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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9-30 11:55
[언론기사] [국민일보] ‘진짜 녹색’은 어떤 빛일까… ‘착한 에너지 기행’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19,551  



착한 에너지 기행/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이매진

중년 여성 ‘조’는 한쪽 눈이 멀었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 보고로에서 팜 농장 노동자로 살아가는 그녀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래 전에 이혼했어요. 열여덟 살인 큰아이가 일을 한다고 하지만, 네 명의 아이들 모두 내게 의존하고 살아요. 난 아파서도 안 돼요. 병원비가 들잖아요. 내가 농사를 짓던 땅에서, 이젠 노역을 하는 노동자가 됐습니다. 문제는 아이들을 교육할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두 아이 학비가 3개월째 밀렸는데, 곧 학교를 그만둬야 할 거예요.”(145쪽)

강한 농약에 시력을 잃은 그녀의 눈은 인터뷰 내내 허공을 맴돌았다. 등에는 무거운 농약 살포기를 지느라 혹이 생겼고 아침마다 하는 기침에는 피가 섞여 나온다고도 했다. 조는 그래도 자신보다 아이들을 걱정했다. 모정(母情)은 더욱 절실해졌다.

“이러다 정말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예요.”

조의 비참한 현실에 곁에서 통역하던 현지의 환경활동가 ‘치차’가 천장을 쳐다보며 눈물을 삼켰다. 누가 조의 눈을 멀게 했나. 누가 치차를 눈물짓게 했나.

기후변화 시대의 대안으로 ‘착하게 사는 방법’인 줄만 알았던 바이오 연료가 또 다른 ‘나쁜 놈’이 됐다. 선진국이 쓰는 팜 오일을 생산한답시고 조가 눈이 멀어야하는 상황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

‘착한 에너지 기행’은 가짜가 아닌 ‘진짜 정의’를 찾아 한국의 기후정의 원정대가 세계 곳곳을 누빈 기록이다. 진보적 민간 싱크탱크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김현우 이강준 이영란 이정필 이진우 조보영 한재각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와 유럽, 아메리카 대륙을 돌며 부당함은 고발하고, 희망은 소개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 서서 에너지 전환 방향을 선도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2009년 8월 창립됐다.

“대체 뭐가 착한 에너지냐? 갈등을 유발하며 환경오염을 낳는 화석연료와 원자력이 아니라, 자원의 순환 과정에서 얻을 수 있고 지역 분산적인 태양력, 풍력, 바이오매스 같은 재생 에너지가 착한 에너지다. 착한 에너지는 환경 친화적이면서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에너지여야 한다. 바이오 연료가 누군가의 식량을 줄이고, 농민의 땅을 빼앗고, 강과 산림을 훼손한다면 착한 에너지라고 할 수 없다.”(13쪽)

이들은 태국과 인도네시아, 미얀마, 라오스 등 지구 한 켠에서 기후변화의 대안이라는 허울 아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녹색 혁명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환경을 파괴하고 나아가 주민들의 삶까지 망치는 일부 가짜들에 대한 비판이 됐다.

숨 가쁘게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에너지와 기후변화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정부나 기업에서 홍보하는 ‘녹색 정책’이 얼마나 졸속이고 표면적인지도 알아차릴 수 있다.

미얀마에서는 천연가스 개발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익만 좇는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들과 군부의 부패로 고통 받는 민중들의 삶을 고발했다.

“젊은 주민들은 미얀마의 에너지 자원이 지역주민의 동의 없이 해외로 팔려 나가는 문제를 지적했다. 한 청년은 ‘지금 미얀마 사람들은 가스 요리 기구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 땅을 통해 가스가 흘러가는데, 정작 우리는 그 가스를 사용할 수 없다. 그 돈은 다 장군들에게 가고 우리 민족과 나라는 이득을 얻지 못한다’고 비판했다.”(169쪽)

기후정의 원정대는 기후 부정의의 현장을 둘러보는 데 그치지 않았다. 미얀마에서는 교육사업으로 난민을 지원했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라오스의 산골 학교에는 태양광 발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원정대는 더 나아가 진짜 기후정의를 실천하는 곳에서 실질적인 대안을 고민했다. 녹색 혁명의 선두주자인 독일은 물론, 에너지 자립의 꿈을 이룬 농촌 마을이 자랑인 오스트리아, 석유 없이 농사짓는 농부들을 만날 수 있는 일본, 에너지 저감을 위해 고민을 거듭하는 영국 등을 찾아가 주민과 기업, 정부가 각각 어떤 책임과 역할을 하는지를 살폈다.

책은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9위이면서도 개발도상국의 지위에 숨어 온실가스 의무 감축국에 빠져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반성도 촉구하고 있다. 일부 선진국들이 해외자원 수탈의 폐해를 깨닫고 기후정의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적극 모색하는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나쁜 에너지’를 개발하고 소비하고 있다는 쓴소리다.

전 세계를 돌며 수년간 모은 소중한 자료지만 책에 실린 사진들의 화질은 썩 좋지 않다. 험한 여정을 최소한의 경비로 소화하느라 사진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 좀 더 생생한 사진으로 한쪽 눈이 먼 조의 현실을 보여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그나저나 조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녀와 네 아이들은 아직 희망을 잃지 않았을까. 책을 덮고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 기사 원문 : http://news2.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4143562&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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