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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4-08-29 17:38
비정규직 핵발전소,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이보아 상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8,140  
비정규직 핵발전소,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초록發光] 핵발전소 안전, 열쇠는 노동자 안전에 있다


"절대 다수를 위해서는 소수를 희생하는 것이 피해가 적다고 생각한다."

"(그 희생되는 노동자가) 부모님일 수도 있다. 노동자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미래세대도 안전하지 않다."

"노동자 안전이 노동자 안전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이 다수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니까. 자신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면 더 심리적으로 위축될 것이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데 일을 할까?"

"한 생명 한 생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노동자 안전을 소수의 문제라고 볼 수도 없지 않을까. 그 사람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안전할 수 없으니까. 소수의 희생이라 국한 짓고 의미를 축소하면 안 될 것 같다."

최근 함께 해 온 청소년들과의 워크숍에서 오간 대화의 일부다. 이날 토론은 사용 후 핵연료를 관리할 방안을 선택할 때 어떤 평가 기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가 주제였는데, 청소년 참가자들은 '노동자 안전' 기준에 대한 토론에서 이런 발언을 쏟아냈다.

단언컨대, 나는 이 토론에 개입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았다. 아니 그냥 지켜본 것이 아니라 실은 감탄하면서 또 반성하면서 지켜보았다. 청소년들은 안전을 둘러싼 쟁점과 그 본질을 모두 꿰뚫고 있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에서 이들이 이야기한 것보다 더 보태서 쓸 자신이 없을 정도다.

맞다. 일반명사 '노동자'는 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고유명사 '홍길동'이 되고, 그 홍길동이 나일수도 나의 부모일수도 나의 자식일 수도 있다. 또한 노동자가 안전하지 못한 시스템과 사회, 노동자를 지킬 수 없는 시스템과 사회가 안전할 수도 없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지금, 이 진리를 외면하고 있다.



핵발전소 불법 파견 노동자

사람들의 기억에서 벌써 멀어진 일이지만, 2014년 올해 1월 핵발전소 한빛(영광) 5호기에서는 방수로 잠수 작업 중이던 노동자 2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1명은 한전KPS의 정규직 노동자였고, 1명은 도급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민주노총 전남본부와 공공비정규직노조, 영광 지역 사회 단체 등으로 구성된 '한빛 원전 참사 대책위원회'는 각종 관련 정보와 사고 현장의 직접 접근 등이 차단된 상황에서도 자체 조사를 진행했는데, 조사를 진행하면 할수록 1·2차 사고 경위, 사고 현장의 문제, 구조 대응의 문제, 한국수력원자력과 한전KPS 측의 사고 은폐 및 축소 등 각종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책위에 따르면 1차 사고를 당한 잠수 노동자(정규직)의 경우 안전 로프 미착용 상태로 작업이 진행된 걸로 보이는데 여기에서 "표준 작업 매뉴얼, 작업 시방서, 안전 담당자 배치, 해당 작업의 안전 교육 미진행 등 사고 현장의 문제점이 분명한 상태"였다. 안전 관리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또 한국수력원자력과 한전KPS 등은 이렇게 발생한 1차 사고 후 보조 업무 중이던 노동자(비정규직) 즉, 2차 희생자가 "스스로 사고 현장에 뛰어든 것처럼 보고하였으나" "확인 결과 크레인을 타고 작업 현장 관리자가 산소 호스를 내려줘 들어간 것으로 파악"되었다. 여기에서는 또 불법 파견이 드러난 것이다. 2차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불법 파견이 아니었다면, 사고 현장의 지시는 사고 노동자의 계약상 사용자인 도급업체 관리자가 내렸어야 했다. 하지만 현장에는 원청 직원만이 있었고, 지시도 그들이 내렸다.

이중 특히 불법 파견 문제는 세월호 참사를 거치며 나날이 확대되어가는 외주화와 간접 고용이 각종 안전사고로 이어진다는 인식과 맞물려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위 사고에서만 봐도 그렇다.

"고의든 묵인이든 하청 업체 직원에게 위험한 구조에 뛰어들게 한 것으로 충분히 추정"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원청과 하청 업체 모두 책임을 떠넘기기 딱 좋은 구조가 아닌가. 책임지는 자가 없다는 것은 평소에는 노동자의 안전 문제로만 불거지지만, 비상 상황이 발생 시 순식간에 대참사로 번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하물며 그 비상 상황이 핵발전소 사고라면 어떨까. 노동자의 안전은 노동자만의 안전이 아니다." (<광주드림> 2014년 1월 24일)

한편, 사고가 있었던 한빛 핵발전소에서 다시금 이 불법 파견 문제가 터져 나왔다. 사고 후 반년이 흐른 지난 6월 30일 한빛원자력본부에서 방사선 안전 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 6명이 사실상 집단 해고되었다.

이들은 10~15년 동안 한빛 핵발전소 내 방사선이 나오는 지역을 출입하는 모든 물건, 인원 등의 방사선 오염도를 감시 관리해온 숙련된 인력이었는데,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도 한전KPS 직원도 아닌 하청 업체 소속의 계약 기간 3년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이러한 간접 고용 비정규직은 한빛 핵발전소의 방사선 안전 관리 노동자 총 39명 중 해고된 6명을 포함해 무려 24명이다. 그러나 비록 3년에 한 번씩 바뀌는 하청 업체 소속이긴 했지만, 이들이 새 업체로 고용 승계되지 않은 적은 없다. 방사선 안전 관리가 방사선 관리 분야 경험 3년 이상의 자격이 요구되는 전문적인 업무이자 축적된 경험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해고자들을 포함해 방사선 안전 관리 노동자 13명이 지난해 10월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이었다. 이들은 원청 직원과 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일을 하며 원청의 업무 지시를 받고 일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신분과 임금, 처우에서 차별을 받고 있으며, 따라서 사실상 불법 파견이고 원청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직원임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핵발전소 내에서 점점 불법 파견이 횡행하면서, 핵발전소 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고용노동부도 시정명령을 내리고 법원에서도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들이 소송을 진행하자 이들이 속한 도급업체들은 13명에 대한 징계위 회부 및 강제전보를 통보했다. 한술 더 떠 한국노총 영광지역 방사선안전관리노조는 노조 뜻에 반해 소송을 냈다며 조합원 자격을 박탈했다. 결국 13명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수력원자력 비정규직지회를 설립하고, 광주지법에 '전보 발령 금지 가처분'을 신청해 받아들여짐으로써 원직 복직했다. 그리고 최근 6명이 속한 도급 업체가 계약 만료로 변경되는 시점에서 소송에 참여한 6명만 고용 승계 대상에서 배제된 것이다. 나머지 7명의 운명도 뻔히 예상된다고 하겠다. 노동자들의 말대로 "보복이자 본보기"인 셈이다.

한 명의 실수가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핵발전소

그렇다면, 이들의 빈자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해고된 6명의 자리에는 발전소 내 다른 보직에서 일하던 또 다른 하청 노동자들이 배치돼 있다. 스스로의 생계도 생계지만 해고 노동자들이 걱정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핵발전소는 나사와 같은 작은 부품까지 따지면 부품만 수백만 개에 배관이 170킬로미터, 케이블은 1700킬로미터에 이를 만큼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다.

수년 이상 기계를 다뤄본 숙련 노동자도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인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파이프의 균열 등이 가져올 재앙을 방지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관리 구역 내의 방사선 정도를 점검하고, 기준치 이상으로 오르면 '신속한 대처'를 하는 게 방사선 안전 관리원들이 하는 일이다.

"전산 시스템이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를 삑삑삑 울리면, 재빨리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건지를 알아내야 해요.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마스크 쓰고 나오라고 하고, 주변 공기 오염도 측정해 기준치 이상이면 옷(방호복) 입으라고 하고, 안에 있는 물건 위험한 채로 반출되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 현장에선 사실 최종 판단까지 다 우리에게 맡겨두고 있어요. 우리가 '오케이'해야 관리구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원청 소속 안전관리원들은 '결제 버튼' 클릭하는 일만 할 뿐이에요. (<프레시안> 2014년 7월 17일)

노동자들의 설명에서 우리는 핵발전소의 안전과 관련해 중요한 두 가지 진실을 읽을 수 있다. 긴급 대응이 필요한 즉, 핵발전소의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상상해 보자. 1분 1초가 다급한 상황에서 하청 노동자들은 사실상 실시간으로 원청 노동자의 업무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직접 업무 지시가 안 이뤄진다면 오히려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불법 파견이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번에는 다른 측면에서 보자. 현장에서 방사선 안전에 대한 최종 판단이 실제로는 하청 노동자들에 의해 이뤄지는데, 문제는 이들이 책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하청 노동자가 문제를 회피해 버리면 답이 안 나온다. 결국 1월의 노동자 사망 당시에 본 바와 같은 불분명한 책임은 작은 사고도 대형 참사로 만들 수 있는 뇌관인 셈이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의 사정은 다를까? 한국수력원자력 노조에 따르면, 2012년 10월 기준으로 한국수력원자력 전체 임직원은 현재 본사와 고리원자력본부 등 4개 원자력본부, 한강수력본부 등을 모두 합쳐 총 9000여 명으로, 이명박 정부 당시 공기업 선진화 계획 후속조치로 전체 정원의 1067명이 감축되었다.

정비 부서 전문 인력 정원도 20%나 감축됐다. 효율과 비용만 추구한 결과다. 그러는 사이 우리나라 핵발전소 사고의 70% 이상이 기기 오작동, 정비 불량, 제작 불량, 인적 오류 등 포괄적인 인적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 인력 감축이 핵발전소 사고 위험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청소년들도 아는데 우리가 모르고 있는 진실을 곱씹어 보자. 모든 경우가 그렇겠지만 특히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국민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스스로 사고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노동의 질과 책임의식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들의 안전조차 보장되지 않는 핵 발전 시스템이 국민들에게 안전할 리 없다. 결국 노동자 안전은 노동자들만의 문제도, 소수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가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악화와 사고 위험을 계속 어쩔 수 없는 "소수의 희생이라 국한 짓고 의미를 축소"하고 외면한다면, 노동자의 희생은 언젠가 반드시 우리 모두의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보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 초록발광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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