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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05 22:11
[에너지일반] [TNI] 에너지 민주주의를 향하여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3,981  
에너지 민주주의를 향하여

2016년 2월 11~12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TNI는 Global Justice Now, the Rosa Luxemburg Foundation Brussels Office, Platform London, Switched on London, Berlin Energy Roundtable, Alternative Information and Development Centre, Public Services International, Trade Unions for Energy Democracy와 협력하여 에너지 민주주의 관련 국제 워크숍을 열었다. 이들은 전 세계 에너지 민주주의에 관한 흐름을 주도하는 단체들이다. 그리고 워크숍에 참가한 이들 역시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자 활동가들이다. 에너지 민주주의라는 말이 점점 더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공유된 가치와 방향과 원칙도 있지만, 그 내부에는 상이한 전략과 노선도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 인식에서 워크숍에서 논의된 내용을 TNI의 Daniel Chavez와 Satoko Kishimoto가 정리한 <Towards Energy Democracy>(2016년 5월) 보고서를 간추려 소개한다. 한국 에너지 민주주의 논의에 유용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By 필>


1. 에너지 민주주의: 청사진, 과정, 혹은 환상?

에너지 접근에서부터 기후정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민영화 반대에서부터 노동권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에너지 분야에서의 권력 쟁취와 시장 지배의 저항, 그리고 에너지 생산-유통-소비의 대안 창안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런 흐름은 ‘에너지 민주주의’ 개념으로 수렴된다. 이것은 생산-공급, 재정과 기술과 지식 등 전 영역에서 권력 전환과 관련된다. 이 운동들은 또한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에너지 시스템, 보편적인 접근성, 공정 가격, 안전하고 조직화되고 적절한 임금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공적 이익을 실현하고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목표를 우선하며, 저탄소 에너지로, 나아가 100%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지향한다.

그런데 에너지 민주주의는 서구가 자유민주주를 전 세계에 이식했던 방식처럼, 역사적, 지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유통되어서는 안 된다. 라오스 지골 지역에 적용하는 것과 런던 도시에서 적용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개념의 물신화를 피해야 한다. 실제로 서구와 미국에서는 에너지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남반구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그 대신 ‘에너지 주권’과 ‘에너지 정의’가 더 많이 쓰인다. 어떻게 보면 에너지 민주주의는 유럽 중심적 의제가 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에너지 민주주의를 주입하려는 시도는 피해야 하며, 에너지 민주주의가 갖는 내용이 남반구의 문제와 투쟁들과 어떻게 관련되는가 하는 질문이 중요하다. 즉, 북반구의 활동가들은 남반구의 투쟁과 활동을 이해하고 남반구 활동가들이 주도적으로 검토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에너지 민주주의를 미래 에너지 분야에 대한 추상적 비전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환상일지도 모른다. 현 자본주의 체제의 권력구조는 대단히 비민주적이기 때문에, ‘해방적’ 에너지 전환은 권력의 근본적인 변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야심찬 정치 전략이 요구된다. 따라서 미래 에너지 유토피아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집합적 권력과 조직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그렇다면 에너지 민주주의는 에너지를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고, 어떻게, 어디에서 그리고 누구를 위해 에너지가 생산하고 소비되는가를 둘러싼 다층적인 투쟁인 것이다.

2. 에너지 민주주의와 도시

공적으로 소유되고 통제되는 지역에너지공사와 시민들이 출자하여 운영하는 에너지 협동조합이 도시에서의 에너지 민주주의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뉴욕시의 새로운 에너지 비전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풀뿌리・공동체 조직들이 New York Energy Democracy Alliance로 뭉쳤다. 시의 계획은 분산형 태양광을 촉진하지만 사적 에너지 기업들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수립되었다. 반면 이 동맹은 민주적인 공적 통제, 공동체 참여와 사회 정의를 보장하는 조치들을 주장하면서, 시민들이 에너지 비용 지출이 소득의 6%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2011년 콜로라도의 볼더에서는 주민투표로 민간 기업  Xcel에서 지역에너지공사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아직도 Xcel은 포기하지 않고 지역에너지공사를 막고 있다. 샌안토니오(텍사스), 잭슨(미시시피), 이스턴 켄터키(켄터키), 블랙 메사(애리조나), 디트로이트(미시간), 리치몬드(캘리포니아)에서 Our Power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는데, 노동조합, 원주민 단체, 인종 정의와 사회 정의 단체들이 함께 민주적이고 청정한 에너지 경제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토지, 물과 식량에 대한 통제권과 함께 에너지 민주주의를 밀고 있다.

2013년, 독일 베를린에서 Berliner Energietisch가 주도한 전력망 재공영화와 지역에너지공사 설립에 관한 캠페인과 주민투표(최종 부결)는 독일은 물론 유럽의 다른 도시에 미치는 파급력은 컸다[베를린 사례는 국내에 제법 많이 소개되어 내용은 생략한다]. 민주적 지역에너지공사를 위한 새로운 캠페인 Switched On London에 영향을 주었는데, 노팅엄과 브리스톨에서 지역에너지공사가 세워지면서 영국에서도 이런 흐름과 모델에 관심이 늘고 있다. 런던시는 현재 RWE nPower과 민관협력사업(public-private partnership)을 통해 지하철과 경찰서와 같은 대규모 조직에 저탄소 에너지를 공급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Switched On London은 시의 계획이 저탄소 전환과 에너지 빈곤 측면에서 미흡하고, 기업이 납세자의 비용으로 이익을 취할 것이라는 점을 들어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의 많은 도시들이 이와 유사한 민관협력을 활용하기 시작하고 있는데, 이는 지역 에너지 의제를 축소・왜곡할 위험이 있다. 반면 Switched On London은 더 진보적인 방향에서 사기업과 분리된 완전히 공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Switched On London이 Berliner Energietisch의 제안에 의존하고 있긴 하지만, 지역에너지공사의 창출에 주목하여 도시의 전력망을 어떻게 재공영화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베를린의 경우 Vattenfall과의 전력망 계약 만료가 기회의 창으로 작용했다면, 런던의 경우에는 전력망에 대한 독점사업권이 없기 때문에 전력망을 되찾는 것이 더 어렵다. 또한 Switched On London은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없어서 2016년 5월 시장 선거에 개입하였다. 비록 세부 쟁점은 남았지만, 녹색당은 이 캠페인을 지지하였고 Sadiq Khan 노동당 시장 후보(최종 당선)도 지역에너지공사 설립을 약속하였다.  
      
도시에서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할 이유가 있다. 우선 도시 스케일은 책임 있게 일을 해야 할 정도로 공동체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국영 기업(남아공의 Eskom, 스웨덴의 Vattenfall)처럼 너무 커서 통제하기 어려운 위험은 없다. 다음으로 도시 공간은 투쟁들 사이에서 생산적인 연대를 형성할 수 있기에 적합한 곳이다(‘도시에 대한 권리’). 

3. 에너지 민주주의와 국가

국가사회주의의 실패 이후 많은 좌파들은 투쟁의 장소로서의 국가를 포기했다. 대안 사회의 전망으로 비국가적, 소규모 조직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에너지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도 이런 흐름에서 지역 단위에서 작동하는 공동체 에너지 협동조합과 관련된다. 에너지 민주주의에 대한 비국가적 지향이 특징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전 세계에서 에너지 협동조합의 확산이 인상적이고 협동조합들이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한계 역시 명확하다. 이런 형태는 적어도 유럽에서는 중산층만 접근할 수 있는 배제적인 경향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국가 정책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는데, 예컨대 영국에서 공동체 에너지를 주도했던 이들은 정부의 발전차액지원제도의 삭감으로 타격을 받았다. 다른 한편, 에너지 분야를 넘어서 생각하면, 그리스, 스페인부터 영국까지 유럽 좌파들의 선거 결과의 영향으로 인해 국가 수준에서의 투쟁이 가져올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회복된 듯하다. 이로써 에너지 민주주의에 대한 이론과 실천도 작은 스케일을 넘어서 더 큰 스케일과 국가 권력의 문제를 대면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단편적인 개혁들을 넘어서 에너지 분야 전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옮겨가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우루과이는 지난 10년 동안 좌파 정부가 세운 계획에 의해 놀라운 에너지 전환의 성과를 기록했다. 수입 석유에 의존했던 전력의 94%와 에너지의 55%를 재생가능에너지로 바꾸었다. 풍력 비중이 0%에서 전 세계 에너지 믹스에서 가장 높은 비중으로 변모했다. 또한 보편적 에너지 접근권을 보장했다. 이는 우루과이 주요 정당들이 지지한 장기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적합한 법적, 규제적, 제도적 프레임을 통해 가능했으며, 국영기업인 우루과이전력공사(UTE)가 담당했다. 코스타리카에서 이와 유사하게, 재생가능에너지가 에너지 믹스 79%, 전력 믹스 99%를 차지하고 있으며, 보편적 에너지 접근권이 거의 보장되고 있다. 에너지 생산의 85%가 공적 기관이 소유하거나 생산하고 있고, 협동조합과 지역에너지공사 역시 생산과 분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청정 에너지와 보편적 접근권을 향한 신속한 전환을 가능케 하는 국가 계획과 공적 기관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낭만화해서는 안 된다. 우루과이와 코스타리카 모두, 국가가 주요 행위자였지만, 많은 인프라스트럭처는 외국 기업들이 만들었다. 그 결과, 해외에서 인력이 투입되어 고용창출 효과가 미흡했고 국가경제의 승수효과가 제한적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국가의 하향식 계획을 통한 민주적 방식은 선출되지 않고 책임감이 부족한 사기업들보다는 낫지만, 두 나라 모두 대중의 참여라는 방식은 거의 없었다. 최근 우루과이에서는 위기가 감지된다. Total, Exxon과 Statoil이 ANCAP(우루과이 국영 정유회사)와 함께 석유탐사를 지속해왔는데, 신규 유전 발견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그 유전들이 상업적으로 채산성 있다고 결정되면, 우루과이 에너지 전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렇게 남미 사례들을 통해 국가를 통한 에너지 민주주의의 잠재력과 과제 모두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 사례(시리자)에서는 국제 자본의 힘에 종속되어 있는 상황에서 국가에서의 에너지 민주주의의 한계 상황에 주목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제적 힘의 균형이 에너지 민주주의에 역행할 때, 해방적 에너지 전환의 방향으로 국가를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정치 전략은 무엇인가? 그리고 국가를 통해 그런 해방적 전환을 진행하고 있을 때, 어떻게 이를 방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4. 누구를 위한 에너지인가?

남반구에서 수행된 에너지 프로젝트의 역사를 볼 때, 대개 자본주의 발전 모델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이라는 식민주의에 결박되어 있기 때문에, 주로 초국적 기업과 국제금융기구들이 이익을 얻었다. 남미의 파괴적인 개발주의 프로젝트들은 ‘에너지 주권’ 담론을 활용해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이 용어는 자치를 추구하고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사회운동들도 사용했지만, 정부는 국가 주권에 초점을 맞춰 그 의미를 조정했다. 이 용어는 이제 대수력 발전 같은 거대 에너지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데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에너지 프로젝트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접근권은 남미에서 큰 문제로 남아 있는데, 2320만 명이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우루과이와 코스타리카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에너지 불평등은 남미 거의 모든 곳에서 악화되고 있다.

인도는 재생가능에너지에서 신흥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동시에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들이 계획되고 있다. 이런 새 에너지 프로젝트들로 인한 편익도 사기업에 집중되어 있으며, 전체 가구의 33%인 약 4억 명이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소득 하위 20% 인구가 국가 에너지 사용의 5%를 사용하는 반면, 상위 20%는 80%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재생가능에너지 투자국이고, 국가가 주도하여 에너지 개발과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고 있다. 필리핀은 에너지 투쟁의 핵심적 장소인데, 신규 석탄화력발전소가 대거 계획되어 있다. 태국에서는 대수력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가 쇼핑몰로 흘러가는데, 방콕의 온실가스 배출은 맨해튼과 같은 수준이다. 반면 라오스는 최빈국을 벗어나기 위해서 대수력 발전을 세우고 바이오연 생산에 필요한 산림을 팔면서 아시아의 밧데리로 불리고 있다. 남아공도 재생가능에너지와 화석연료 모두에서 대형 민간 투자라는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이렇게 에너지 접근과 에너지 빈곤은 이제 에너지 민주주의 프로젝트에서 핵심이지만, 어떤 에너지가 보장되어야 하는지, 우리가 촉진해야 하는 생활양식과 소비 패턴은 무엇인지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식민주의적 개발주의의 저항의 최전선에 있는 남반구의 경험에서 배울 점이 있다. 그리고 에너지 민주주의가 에너지 연대의 실천을 어떻게 촉진할 수 있을지 질문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영국의 연금을 남반구의 화석연료 투자에서 철수시키고, 남반구의 에너지 사용자와 노동자가 결정하고 통제하는, 해방적 청정 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입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지 않을까?

5. 노동과 정의로운 전환

에너지 분야의 노동자들은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초석인 에너지 인프라스트럭처에서의 노동쟁의는 역사의 전진을 이루는 과정에서 여러 승리의 지렛대가 되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화석연료를 끝내서 자신의 생계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 민주주의의 딜레마가 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전환’이 요구된다. TUED가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는데, 이 연합체는 2012년 리우+20 즈음에 떠오른 친시장적 ‘녹색경제’의 대응으로 형성되었다. 초국적기업들이 주도하는 화석연료 개발에 저항하고(Resist), 에너지를 공적영역에서 되찾고(Reclaim), 그 영역을 민주적으로 통제되고 가용할 수 있는 재생가능에너지 구조로 재구성하는(Restructure) 비전을 선포했다. TUED는 에너지 민주주의를 핵심 방향으로 삼고 있는데, 에너지 민주주의의 내용과 전략을 탐색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활력 있고 성공적인 노동 운동은 주로 남반구에서 일어났다. 남아공의 NUMSA는 백만 개의 기후 일자리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데, 이들은 전기 기본 사용량을 보장하고 민영화를 반대하면서 에너지 접근권을 쟁취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에너지 의제는 노동조합의 일정에 따라 멈췄다가 다시 시작했다를 반복하게 되는데, 이는 노조활동의 핵심 의제인 임금 투쟁과 달리, 에너지 이슈는 중심 의제가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특별한 관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동운동과 저탄소 전환 간의 관계는 다소 모호하다. 때로는 TUED나 저탄소 에너지 전환에 저항적인 모습도 발견된다. 예컨대, 최근 독일에서 벌어진 갈탄화력발전소 투쟁은 주요 노조의 저항을 받기도 했다. 전통적인 에너지 분야는, 비록 종종 위험하지만, 충분한 임금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제공한다. 현재의 집중화된 생산방식은 작업장 한곳에 거대한 노동자의 집중을 낳았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높은 노조 조직화 수준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로 강한 협상력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재생가능에너지 분야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현재 재생가능에너지 일자리는 대개 불안정하고 조직되어 있지 않지만, 더 분산화된 생산방식으로의 전환은 높은 노동자의 집중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위협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최우선 관심사인 고용보장이라는 점에서 저탄소 의제에 대해서 노동자들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정의로운 전환은 재생가능에너지 분야의 노조 a조직화에서부터 산업전환과 재정지원 등의 구체 계획을 세우는 일까지 할 일이 많다. 이런 정의로운 전환 계획에 참고할 만한 대표적인 사례는 1970년대 영국의 루카스 플랜(Lucas Plan)이다[이에 대해서도 소개된 바 있어 내용은 생략한다]. 이렇게 에너지 민주주의 측면에서 에너지 기술의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분야의 노동자들의 지식을 동원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6. 나아갈 길

앞으로 다룰 흥미로운 토론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① 에너지 기술의 민주화
에너지 분야의 생산-유통-저장-소비 기술들이 빠르게 변화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들은 우리가 에너지와 맺는 일상적 관계를 바꿀 것이다. 이 기술들은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회로의 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지만, 현재 초국적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접근권과 가격 책정과 스마트 기술로 인한 데이터와 정보의 소유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에너지 민주주의 측면에서 기술들의 소유, 통제와 사용의 대안적인 방식을 마련하기 위해서 이런 기술들의 발전의 속도도 검토되어야 한다.

② 거대 공기업의 민주화
에너지 민주주의의 관점이 국가로 확장될수록, 거대 에너지 공기업의 민주적 통제와 책임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가 중요해진다. 민영화 역시 중요하게 다룰 문제이다.

③ 진보적 공공관리
위계적이고 관료적인 분위기로 고착된, 친기업적 태도가 자리 잡은 공공 기관을 혁신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새로운 조직 문화를 안착하게 만드는 일은 도전 과제가 된다. 공공관리를 위한 진보적인 내용과 형태를 구상해야 한다.

④ 에너지 민주주의와 무역
다자간서비스협정(TiSA)와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같은 자유무역협장의 새로운 라운드는 기업의 힘과 신자유주의 거버넌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부의 화석연료 모라토리엄과 사유화 번복 같이 기업의 매출을 줄이거나 사적 소유에 도전하는 조처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권한을 부여한다. TiSA의 기술 중립성 조항은 고탄소와 저탄소 에너지원의 차이를 구별하는 정부의 권한을 제약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무역협정들은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심대한 장애가 된다.

⑤ 에너지 민주주의 사례연구
에너지 민주주의의 사례연구를, 특히 남반구의 사례연구를 진해야 한다. 에너지 민주주의 실천들이 잘 이뤄지고 있는 곳의 지식을 축적하는 것만큼이나 에너지 민주주의가 고려되지 않는 사례도 주목해야 한다.

⑥ 에너지 민주주의와 기후정의
기후정의 운동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민주주의가 기후정의와 상호 보완적인 방식으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⑦ 재원 확보
화석연료에서 철수한 자본을 어떻게 에너지 민주주의 실현하는 데 재투자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민관협력방식의 대안으로 공적 재원 확보 방안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정의로운 전환 구상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재원 계획이 필요하다.

⑧ 국제 에너지 분야 정보 매핑
세계 곳곳의 서로 연결되는 에너지 분야들에 대한 포괄적인 맵을 작성할 필요가 있는데, 여기에는 지정학, 기술개발, 인프라스트럭처 규제 등 여러 요소들을 포함해야 한다.

⑨ 에너지, 안보화와 군사화
에너지, 안보화와 군사화 간의 연결이 중요한 지정학적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에, 지정학이 에너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에너지 안보’ 프레임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에너지 민주주의와 평화 운동 간의 새로운 동맹의 형성은 미래 지향적 전망을 제공할 것인가?

⑩ 에너지 민주주의를 다른 투쟁과 연결하기
에너지 이슈는 재정에서부터 지정학에 이르기까지 다른 이슈와 광범위하게 연결된다.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투쟁들은, 예컨대 남아공의 광업-산업 복합체처럼, 구조적인 연결망을 갖는다. 그렇다면 에너지 민주주의 이슈는 단일 이슈로 제한되어서는 곤란하며, 다른 투쟁들과 동맹을 형성해야 한다.

물 사유화 반대 등 물 정의 운동의 성공적인 경험에서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에 유용한 지식과 성찰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는 물과 다른 속성을 갖으며, 에너지는 지구 자본주의의 핵심축이다. 에너지를 둘러싼 투쟁은 지구적 권력관계 위쪽으로 올라가야 하고, 일상의 리듬 아래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에너지는 고립된 어느 하나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에너지 생산, 유통과 소비의 패턴이 다양한 스케일과 영역에서 작동하는 권력관계의 의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그리고 이와 함께 권력관계가 에너지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에너지 민주주의 운동들은 작업장에서부터 금융기구, 식량 그리고 건강에 이르기까지 다른 측면을 민주화하는 새로운 시도들을 창안해야 한다. 작은 스케일에서의 성공을 넘어서 에너지 분야 전체를 전환하고자 한다면, 국가 계획은 필수적일 것이다. 좌파 정당 역시 중요한 행위자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에 대한 논의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여기에는 함정도 도사리고 있다. 새로운 좌파 정당을 회피할 필요는 없지만, 에너지 민주주의의 전망을 모두 여기에 맞출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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