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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4-01-02 15:15
민영화, 이젠 전기다(이진우 부소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8,262  
새누리당의 '늑대 괴담', 2000년 전 이솝이 웃겠다!
[초록發光] 민영화, 이젠 전기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긴 쉽습니다. 그러나 늑대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어렵고 지루하고 힘듭니다. 교활한 양치기 소년 때문에 우리는 어렵고 지루하고 힘든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새누리당이 전 국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배포한 <늑대가 나타났다>는 홍보 책자의 일부다. 홍보 책자를 통해 웃음을 선사하려고 했는지 'KTX 자회사 설립이 민영화가 된다는 건 괴담'이라는 주장과 함께 민영화는 민주당에서 추진했지 새누리당은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수록했다.

홍보 책자의 말대로라면 새누리당은 공공 부문 민영화를 우려하는 국민들에겐 참으로 등불과도 같은 존재가 확실하다. 그런데 왜 소위 우매한 민중들은 그런 괴담에 쉽게 속고 휩쓸리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당사자가 새누리당이기 때문이다.

홍보 책자가 뿌려지기 4일 전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철도 민영화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지난달 청와대에서 재가한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부조달협정(GPA) 개정 의정서에는 개방 대상으로 철도 부문이 포함되어 있다. 또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일단 '쪼개고' 나면, 민영화는 쉬워진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에너지 분야의 민영화 추진에서 목도할 수 있다.

전력 부문은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9년 '전력 산업 구조 개편 기본 계획'에 따라 2001년에 6개로 분할됐다. 2003년에는 구역 전기 사업을 신설하는 내용으로 전기사업법을 개정해 민간 발전 회사의 길을 터주었다. 2011년에는 6개 발전 회사가 '시장형 공기업'으로 전환됐고, 그리고는 2012년 제6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을 통해 민자 발전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남은 상황은 상상하지 않아도 뻔하다. 한국전력과 발전 자회사들의 적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고 이제 효율성을 이유로 발전 자회사들을 민영화한 뒤 배전을 담당하는 한국전력까지 민영화하면 긴 시간을 들인 전력 부문 민영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전력의 송·배전과 전력 판매 부문을 민영화하는 방안에 대해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한 상황이다.

거기에 제2차 에너지 기본 계획에서는 분산형 전원을 늘린다는 미명하에 민간 발전사 키우기에 나서겠다는 의지까지 피력했다. (분산형 전원 체제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산업계의 자가 발전을 의미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거기에 이미 석유 분야는 민영화된 지 오래됐고, 가스 분야는 가스 직도입을 통해 새로운 민영화의 길을 열어 젖혔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일관되게 찾아볼 수 있는 건 바로 '효율성과 경쟁' 논리다. 그렇다면 과연 민영화론자들의 주장대로 공공 부문의 효율성이 높아졌을까? 전혀 아니다.
▲ 새누리당의 홍보 책자 <늑대가 나타났다>. ⓒ연합뉴스

2011년 발전 회사들이 '시장형 공기업'으로 전환되자 정부로부터 유리한 경영 평가를 받기 위해 개별 회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 결과 국가 전체의 에너지 효율성이 오히려 저하됐다. 해외 발전소 경쟁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오히려 발전 회사들을 재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09년 한국전력이 맥킨지에 의뢰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전력이 발전 자회사들과 재통합할 경우 연료 구매 분야에서 5000∼8000억 원의 구매 비용 절감 효과와 연구 개발 분야에서 1200∼1500억 원, 설비 투자 감소 및 해외 사업 경쟁력 강화 등으로 2020년 기준 연간 약 1조2000억 원의 경비 절감이 예상된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발전 부문 분리에 따른 부작용이 커지자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거쳐 배전 분할을 중단하기도 했다.

민간 발전 회사 확대에 따른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민간 발전사를 늘리기 위해서는 현재 발전 원가 이하로 생산하고 있는 생산 단가 이상을 보장해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는 전력 가격을 결정하는 SMP(계통한계가격)에서 특혜를 주는 식으로 민간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그 결과 2012년 민자 발전사 당기 순이익은 9348억 원에 달했다. 반면 6개 공기업 발전사의 당기 순이익은 8061억 원에 불과하다. 얼핏 보면 수지가 맞춰진 상황처럼 보이지만 민자 발전사들의 발전 용량은 공기업 발전사들의 발전 용량의 10% 정도에 그친다는 점을 안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민자 발전사들이 더 늘어나면 정부의 부담 폭은 더 확대될 수밖에 없고, 결국 국민의 부담해야 하는 몫이 된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지 다시 전력 판매 민영화 검토나 민간 발전 회사 진입 허용 등으로 민자 발전 확대 구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흔히 전력 민영화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꼽는 캘리포니아 대정전, 미국 동북부 대정전은 오히려 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더 우려스러운 건 사회가 책임져야 할 공공 서비스가 이윤 창출이 목적인 기업에게 넘어가버리면 그런 최악의 사태가 벌어져도 다시 되돌리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재국유화는 그 과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돌과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야말로 새누리당이 얘기하는 것처럼 "어렵고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철도 민영화가 가시성이 높아 사회적 이슈가 됐지만 전력 민영화는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진척이 되어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것 역시 괴담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길지만 집요한 민영화 추진으로 인해 우리는 이미 혹독한 결과를 감내하고 있다. 따라서 철도 민영화 철회가 확실해진다면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전력 민영화에 대한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탈핵을 위해서는 정부 지원의 고리를 끊기 위해 민영화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빈대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이다. 또 누군가는 분산형 전원 체계로 가기 위해 민자 발전사 확대는 필수불가결한 일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분산형 체계란 수요처 인근으로 발전소를 분산시켜 지역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자는 거지 그걸 민간 회사가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역에너지공사를 설립해 책임성을 높이는 게 오히려 답이 될 테다. 물론 에너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전력 체계 전환은 필수적인 일이다. 하지만 에너지는 이미 현대 사회의 기본권 중에 하나기 때문에 복지, 경제, 고용 문제와도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민영화는 위험하다.

마지막으로 사족(蛇足) 하나. 늑대가 나타났다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잘못된 것이었지만 늑대는 결국 나타났다. 이 우화에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말자'가 아니라 신뢰를 쌓고 이를 통해 우환을 대비하자는 거다.

무슨 집권 여당의 홍보 자료가 해석 달린 어린이용 이솝 우화 수준에 불과하나. 길지도 않은데 다음부터 이솝 우화 정도는 다시 정독해보고 인용하길 권한다. 2000년 전 사람인 이솝도 웃겠다.


/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 초록발광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4010121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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