉각 메커니즘은 흔히 아는 기화열처럼 한쪽의 열을 빼앗아 다른 쪽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실내는 시원하지만 실외기가 열과 물을 발생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구는 ‘닫힌 계’이므로, 어딘가가 급속히 추워졌다면 지구의 어느 곳은 따듯해졌을지 모른다.

게다가, 영화에서는 햇빛이 여전히 밝게 비치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지구는 또한 태양과 이어져 있는 ‘열린 계’이기도 하므로, 대기권이 태양에너지를 잡아두는 한 지구 전체가 17년간 그렇게 꽁꽁 얼어있을 수는 없다. 태양과의 거리가 지구보다 먼, 그러나 대기의 온실효과가 작은 화성이 한 쪽은 꽁꽁 얼고 한 쪽은 사막처럼 뜨거운 것을 교해보면 될 것이다.

어쨌든 원작 만화에는 동서 양쪽에서 모두 기후무기를 개발해서, 그게 기대치 이상으로 작동했고 7월의 오후 얼음장같은 바람이 와서 갑자기 몇 시간 만에 모든 걸 쓸어 버렸다고 기술되고 있다. 기후무기가 갑자기 핵겨울 상태를 가져왔고 이것이 수십 년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시비 걸지 말라는 전제를 까는 셈이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우리가 온난화로 지구 대기의 평형 상태가 깨지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구라는 큰 시스템의 평형 상태가 한꺼번에 깨지기는 좀체 어렵다. 물론 북극의 얼음이 줄어들어 햇빛 반사량을 줄이거나 영구 동토층이 녹아 메탄가스가 대기 중으로 풀려나와 온실효과를 배가한다든지 하는 등 ‘격발 효과’로 기후 변화가 가속화될 가능성은 여전히 많으며 이미 진행 중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볼 것은 지구온난화의 해법으로 국제 사회에서 냉각제 살포를 결정했다는 설정이다. UN이 주관하는 기후변화회의가 답보하고 있고, 선진산업국들의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럼직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기술적 해법(technical fix)의 암울한 전망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일단의 과학기술자들은 인류와 생태계의 위기에 대해 기술적 해법을 주저 없이 제시하곤 한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주에 대형 태양전지판을 설치하여 만든 전기에너지를 마이크로파를 통해 지구로 쏘아 보낸다거나, 거꾸로 우주에 태양 차단막을 설치한다는 구상에 이르면 ‘지구공학(Geo-Engineering)’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CW-7 자체 역시 이러한 지구공학에 기반한 거대기술의 하나다. 이러한 거대기술의 사용은 아마도 소수의 정치인과 과학자들에 의해 밀실에서 결정되었을 것이고, 결국 살아남은 이들은 쇄빙 열차에 운명을 맡기게 되었다. 거대기술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위험성뿐만 아니라 비민주성을 일러주는 단면이다.

당연히 이어질 법한 의문이 열차의 동력원에 대한 것이다. 외부로부터 추가적인 연료 공급 없이 수 십년을 달릴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면 무엇일까? 원작에서는 ‘포레스테 시스템’이라는, 기계가 작동하면서 에너지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일종의 영구동력기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에너지보존의 법칙상 이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게 아니라면 예를 들어 핵발전을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 봉준호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핵융합로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핵융합 역시 반응 발생조차 어렵거니와 이 반응을 안정적으로 담아둘 용기조차 실현되기 어렵다. 핵잠수함과 비슷한 소형 핵발전소가 그나마 현실적일텐데, 그렇다면 방사능과 핵폐기물 문제를 차치한다면(!) 차라리 열차를 세우고 핵발전에서 나오는 막대한 열을 이용해 생존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열차의 동력원이 핵발전이든 다른 무엇이든, 이 가공의 에너지 역시 거대기술 또는 위험기술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열차의 엔진은 매우 복잡한 첨단의, ‘성스러운’ 것이며 따라서 그 작동의 노하우는 윌포드 혼자에게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엔진의 일부 부품이 망가지게 되자 이를 해결하는 것은 겨우 몸집 작은 소년들이 부속품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핵발전소가 첨단의 설비이지만, 예기치 않은 고장이 발생할 경우 너트 하나를 조이려고 수십 명의 노동자가 빈약한 방호장비를 두르고 교대로 투입되어야 하는 꼴과 마찬가지다.

열차의 부품을 대체할 무엇이나 방법을 찾기 위해 정보를 공개하고 집단적으로 연구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는 윌포드와 열차가 갖는 (사회적 혹은 정치적) 체제의 선택지가 못된다. 밀양의 765kV 송전탑의 대안을 한전이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렇듯 거대기술, 위험기술의 트랙에 올라서면 다른 가능성은 봉쇄되고 민주적 해법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 된다. 열차는 계속 달려야 한다. 1 아니면 0 뿐이다. 속도를 늦추거나 잠깐 멈추어 다른 길은 없는지 논의할 길이 막혀있기에 그 외의 가능성은 반역과 반란, 탈출, 공멸 밖에 남지 않게 된다.

이 끊임없이 달리는, 닫혀있는 열차 속에 윌포드는 적자생존 이론에 바탕한 공리주의적 고민과 기술공학적 ‘배려’를 내비친다. 윌포드의 프레임은 기술주의와 결부된 전체주의의 폭력이다. 새로운 지도력이 성공하려면 이 프레임을 깨야 했다.

크리스 에반스와 송강호 모두 이를 소화하고 극복하기엔 시야와 자원이 부족했으며, 무엇보다 이미 달리는 쇄빙 열차에 올라타 있다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었다. 하워드 진은 달리는 열차 위에서 중립은 없다고 말했지만, 열차가 달리기 전에 중립을 취하지 않고 먼저 행동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거대기술의 쇄빙 열차가 달리지 않아도 되도록, 고아성이 난 데 없이 북극곰을 만나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레드북스 공동대표

* 에정칼럼은 레디앙에 동시 게재됩니다.
http://www.redian.org/archive/58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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