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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0-01-20 10:41
스포츠 찌라시보다도 못한 종합일간지 (이진우 상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7,070  

스포츠 찌라시보다도 못한 종합일간지

- 코펜하겐 기후회의 참가자의 언론 뒤집어보기 


-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경인년(庚寅年) 첫날, 한 스포츠 신문이 증거사진과 함께 유해진씨, 김혜수씨 커플의 열애설을 보도했다.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대한민국이 후끈 달아올랐다. 정말 안 어울리는 커플이라는 얘기부터 김혜수가 유해진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안 것이라는 추측까지 며칠 간 두 유명 연예인의 소식이 거의 모든 뉴스를 압도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열애설이 처음이 아닌데 예전에는 강하게 부정했었다며 두 사람의 태도에 대한 분개심을 나타내기까지 했다. 뭐, 사생활 침해 소지가 다분한 몰카식의 증거 사진이나 그들만의 비밀스런 연애에 대해 그들과 일면식도 없는 내가 왈가왈부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될 터이다. 단지 특종(?)이라며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던 모 스포츠 신문이 열애설 보도 며칠 뒤에 자신들의 블로그에 남긴 보도의 변(辯)이 인상 깊었을 뿐이다.

 열애설 보도를 통해 큼지막한 상이라도 받았을 것이 분명한 4명의 기자는 기자블로그에서 “사실확인은 기자의 본질”이라고 힘주어 말하며 증거사진을 찍기 위해 밀착취재를 했다며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또 “기사 보도 전에 양측 소속사 관계자 분들께 엄연히 연락을 드렸고 공식입장을 들려 달라 부탁”했는데 소속사가 씹어서(!) 언론의 사명감으로 눈물을 머금고 보도를 감행했다고 웅변했다. 고철로도 못쓸 내 안테나로 받아들여도 뭐 대충 돈벌이를 위해 사생활 침해를 무릅썼다는 말쯤 되겠다. 흠칫 옐로우 저널리즘을 두둔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조잡한 보도의 변에 눈길을 주는 건 얼마 전 기후변화협약 총회 차 코펜하겐에 가서 접한 국내 일간지들의 오보 퍼레이드 때문이다. 아무도 모른다고 되는대로 써 갈긴 일간지들을 생각하니 최소한의 사실 확인은 언론의 본질이라고 강변하는 스포츠 신문들이 무슨 구국의 정론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난 12월에 열린 코펜하겐 회의는 향후 기후변화대응 향방을 알 수 있는 가늠좌일뿐더러 각국의 경제성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회의라는 점에서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회의 역시 그 주목도에 부합하고자 노력했는지 초장부터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다. 첫 번째 사건은 덴마크 정부가 미국, 영국 등 일부 선진국들과 조율해 만든 일명 ‘덴마크 초안’의 유출 사건이다. 이때부터 국내 일간지들의 오보 경쟁이 시작된다. 문서 내용을 처음 보도한 영국의 가디언 지에는 관계자의 분석을 인용한 것으로 처리된 부분이 국내 언론에는 문서에 실려 있는 것처럼 보도되었다. 기본적으로 수록된 수치가 다른 것은 웃으면서 넘어가더라도 이건 처음 보도를 했던 기자가 영어 소양이 부족해 가디언 지를 오역했거나 선정적인 내용을 뽑기 위해 지 맘대로 사실을 바꿨음이 분명한데, 그걸 굴비 엮듯 줄줄이 받아 쓴 건 기자들의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혹여 내가 틀렸나 ‘덴마크 초안’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어봤지만 그런 내용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언론의 본질까지 들먹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사실 확인은 한 다음에 기사를 쓰는 게 예의 아니었을까.

 일간지들의 오보 행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코펜하겐에 왔을 때도 언론은 오보는 물론이고 언론 패악질을 멈추지 못했다. 마치 MB어천가를 완성해야 한다는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 언론은 이명박 대통령이 총회에서 두 번 연설한 것을 두고, "앵콜 요청", "유일하게 두 번 연설", "유엔 요청" 등 낯 뜨거운 설레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 중 하나는 모든 당사국에게 5분씩 할애하는 기조연설이었고,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가 속한 EIG 그룹의 대표 연설에 불과했다. 특히 EIG 그룹 대표 연설을 두고 많은 언론들이 침 넘치는 찬사를 보냈는데, 그건 어차피 EIG 그룹을 대표해 누군가가 해야 할 몫이었다. 게다가 EIG 자체가 다른 협상그룹에 속하지 못한 5개국이 속한 협상그룹이기 때문에 132개국이 속한 G77/China나 20개국이 넘는 EU와의 위상 차이는 거론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한국이 기후변화대응의 모범국가로 추앙받고 있는 것인양 호도하는 것은 받아쓰기에 능한 일간지들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게다가 유일하게 두 번 연설했다는 것은 사실도 아니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 등도 역시 코펜하겐 회의에서 2번 연설했고, 이 역시 이명박 대통령과 마찬가지의 경우다. 도무지 이해 못할 일련의 임금님 진상 기사는 정부의 보도자료를 'Ctrl C', 'Ctrl V' 키를 통해 만들었거나 때를 잊은 맹종 서약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하지만 이런 무뇌아적, 혹은 소아병적 기사는 차라리 약과다. 언론들은 코펜하겐 회의 폐회 기사를 통해 환타지 저널리즘의 진수를 보여준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금번 코펜하겐 회의는 당사국들의 이견으로 인해 공식 폐막일인 12월 18일을 넘겨 19일 오후에서야 끝났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들이 공식 폐막됐다고 타전하기 시작한 시각은 한국 시각으로 12월 18일 6시경이었다. 8시간의 시차를 감안하면 코펜하겐에서 기사를 접한 시각은 대략 12월 18일 10시경이었다. 당시 회의장 입장이 통제되어 외부에 있던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좋게 봐도 19일로 폐막일이 연장될 것이 확실한 터에 이미 회의가 끝났다니. 그것도 원래의 공식 폐막시간을 8시간이나 남기고?
 하지만 30분도 채 되지 않아 이 기사들이 추측성 억지 기사라는 것이 드러났다. 회의는 여전히 난항을 거듭하며 계속되고 있었다. 아직 코펜하겐에 직접 온 언론들마저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판에 한국 언론들은 끝나지도 않은 회의를 하루나 먼저 이미 끝났다고 말하는 예지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기사 공백이 생기는 주말이 겹친 고충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마치 사실인양 긴급하게 타전할 필요가 있었을까. 결국 언론은 코펜하겐과 한국을 이어주는 창구가 아니라 잘못된 내용을 잘못된 방식으로 보여주는 굴절된 거울에 불과했다.

 국민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지식을 토대로 사실 보도가 언론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정작 언론인들만 그 사실을 배우지 못했나 보다. 고만고만한 열애설에 지쳐있던 국민들이 유해진․김혜수 스포츠지 기사에 열광했던 이유는 사실을 확인해 준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스포츠 신문을 “찌라시”라고 폄하한다. 그렇다면 사실 확인도 할 줄 모르는 종합일간지들은 무엇이라고 불러야할까? 자. 이제 인터넷을 켜자. 그리고 코펜하겐 회의에 관한 기사들을 검색하자. 그리고 나지막이 중얼거려보자. “빵꾸똥꾸네.”



- 본 칼럼은 인터넷 언론매체 [레디앙]에 동시기고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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