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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3-10-16 15:56
면죄부로 전락한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 (이정필 상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7,538  

▲ 제2차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은 밀양 또 영덕, 삼척에서 일어날 갈등을 해결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밀양 찍고 영덕·삼척,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초록發光] 면죄부로 전락한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


 제2차 에너지 기본 계획 초안이 '민관 워킹 그룹 권고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됐다. 정부안으로 최종 확정되는 게 12월이라고 하니 두 달가량 남은 셈이다. 이 계획은 20년을 계획 기간으로 5년마다 수립되는데, 말 그대로 에너지 전체를 관장하는 최상위 국가 계획이기 때문에 정치인, 관료, 전문가 또 이해관계자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금번 기본 계획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핵발전과 '전력난' 그리고 송전탑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핵심 의제를 해결하고 조정하는 원칙과 방향 그리고 핵심 과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부산, 울산, 경주, 울진, 영광, 당진, 인천, 삼척, 영덕, 밀양 그리고 고압 송전탑이 지나가고 지나갈 예정인 모든 곳의 '에너지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국가 계획은 실상 지역 계획인 것이다.

다음으로 '민관 워킹 그룹'이라는 다소 생소한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지고 결과가 발표됐다는 점에 주목을 받았다. 2008년에 수립된 제1차 에너지 기본 계획 수립 과정에서도 그렇듯이 에너지 관련 계획을 세울 때, 민간 워킹 그룹 위원장의 발표처럼, 그러한 "새로운 개방형 거버넌스"는 처음 시도된 것이다.

그렇다면, 민관 워킹 그룹과 산업통상자원부가 자평하듯이, 그렇게 발표된 초안을 "집중적인 숙의 과정"을 통해 핵발전 비중 등 첨예한 사안을 합의한 "성공적인 에너지 갈등 조정 사례"로 평가할 수 있을까. 2035년까지 우리 사회는 어떤 에너지를 선택해 얼마나 사용할까 그리고 어디에서 생산해 어디로 이동시켜 소비하게 될까. 20년 뒤에 후쿠시마가 어떤 상태로 존재할지 예상하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일 듯하다.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핵발전 비중이다. 22~29%라는 범위를 뒀다. 이에 대해 '탈핵' '전기 요금 인상 각오' 등 해석이 구구하지만, 결국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가 아니라 '단계적 증가'를 선택한 꼴이다. 제1차 에너지 기본 계획의 비현실적인 목표였던 2030년 41%에서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24.2%(2012년)라는 최근 설비 비중을 고려하면, 전력 수요의 향방에 따라 더 많이 늘거나 더 적게 늘게 된다. 아직까지 우리는 전력을 포함해 에너지 수요가 감소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 민관 워킹 그룹에서는 전력 수요 전망을 어떻게 잡았을까?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나와야 할 에너지 수요 전망은 이번 권고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현재 관계 부처에서 협의가 현재 진행 중이라는 단서를 단 수요 전망치만 제시되어 있다. 2035년까지 연평균 2.5% 증가해 석유로 환산해 7020만톤이 될 것으로 보는데, 2011년 3910만 톤에서 80% 증가한 수치이다. 1차 계획의 전망과 달리 국내 총생산(GDP) 성장 둔화로 최종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감소하지만(1.4→0.8%), 에너지 소비 전기화로 전력 소비 증가율은 가속화(2.2→2.5%)된다는 것이다.

에너지 세제 개편과 전기 요금 현실화로 전력 수요 절감 목표 15%가 이뤄지면, 2011년에 비해 53% 증가하게 된다. 핵 발전 설비가 늘어나는 것은 53~80%에 달려 있다. 설비 예비율을 22%로 확대한다면 이보다 더 커진다. 아무튼 올해 2월에 발표돼 논란이 됐던 제6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서 유보됐던 신규 핵발전소는 자연스럽게 포함된다.

간단히 해보자. 현재 건설 중인 5기와 계획 중인 6기에 더해 삼척과 영덕에 핵 발전 단지가 들어선다. 이곳은 고리와 영광이 될 운명에 처해 있다. 이로써 부산, 울산, 경주, 영덕, 울진, 삼척으로 이어지는 동해안 핵 발전 벨트가 완성된다. 어디까지 늘어나서 끊어질지 모르는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는 것과 같다. 결국 나락으로 빠질지 모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목표 자체가 낮긴 하지만, 2035년 11%로 설정된 신재생 에너지도 1차 계획에 비해 설비 용량은 늘 것이다. 이 대목에서 뭔가 찜찜하다. 핵발전소 용량도 늘고 신재생 에너지 용량도 는다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건 아닐까. 그건 여전히 무한 경제 성장주의와 공급 위주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5대 핵심 과제에 맨 위에 "수요 관리 중심의 에너지 정책 전환(전력수요 15% 절감)"을 올려놓긴 했다. 그러나 앞서 인용한 전력 수요 전망은 "09~12년 철강-석유화학 등 전력 다소비 업종의 투자 확대로 크게 증가한 소비 실적과 최근 소비 추세(기계/전기/전자 등 제조업비중 상승 등)를 반영"했다. 그렇다면, 전력 위기의 주요 원인인 전기 다소비 기업은 그대로 나두고 어떻게, 어디에서 쥐어짜낼 의도일까?

우리는 이런 '계획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중장기 전망에 에너지와 전력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은 현상유지 편향과 도박사의 오류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에너지와 전력 소비와 경제 성장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는 고정관념 혹은 그래야 한다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지 그에 따른 정책 기조는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탈핵 딜레마'를 겪을 수밖에 없다. 공청회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후 12월에 22~29%로 확정된다면, 전력 수요 증가에 따라 핵발전소의 증가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하거나 노후 핵발전소를 폐쇄할 경우 대체 핵발전소를 인정해야 한다.

이 딜레마에 빠진 이유는 계산 실력과 협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정부의 수요 전망 프레임에 갇혀 핵발전 비중이라는 닻을 내리는 순간 예고된 것이다. 게임의 룰은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 민관 워킹 그룹이라는 거버넌스가 새롭지 않은 이유이다. 결과적으로 어려운 여건에서도 핵 발전의 수용성, 안정성, 환경성이라는 기준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한 민관 워킹 그룹 내 사회단체의 활동도 퇴색해 버렸다.

따라서 "핵발전소 비중은 줄었지만 핵발전소 설비가 늘어나는 숫자놀음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정부는 워킹 그룹 논의 과정에 시민사회단체 인사가 참여한 것으로 면죄부를 삼으려 해서는 안 된다." ('2차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 워킹 그룹 참여 시민단체 위원들의 입장')

어차피 탈핵 에너지 전환은 긴 싸움이 되겠지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5년이 아니라 두 달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밀양 전투' 역시 이 싸움의 과정이다. 민관 워킹 그룹의 장내 투쟁과 장외 투쟁의 결합되지 못했던 저간의 사정을 참고해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수요 전망과 핵 발전 비중에서 시작함은 물론이고, 제1차 에너지 기본 계획과 비교해 후퇴하거나 정체된 것으로 평가되는 자원 개발, 탈석유, 에너지 효율, 에너지 복지도 다뤄야 한다.

불리한 게임에서 항의(voice)가 통하지 않으면 떠나는 것(exit)도 합리적인 선택이다. 자칫 충성(loyalty)으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영화 <7인의 사무라이>의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른다.

"전쟁에서 이긴 것은 사무라이가 아니라 농민이다."

이랬어야 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 초록발광은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 기사원문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101608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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