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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0-05-12 15:15
기후변화와 선거정치 (김현우 상임연구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7,159  

<에정칼럼>

기후변화와 선거정치

  

비행기가 아니라면 온실가스 배출은 허공에서가 아니라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기후변화에 대한 해법이 실현되어야 할 곳도 지역이다. 비행기 공장과 공항조차도 존재하는 곳은 지역이다. 녹색연합이 2007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의 CO2 배출량은 4237만톤으로 경기도에 이어 전국 2위를 차지했고, 비율로는 12%다. 서울과 경기도가 가정·상업 부문에서 발생시킨 CO2량은 전체 지방자치단체 발생량의 약 53%를 차지할 정도로 지역간 편차도 크다. 아마 온실가스 의무감축량이 지자체에 강경하게 할당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지방선거가 코앞이지만, 기후변화 이야기는 그다지 큰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 코펜하겐 기후변화 회의가 좌초하면서 한국 사회의 심리적 압박이 느슨해진 이유도 있을 테고, MB정권 심판이나 4대강, 세종시 문제 등에 밀려 생태 이슈 일반이 지방선거에서 부각되기 어려운 사정도 있을 것이다.

한국 매니페스토연구회가 얼마전 발표한 2010 시도별 주요 정책 어젠다 보고서를 보아도 경제 혹은 개발과 복지 이슈가 가장 높은 정책수요를 나타낸 반면, 환경이나 생태이슈는 높은 순위에 들지 못했다. 경기도에서 “지속가능한 녹색도시 구현”이 1위를 차지했고, 인천시에서 “연안습지보전”(6위)과 “생태공원 확충”(8위)이 순위에 든 게 눈에 띄는 정도다. 울산시에서는 “기후변화 협약에 대응하는 환경 경제정책 수립”이 7위에 올랐다. 진보정당 후보들의 경우 건축물 에너지 효율화 지원이나 재생에너지 확충 등을 공히 정책공약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기후변화 정책이 우선 순위로 드러나지는 않는 듯하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며칠 전 실시된 영국 총선은 13년만의 노동당 실권과 자유민주당의 약진으로 결과가 압축되지만, 선거 과정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책 논쟁이 전례없이 활발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영국 야생동물보호기금, 조류보호왕립협회, 크리스천 에이드, 옥스팜, 그린피스, 그린얼라이언스 등 9개 단체가 모여 만든 “기후문제를 물어보자(Ask the Climate Question)”이라는 조직의 역할이 한 몫을 했다. 이 조직은 어떤 당에도 직접 관련을 갖거나 지지의사를 갖지 않는 연합체로, 주요 정당에게 기후변화와 관련한 질문을 던지고 공개적 입장천명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였다.



기후문제를 물어보자”가 런던 시내에서 개최한 토론회는 기후변화 선거논쟁의 절정을 이루었다. 노동당 의원이자 현재 에너지기후변화부(DECC) 장관이기도 한 에드 밀리반드는 보수당 후보들의 상당수가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이며 정책공약에서도 기후에너지 정책이 바닥순위로 밀려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자유민주당은 지속가능한 녹색 성장을 위해서 급진적 입법이 필요하며 차기 의회가 과감한 조처를 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훨씬 단호한 의견을 밝혔다. 노동당은 석유와 에너지 문제에 대한 당장의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원전 증설과 청정석탄 발전소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고, 자유민주당의 사이먼 휴와 녹색당의 대런 존슨은 이를 강하게 공박했다.

이번 영국 총선에서 기후변화 문제는 가디언, BBC 등 주요 언론사의 토론에서 항상 주요 쟁점으로 다루어졌고, 토론 직후 찬반 논란이 인터넷 공간을 달구었다. 토론을 통해 주요 정당 대표들이 모두 기후변화의 현실성과 과감한 조치의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역시 원칙과 정치현실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영국 지구의벗 사무총장인 앤디 앳킨스는 주요 세 정당 중 어느 곳의 정책도 기후변화에 대처할만큼 충분히 과감하지 못하다고 비판했고, 환경 칼럼니스트 조지 몽비오는 북해 유전 의존을 탈피할 구상이 없다며 정책이 비일관적이라고 지적했다.  

어쨌든 새 연정은 보수당을 중심으로 짜여지게 되었고, 자유민주당의 결합에도 불구하고 보수당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의 손을 거치며 기존의 기후정책들조차 굴절과 희석화가 불가피하게 될 것 같다. 기후정책 논쟁이 총선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노동당의 미지근한 정책적 입장이 기후를 고민하는 유권자들의 선택에 작용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선거 패배 이후 재편될 노동당의 새 지도부 자리를 두고 데이비드 밀리반드 외무장관에 이어 약관의 에드 밀리반드 장관이 뛰어들어 형제간(두 사람은 유명한 좌파정치학자 랄프 밀리반드의 아들이다)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는 점도, 영국 정치권에서 기후변화 문제가 계속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임을 짐작케 한다.  

한국으로 돌아오자. 지난 1백년간 한반도의 기온 상승은 세계 평균보다 두 배나 큰 1.5°C나 되고, 같은 기간 서울은 2.4°C도 상승했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가 선거정치에서 사라져있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가 많은 다이나믹 코리아다. 발등의 불부터 끄면서 중병을 고칠 궁리도 해야 한다.  

물론 당장의 불은 4대강이다. 4대강이 황토물을 내뿜고, 4대강의 사람들이 끓어오르고 있다. 석유와 과소비를 먹고 사는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는 기후변화를 제대로 막아낼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4대강 사업 저지는 자본주의 하에서도 할 수 있는 개량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의 토건자본주의를 극복할 밑천이 되는 개량이고 기후변화의 문제에 머리를 맞댈 공동체를 만드는 개량이다. 그런 개량은 해야 하고, 그런 지방선거가 되어야 한다. 일단 4대강 살리자. 그리고 올 가을엔 4대강 청문회하자.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 이 컬럼은 인터넷 언론 <레디앙>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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