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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0-07-14 11:58
G20, 이명박, 그리고 녹색성장(한재각 부소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8,845  

G20, 이명박, 그리고 녹색성장

한재각(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올해 11월 11일, G20 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된다. 이명박 정부는 1조원의 경제적 가치가 유발되고 지구 50억 인구의 시선이 집중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세종시 패배와 천안함 외교의 혼란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성급한 진단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G20 회의 개최를 통해서 현재의 어려운 국면을 돌파하고 후반기 국정 주도권을 잡으려고 한다는 분석에는 많은 이들이 동감을 하는 듯 하다.

그 때문인지 여러 무리수가 빚어지고 있다. 외국 손님을 위한 꽃단장을 위해서 공기를 앞당겨 부실 논란을 낳고 있는 광화문 복원 사업에서부터, 한시법이라고 하더라도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도록 한 G20 경호특별법까지 다양하다. 경찰까지 나서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을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면, 서울은 물론이고 무슨 관련인지 모를 경기도에서까지 노점 단속과 철거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체 G20가 뭐길래. 일각에서는 부자 나라들의 모임에 낄 만큼 우리나라가 성장했다는 징표로서 감격해 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개 시청 앞 광장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고, 참여연대 앞으로 가스통 달고 돌격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만한 사람들에게 호소력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국력이 커진 만큼 국제사회에서 대접을 받는 것이 그닥 나쁘지는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소박한 이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G20가 왜 구성되었고, 또 무엇을 논의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1970년대 초 직면한 경제위기를 다루기 위해서 미국을 중심으로 몇몇 부자 나라의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들이 모여서 세계경제의 운영 방향에 대해서 논의하는 과두제적 장치였던 G7이 G20의 시작이었다. 이것이 1990년대 후반의 아시아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확대된 것이다. 또한 2008년 미국발로 시작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각국의 정상이 모이는 G20 정상회의로 격상된 것이다.

경제위기를 관리하기 위해서 구성되고 소집된 만큼,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누가 얼마나 비용을 부담할 것이고 누가 경제개혁을 위한 방향타를 잡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피’ 튀기는 회의이다.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부자나라들의 공조를 이끌어낸다는 선전이나 약속과 다르게,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에 대해서는 말잔치만 풍성하며 그것도 차츰 후퇴하고 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이끌어 현재의 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는 IMF가 금융개혁의 선도자로 복권되었다.

또한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와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의 모순된 상황 속에서, 긴축 재정과 경기 부양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G20 회의는 신자유의적 금융세계화를 보완하기 위한 회의일 뿐 근본적인 위기 극복과는 무관하다며, 무용론 뿐만 아니라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의 삶과 환경을 피폐화시키고 있는 금융과 무역의 세계화를 끝내려 하기 보다는 보완하여 지속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두 눈 크게 두고 지켜 볼 일이다. 아니, 소리 높여 당신들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외칠 일이다.

한편 2009년 후반, 일시적인 세계 경제위기가 지정 국면에 들어선 탓으로, 미국 피치버그에서 열린 3차 G20 회의에서는 기존의 의제 이외에 일자리, 기후변화 등의 의제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경제위기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닌 상태에서 ‘위기-이후’의 체제에 대한 논의가 성급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위기-이후’ 체제에서 핵심적으로 가치가 되거나 다루어야 할 사항을 포함시킨 것이다.

하지만 G20 서울회의에서는 이런 의제는 거의 배제되어 있는 듯 하다. 유일하게 눈여겨 볼만한 것은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기 위한 논의일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연료가격의 상승을 불러와서 경제위기 속에서 경제적 약자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보완 조치 없이는 무조건 반길 일만은 아니다. 이것을 제외하면 온실가스 감축 문제라든지, 좋은 일자리의 보장, 녹색경제의 전환 등의 의제 등은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G20 정상회의 자체가 이런 의제들에 대해서 생색만 내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되었다는 점뿐 만 아니라, 의장을 맡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처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자는 천명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노동기본권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 때문에 노동조합과 끊임없이 갈등을 겪고 있다. 뿐인가 기후변화니 녹색성장이니 하는 의제를 부각시켰다가는 4대강 사업으로 전국의 강과 민심을 파헤쳐 놓은 실상과 저항이 함께 부각될 우려가 있으니, 이것도 ‘지뢰밭’이다. 아예 이런 이슈를 테이블 위에 올리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렇다고 ‘녹색성장’을 국내용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명박이 지금 처한 묘한 상황 때문이지, 그가 천명하고 있는 ‘녹색성장’은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년 6월 OECD 각료급 이사회가 한국이 제기한 ‘녹색성장 선언문’이 채택한 된 것이나, 유엔환경계획(UNEP)가 한국을 녹색경제의 모범적인 사례로서 소개하는 것이 단순히 국내적 효과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을 방문하는 세계 각국의 녹색경제, 녹색일자리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에게서 GDP의 2%를 녹색성장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대해서 고무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고 있으며, 이들은 다른 국가의 정부들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서 소개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갑작스런 경제위기를 친환경 자동차, 재생에너지 등에 대한 투자로 돌파하려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녹색경제 구상과 공명할 뿐 아니라, 유럽의 국가와 국제적인 환경단체들의 오래된 주장과 실천과도 적어도 표면상으로 유사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의 이 움직임을 국제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과학기술정책 연구 문헌에 ‘탈추격 체제’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사용되고 있다. 선진국의 앞선 기술을 쫓아가기 바빴던 시절이 지나, 반도체, IT, BT의 몇몇 분야에서는 한국이 ‘프론티어’에 서 있는 상황이 왔다는 것이다. 국가적 자부심에 어깨를 으쓱할 일만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은 따라야 할 모범이 없기 때문에, 그 기술의 개발에 따른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위험들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아서 탐색하여 피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하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다.

그런데 이것이 국내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은 이에 합당하는 규제 틀을 요구하지만, 민주주의, 인권, 환경 등의 사회적 규범과 가치가 확고히 자리잡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는 허술하게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앞선 IT 기술을 가진 우리 사회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정보보안과 프라이버시, 표현의 자유 등의 규범과 정책을 가지고 있고, 황우석 사태에서 보듯이 일부 앞선 줄기세포연구에서는 전세계적 차원의 윤리적 금기가 쉽게 무력화되었다. 한국의 탈추격 체제는 자칫 전세계적 차원에서 신자유의적 성장주의 담론과 규범의 돌격대의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른다.

녹색성장도 그렇다. 짐짓 경제성장과 환경보호는 양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 신선해보일 수 있지만, 학문적, 정책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는 명백히 퇴행이다. 적어도 1987년의 브룬틀란트 보고서가 천명한 ‘지속가능한 발전’은 경제, 사회, 환경의 세가지 축의 조화였다. 그러나 2005년에 서울에서 개최된 유엔 아태지역 경제사회위원회에서 한국이 처음 제시했다는 ‘녹색성장’은 사회적 형평성 혹은 사회적 정의라는 한가지 축을 사실상 제거해버린 개념이다. 아시아 지역은 빈곤하기 때문에,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라는 것이다.

안에서 세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센다지만, 우리나라만 창피당하고 끝나는 일이라면 모를까. 국제적인 환경논의의 담론까지도 퇴행시키는 일이 한국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G20 정상회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논의 속에서, G20 정상회의가 가진 국내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지구적 차원의 효과까지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동감은 이제 비교적 넓게 수용되고 있는 듯 하다.

여기에 덧붙여 토건주의와 사회적 형평성을 외면하는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이 가진 지구적 차원의 효과에도 관심을 둘 일이다. 그렇다면 4대강은 더 이상 국내 이슈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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