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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2-29 00:25
[녹색일자리] 노동안전보건 의제를 매개로 한 적록연대의 가능성
 글쓴이 : 녹색좌…
조회 : 15,130  
[주장과 대안] 노동안전보건 의제를 매개로 한 적록연대의 가능성
<노동과사회>(137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08. 11에 게재된 글입니다)

 
한재각 (에너지정치센터 운영위원)
  hancl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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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8년 10월18일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개최된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의 창립토론회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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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관계는 적대적인가 아니면 협력적인가? 대개의 경우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관계는 ‘일자리 vs 환경’이라는 대립구도에 갇혀 있다. 때문에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사이의 연대, 즉 ‘적록연대’는 대단히 이례적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1990년대 미국 북서부 천연림 지대의 벌목을 둘러싼 노동자와 환경주의자들 사이의 갈등과 충돌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도 새만금 간척사업을 둘러싸고 농업기반공사 노동조합과 환경운동단체들이 갈등을 빚은 바가 있다. 하지만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 경험은 지난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관찰되고 있으며, 현재에도 세계 곳곳에서 꾸준히 발전되고 있다.

“생태 없는 노동은 허무하고, 노동 없는 생태는 위선적”

한 가지 상징적인 사례가 1970년대 초에 있었던 호주 노동자들이 펼친 ‘녹색 금지’(Green Ban) 캠페인이다. 호주의 노동자들은 자연환경 및 역사적 유적을 개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해당 작업장을 봉쇄하여 개발업자를 굴복시키는 캠페인을 펼쳤다. 이런 전통은 1980년대 호주의 철도 및 부두하역 노동자 등이 참여하여 우라늄 운송저지 투쟁을 전개한 것으로 되살아나기도 했다. 이 사례는 올해 초 촛불집회 시국에 운수노조가 미국산 쇠고기의 수송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던 일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처럼 1970년대를 전후로 해서 서구 각국에서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가 종종 진행됐으며(미국의 경우는 뒤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990년대 말에는 세계화에 반대하기 위한 시애틀 투쟁 등을 통해서 다시 활성화되었다. 한국의 경우에도 에너지 관련 노동조합들과 환경단체들이 참여하는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가 2005년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노조와 환경단체 등이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를 위한 활동가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는 왜 필요한 것일까?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자본과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진보진영을 강화하고 내부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특히나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동일한 적을 대면하는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연대하지 않으면 각각의 개별 운동이 지켜야 할 공익과 가치를 방어하는 일조차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진보진영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목표, 그리고 방법을 혁신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른바 ‘진보의 재구성’)에서 두 운동의 상호침투와 변화가 핵심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태 없는 노동은 허무하고, 노동 없는 생태는 위선적이다.” 이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노동-환경운동 연대 기반으로서 ‘노동안전보건 의제’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사이의 핵심적인 쟁점은 확실히 ‘일자리 대 환경’ 혹은 ‘일자리와 환경’인 것으로 보인다. 환경 파괴적이고 에너지 다소비적인 산업을 규제하거나 혹은 축소시키려는 환경운동과 정부의 규제들은, 그 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고용에 위협이 될 것이라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립 구도는 자본가들에 의해서 과장되거나 조작되는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환경 파괴적인 일자리를 줄이는 대신에 환경 친화적인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일자리 대 환경’의 대립 구도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른바 “정의로운 전환”)이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각각의 사회운동들이 연대를 창출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은 공통의 관심사항을 찾아내고, 그로부터 출발하여 상호작용 경험을 쌓고 신뢰를 형성하면서 진전된다. 미국에서 이뤄진 적록연대의 사례들에서 ‘일자리 대 환경’의 구도가 ‘일자리와 환경’의 구도로 변화할 수 있었던 데는, 노동안전보건(넓게는 공중보건) 분야에서 연대했던 경험과 이를 연계했던 인적?조직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추정된다. 아래에서는 미국 경험의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하나는 1970년대 환경보호법과 직업안전보건법 등의 제정 과정을 둘러싸고 일어난 연대 사례고, 또 다른 하나는 1980년대의 위스콘신 노동-환경 네트워크(WLEN: the Wisconsin Labor-Environmental Network)의 사례다.

어떤 미국 연구자들은 “역사적으로 노동조합은 환경보호를 위한 투쟁의 선도자로 볼 수 있다”고 평가한다. 미국의 노동조합운동은 공중보건 이슈로서 환경문제에 접근하였으며, 대기오염이나 수질 보호와 같은 문제나 작업장 안전 및 보건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70년대 초 청정대기법(1970년)과 청정수질법(1972년) 의회 통과를 노동조합운동이 지원했으며, 또한 역으로 직업안전보건법(1970년) 제정 과정에서도 일부 환경단체들이 지원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작업장의 레이첼 카슨”이라고 불리던 토니 마쪼치(Tony Mazzochi)와 같은 노동운동 지도자이자 환경운동가의 역할이 중요했다. 한편,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사이의 연대의 ‘파괴력’을 보여준 사건은 1973년에 일어났다. 석유화학원자력노조(OCAW)가 작업안전보건 문제 때문에 셀 석유회사를 대상으로 벌인 파업을 미국 전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1개 환경단체가 지지한 것이다. 비록 이 파업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파업 이후 지지자든 반대자든 이런(노동운동과 환경운동 사이의) 연대의 힘을 인식했고, 진보운동의 전략가들은 이 공동 기반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레이건 정부 신자유주의에 저항한 적록연대

한편, 1980년에 반규제적인 성향을 가진 레이건 보수정권이 등장하면서,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은 직업안전보건청(OSHA), 환경보호청(EPA) 등의 산업안전 및 환경보호에 관한 기존의 규제기구를 방어하기 위해서 연합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미국 노총(AFL-CIO)과 미국의 대표적인 환경단체인 시에라클럽은 1981년에 시카고에서 전국의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의 목적은 주(州) 수준에서 ‘OSHA-환경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OSHA와 EPA를 방어하기 위한 로비와 활동을 조정하고, 이를 위한 노조 및 환경단체 활동가 간의 제휴 집단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이 네트워크를 통해서 노조와 환경단체 사이의 갈등을 낳을 잠재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다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위스콘신 노동-환경 네트워크’(WLEN)가 구성이 되었고, 지역 내 대부분의 노조와 환경단체들이 참가하였다.

WLEN은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무엇이고 어떤 위험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노동자의 알 권리’를 제도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또한 환경규제로 인해서 새롭게 나타날 수 있는 고용의 문제를 다루기도 하고, 선거시기의 투쟁에서도 연대를 했다. 더 나아가 WLEN은 ‘공동체의 알 권리’를 위해서도 활동했다. 공동체의 알 권리는 노동자의 알 권리와 다르게 ‘노동자의 이해’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었다. 왜냐하면 지역 공동체가 알 권리를 통해 확보된 정보에 기반하여 유해한 화학물질 사용을 중지할 것으로 요구하면서, 노동자의 일자리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의 경험을 통해 신뢰가 쌓이고, 의제의 중요성이 폭넓게 인식되면서 연대 틀이 유지될 수 있었다.

이데올로기 기반인 노동계급 환경주의, ‘양날의 칼’인 고용문제

그런데 이와 같은 연대의 경험에서 관찰되는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우선 ‘노동계급 환경주의’다. 이것은 도시 오염과 독성 폐기물의 위험, 깨끗한 공기와 물에 대해서 보다 크게 강조하는 반면, 멸종 위기종의 보전, 습지 유지, 국립공원의 확장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덜 강조한다는 점에서 ‘주류 환경주의’와 구분된다. 이러한 노동계급 환경주의는 또한 1960년대 이후 전국에 걸쳐 작업장 환경오염이 나타나고, 그에 따른 안전과 건강 문제에 대한 일반 노동자들의 우려와 저항이 커진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렇게 작업장 환경오염에 대한 걱정이 늘어나면서 노동자와 환경주의자들 사이의 연계가 늘어났고, 이들은 대기업과 통제되지 않은 자본주의가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오염의 뿌리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앞서 살펴본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는 이러한 인식 및 이데올로기적 기반 즉, 노동계급 환경주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미국에서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사이에서 이루어진 초기 경험은 적록연대가 가진 취약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1970년대 초반에 나타난 미국의 적록연대는 1973년경부터 나타난 경기 침체로 인해서 크게 흔들렸다. 경기 침체는 노동조합이 고용 축소의 위협에 취약하게 만들었고, 기업주들은 부가되는 환경규제를 회피하고 완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고용의 문제를 부각시켰다. 이런 과정에서 ‘일자리 대 환경’의 대립 구도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의 환경주의자들은 ‘완전고용을 위한 환경주의자들’(EFFE)이라는 단체를 조직하면서 ‘녹색 일자리’(Green Jobs)의 창출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의 노동안전보건 연대 사례로서 ‘석면문제 공동대응’

한국에서도 직업안전보건 분야에서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 경험이 종종 발견된다. 우선 1980년대 한국 사회운동이 본격적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반공해운동’은 지금의 보건의료운동, 노동운동, 환경운동이 융합된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서 원진레이온 투쟁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운동들이 분화되고 소위 ‘칸막이 문화’가 발생하면서, 보건의료운동, 노동운동, 환경운동 사이의 연대는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 판단된다. 몇 년 전에는 LG칼텍스 노조가 환경안전 이슈를 내걸고 파업을 했으나 환경단체를 포함하여 시민단체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지 못한 채 패배했던 경험까지 있다. 그렇지만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사이 연대의 경험은 지속적으로 존재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서 지하철노조와 환경운동연합의 석면문제 공동대응 활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는 이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연대활동의 역사는 199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지하철공사가 시설 개보수 및 리모델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미세먼지가 증가하고 실내공기가 심각하게 오염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것은 지하공간에서 생활하는 지하철 노동자의 건강문제이기도 하지만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건강문제이기도 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산발적으로 이어지다가 2000년 4월, 지하철노조와 환경운동연합, 그리고 원진연구소가 연대하여 지하공간의 대기오염 문제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와 함께 1996년부터 제기됐던 석면 문제가 공식적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노조에 가해지는 구조조정 위협 등과 겹치면서 연대활동은 소강국면에 들어갔다가 2007년 초를 전후로 해서 다시 연대활동이 활성화되었다. “석면물질이 비산되는 뿜질 형태의 석면”을 발견한 이후에, 다시 지하철노조와 환경연합 및 원진연구소 등이 연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2007년에 ‘전국석면추방네트워크’로 발전하였으며, 2008년에는 ‘아시아 석면추방 네트워크’를 결성하기까지 이르렀다.

서로 다름 인정 않는 비타협적 정서를 버려야

이 연대 활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졌다. 지하공간의 대기오염은 노동자의 건강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시민의 건강 문제와 겹친다는 점이다. 즉, 노동운동과 환경(시민)운동이 연대할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공동의 기반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동운동과 환경(시민)운동 사이의 연대를 만들어내고 발전시키는 데 여러 가지 장애요인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기도 하다.

우선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기업의 구조조정 등 노조에 대한 위협이 그런 연대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장애가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주체들 사이의 장애물도 심각한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비타협적 정서”, “시민단체의 관료화와 서울지하철 노동진영의 보수화”, “활동방식의 차이와 인간관계(의 불신)” 등이 지적되고 있다.

더욱더 중요해지는 노동-환경운동 매개 주체들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운동들 사이 연대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연대가 성공하기까지는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다.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사이의 연대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노력을 시작해볼 수 있는 한 가지 출발점, 혹은 입구가 노동안전보건 의제 부문이 될 것이다. 이 글은 그런 노력을 시작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쓰였다.
 
적록연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방적인 태도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가 상이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공통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노동운동의 문화가 다르고 환경운동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연대의 노력에 항상 긴장과 갈등이 잠재되어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어려움들을 고려했을 때 두 운동을 연계시켜 주는 ‘브리지(다리)’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즉,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을 모두 경험하였거나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개인 혹은 단체에 두 운동을 ‘매개’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부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앞에서 언급한 석면 대응 사례에서 지하철노조 산업안전국장이자 강남서초 환경운동연합의 집행위원장이 했던 역할과 같은 것들 말이다.

즉, 노동안전보건 의제 영역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노동건강연대’나 전문적인 연구역량을 지원하고 있는 ‘원진노동환경안전연구소’ 등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한 노동안전보건 의제를 넘어서 본다면, 환경운동과 에너지노조들이 연대한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같은 조직이나, 공공노조와 함께 에너지?기후변화 대응사업을 기획?추진하는 ‘에너지정치센터’ 등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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