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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09-10-05 13:46
주홍날개꽃매미의 위협 (김현우 상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57,753  

주홍날개꽃매미의 위협

- 한반도 온난화의 예기치 않은 결과, 엄청난 돌발 상황들 올 수 있어


김현우 (에너지정치센터 운영위원)




내가 이 놈을 처음 본 것은 두 해 전 초가을 서울 대흥동의 어느 사무실 창을 통해서였다. 창유리 언저리에 앉은 놈은 흡사 외계에서 파견된 척후병 같았다. 희끄무레한 점박무늬 날개를 나방처럼 접고 있었고 긴 두 앞다리를 파리처럼 연신 비벼대더니 쏜살같은 속도로 날아가버렸다. 그날 오후 인근 전철역에서 두 마리의 시체를 더 볼 수 있었다.

그날 밤 놈의 정체가 무척 궁금해진 나는 검색엔진을 뒤지기 시작했다. “파리나방”? 그건 화장실에 서식하는 손톱만한 놈들이었다. 그럼 대체 뭘까? 잠시 후 떠오르는 대로 새 검색 문구를 입력했다. “기분나쁜 곤충”... 허, 놈들의 사진과 행태를 기록한 블로그와 질문답변 글들이 주르륵 뜨는 게 아닌가. 요컨대 이 곤충에 대한 인상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놈의 정식 명칭은 “주홍날개꽃매미”다. 매미목 꽃매미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중국 남부와 동남아 일대를 주요 서식지로 하는 종으로 알려져있다. 가죽나무 즙을 즐겨 빨아먹는데, 아열대 종인 가죽나무가 기후온난화의 영향으로 한반도로 확산되면서 함께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울지 않는 매미이며, 흔히 ‘중국매미’라고도 불린다.

한반도에서는 1979년에 최초로 목격되었으나 기후가 맞지 않았는지 보이지 않다가 2006년부터 점차 많은 개체가 발견되고 있다. 서울만 해도 남쪽의 대모산에서 북쪽의 도봉산, 심지어 여의도 금융가까지 진출했으니 그 확장세를 짐작할 만하다.

이 곤충의 징그러움은 그 무서움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가죽나무 뿐 아니라 최근에는 버드나무, 포도나무, 배, 사과, 복숭아 나무의 수액을 빨아먹어 고사시키고, 유충과 성충의 배설물은 그을음병을 일으켜 과일의 상품가치를 떨어뜨려 농가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날개의 가루가 피부병을 유발한다는 설도 있다.



주홍날개꽃매미가 가져오는 피해 규모가 급속히 커지는 이유는 생태 특성과 관련이 있다. 우선 꽃매미는 수 년을 땅 속에서 유충으로 지내다 겨우 한 두 주를 지상에서 생존하는 매미와 달리 알부터 유충(약충)과 성충 모두가 지상에 존재하며, 5월 중순경 부화하여 4회의 탈피를 거쳐 3개월이면 성충이 된다. 유충 역시 굼벵이 모양이 아니라 날개만 없을 뿐 점박이의 몸체에 여섯다리로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수백 수천마리씩 달라붙어 나무 수액을 빨아먹으니 위력이 클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번식력도 엄청나서 한 마리가 400-500개의 알을 낳고, 유충이나 성충을 포식하는 천적도 아직 알려져있지 않아 한반도에서의 증가 추세는 가속화될 것 같다.

이 종으로 인한 피해가 알려진 것이 몇 년 되지 않지만 방제조차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의 공통된 증언인 바, ‘에프킬라’로는 절대 죽지 않는다. 진딧물을 잡는 수화제가 그나마 효과가 있지만 부화하자마자 뛰어 달아날 수 있고 성충은 나는 속도와 힘마저 좋아 초기에 집단 방제를 하지 않으면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꽃매미의 출현에서 보듯, 기후 변화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상황이 돌발적으로 일어나게 만든다. 까뜨리나와 같은 초대형 열대성 폭풍이 빈발하고 지구 곳곳에서 사막화가 일어나며 해수면이 상승해서 섬 나라가 잠기는가 하면, 이렇게 생물종 분포가 변화하게 된다. 물론 문제는 온난화가 생태계뿐 아니라 인간에게 주는 영향이다. 명태를 잡던 동해 어민이 대신 그냥 멸치와 대구를 잡으면 되는 게 아니라 해파리와 씨름을 해야 하며, 사과 키우던 농가가 망고 키우면 그만인 게 아니라 변덕스런 날씨와 신종 해충들에 고통받게 된다. 말라리아 등 알려진 병원균과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미지의 병인체가 새로 전파될 공산도 크다.

기상청의 자료에 따르면 이미 한반도는 1912년부터 2008년까지 연평균 기온이 1.7도 상승하여 온난화 속도가 전 세계 평균보다 2배 빠른 것으로 나타난다. 2100년이면 남해안과 울릉도 지역은 겨울이 사라지고 가뭄과 홍수 피해도 가속화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지난 달 경기도 인근, 몇 그루 안되는 아버지의 포도나무에도 어김없이 꽃매미가 백여 마리나 붙어있었다. 이 놈들은 곧 줄기마다 수백 개씩 알을 붙일 것이다. 이러다가 주홍날개꽃매미가 몇 년 새 국가비상사태를 불러오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러나, 기분나쁜 해충은 모두의 눈에라도 보인다. ‘기후변화의 나비효과’는 처음에는 아주 미미하지만 너무도 크고 빠르게 폭풍으로 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폭풍이 가장 큰 타격을 줄 곳은 당연히 가장 빈곤하고, 가장 취약한 지역과 사회 집단이다. 온실가스의 배출 감축 못지 않게, 당면한 기후변화의 결과들에 대한 ‘적응’ 대책이 중요한 이유다. 이래 저래 4대강 정비 대신 나랏돈 쓸 데가 너무도 많다.

 - 본 칼럼은 인터넷 언론매체 [레디앙]에 동시기고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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